태권도의 거성, 떨어지다.최홍희 국제태권도聯 총재 사망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가 15일 84세를 일기로 평양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17일 보도했다.

1918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시 평양학병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최총재는 광복이 되면서 학병단을 조직하여 국군소위로 임관, 제2사단장을 역임하면서 군의 태권도보급에 정진했을 뿐만아니라 1955년 처음으로 ‘태권도’라는 명명을 사용하였으며 최초의 국제단체인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했고, 박정희 군사정권과의 마찰로 인해 캐나다로 망명하여 세계 각국에 태권도를 전파해오던 태권도의 거목이었다. 바로 그 거목이 쓰러진 것이다.
최근 최총재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지난 4월 말한국과 북한의 정부 및 언론 기관에 동시에 공문을 보내 눈을 감기전 모국방문을 희망했으나, 대한민국은 끝내 이를 거절했다. 최총재는 직간접적으로 1972년 이후, 30년 동안 몇 차례 모국방문 의지를 밝혀왔으나, 한국땅은 끝내 다시 밟아보지 못했다.
결국 최총재는 지난 14일 병환의 몸을 이끌고 북한을 선택하였고, 마침내 6월 17일 월요일 분단된 조국의 북쪽에서 숨을 거두었다.
최총재의 죽음 하루전 미국 그랜드매스터호노소사이어티 (대표 정우진)는 무토에 보도자료를 보내와 끝내 최총재를 거부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캐나다 동포들과 무도인들의 섭섭한 마음을 함께 전하며, 최총재가 지난 14일 북한에 입국할 당시의 사진을 보내왔으나, 보도자료를 받은지 하루만에, 최총재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다음은 최총재가 지난 4월말 대한민국 정부에 보낸모국방문 위한 조건이다.
1. “태권도 창시자”의 국가직 명시
2. 국가차원의 훈장수여 및 장군의 복권
3. 평양 학병사건의 올바른 역사관을 재확인하고 최홍희 총재의 독립유공자 인정
4. 만일 최홍희 총재 운명시 장례식을 국가차원의 태권도장으로 치루며 국립묘지에 안치.
이러한 최총재의 요청에 대해대한민국 정부는 최총재를 태권도의 창시자로서 명시해 달라는 요청은 민감한 사안이라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으며, 평양학병관련 국가 유공자 인정 등을 부분은 심의중이라는 회신만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반면, 북한 정부는 최총재를 태권도창시자와,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며, 죽음시 장례식을 태권도장으로 치르며 북한 열사의 릉(국립묘지)에 묻힐것이라는 회신이 있었고,결국 최총재는 북한을 선택해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생전에도 대한민국을 떳떳하게 방문해, 명예회복을 하고눈을 감고 싶다는 평생의 소원은 결국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 평생을 태권도와 함께 하며, 태권도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작은 거인 최홍희는 반쪽 조국의 외면속에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 사진 제공: 캐나다 정순천 사범
.jpg)
(40대의 고인)

(35세장군시절 태권도교본에서)

(도복을 입고)

(30대와70대의 고인)

(2000년 척노리스 단증 수여식 후에 고인)

(1997년 고인)


댓글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