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의 "길을 찾아서"
제 1 부 正의 覺
1. 유월의 장미
1990년 6월 9일!전국중고교선수권대회 여중부 페더급 결승전!
치열한 1회전을 마쳤을 때 1:0으로 병희는 앞서고 있었다. 2회전 중반 자신만만하게 공격하던 병희는 공격하다 상대의 오른발 들어 찍기에 얼굴을 강타 당하고 다운이 되었다. 다운 당한 병희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순간, 풀어진 병희의 눈동자와 마주 친 나는 다급한 마음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외쳤다.
"일어나서 자세를 잡아--"
1985년 봄 수련생들을 지도하고 있던 나는 몇일째 도장에 와서 말없이 바라 보던 맑고 불타는 소녀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리고 다음날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도장에 와서 나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나중에 안일지만 소녀는 제천의 모든 태권도장을 그렇게 돌아 다니며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나를 스승으로 선택한 것이였다. 그것이 병희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였다.
간신히 일어선 병희가 나를 쳐다 보았다.
"붙어서 잡아"하며 손으로 잡는 동작과 함께 소리 치자 병희는 상대를 붙잡았다. 주심이 가차없이 경고를 선언한다.
"나는 괜찮아 한번 더" 하고 소리쳤다.
두번의 경고를 받고 2회전을 마치니 감점1점에 점수는 2:1로 병희가 앞서고 있었다. 나는 병희에게 정면으로 들어 가지 말고 속임 동작을 주고 오른쪽으로 빠졌다 차라고 주문했다. 3회전 들어 병희는 의외로 침착하게 경기를 잘 풀어 갔고 철산 여중 코치는 포기를 하며 의자에 주저 앉았다.
그렇게 우승을 하고 국기원 경기장을 나오자 (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태권도의 꿈을 이룬 )병희 어머니께서 눈물을 머금으신채 "사범님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를 한다. 그제사 나는 " 아! 우승했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 한 가운데에서 복 바치는 서러움과 희열이 솟아 올랐다.
국기원 뜨락으로 나와서 조용히 거닐었다.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스치고 지나간 소나기에 물기를 머금은 장미 꽃잎이 수줍은 새악시처럼 나를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앞이 흐려 지고 있는데 웃음이 자꾸 나왔다. 한 송이 장미꽃을 꺾어 가슴에 꽂고 국기원 장내로 들어 가니 응원 온 제자 중 창원이가 나를 보고 말한다
"사범님 이제 장가 가시겠네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대신 가슴에 꽂은 장미 꽃을 빼어 주었다.
2. 입문 그리고 선수생활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고 몸이 약했던 나는 1969년 3월 아버지께서(교통고등학교 시절 지도관에서수련하셨다) 부관장으로 계시는 무덕관에 입관하여 조원제 사범님께 사사받았다. 당시 제천에는 한무관과 무덕관이 있었는데 한무관은 정익진 사범님께서 1958년도에 개관 하셨고 무덕관은 한무관 관장으로 계시던 분이 아버지와 제천기관차노조위원장을 놓고 선거를 치르던 분이시라 아버지를 따르는 철도에 근무하는 태권도의 고단자(무덕관출신 고단자가 많았다)들 중심으로 개관한 도장이였다.
입관하면서 누구보다도 강하게 지도해 달라시는 아버지 덕분으로 나는 고된 수련을 해야 했다. 어떤 동작이든 기본이 삼일이였다. 주먹 쥐는 것만 삼일, 기마서기만 삼일, 전굴자세만 삼일, 앞차기만 삼일.....
나는 사범님께서 왜 이렇게 지겹게 힘들게 가르치시는지 이해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악몽인것은 낙법이였다.
당시 우리도장은 지하였는데 바닥이 진흙이 섞인 흙바닥이였다.그 흙바닥을 매일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는 바람에 반질 반질한 상태였으나 땀을 흘리면 미끄러웠다. 그러면 가마니를 자른 다음 펴서 깔고 수련하였다. 그 흙 바닥에서 전방낙법, 후방낙법, 측방낙법을 하고 나면 온 몸이 쑤시고 결리고 말이 아니였다. 참으로 지겹고 하기 싫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꾸중이 무서워 어머니의 치마자락에 눈물을 쏟으며 나는 꾹 참고 하는 수 밖에 없었다.
1970년 5월 초단으로 승단후 처음 시합에 출전 한 것은 제천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날 하키를 담당하시던 (죄송한 표현이지만)미친개 라고 별명이 붙으신 체육선생님이 오셔서 " 박승동이 나와 "하기에 교단으로 나가니 " 기마서기 " " 중단지르기" "하나! 둘! 셋!" 하고 구령을 붙이며 주먹의 스피드와 명치를 제대로 지르는지 살펴보신 선생님께서는 " 정통이구나. 됐다. 너 시합에 나가라" 하여 얼떨결에 태권도 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태권도장에도 나가지 않고 시합에 출전하기 이틀 전에 학교 체육실에서 몸만 풀다 알이 밴채 나가는 시합에 좋은 성적이 나올리는 없었다.
하지만 워낙 실전(제천의 특성상 싸움을 많이 했었다)에서 다져진 탓인지 1등은 못했어도 늘 입상권에는 들었다. 하지만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훈련할 필요성을 느끼고 친구의 형이 운영(제천여고근처)하는 태권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형이 태권도장을 반으로 막고 반은 황보정남이라는 합기도인에게 도장을 임대하여 주었다. 그 바람에 나는 자연스럽게 합기도를 접할 수 있었다.
1975년 제천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태권도를 연습할 장소가 없어 한무관(제천체육관)에서 수련생들이 수련하기 전에 2시간 동안 빌려서 훈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코치없이 훈련하다보니 (태권도부 선수들이 하나 둘씩 잘못되어 모두 퇴학을 당한채 나만이 졸업함)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대회 참가 신청서며 선수등록등 행정에 관해 아무런 조치도 하여 주지 않는 바람에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직접 선수 등록 신청서와 대회 참가 신청서를 가지고 청주로 서울로 헤메이며 다녀야 했다. 그런 나를 충북협회 임원들께서는 대견스럽게 보아 주셨는데 청도관 정갑순관장님은 청주에 들러 다시 서울로 가는 나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시며 여비도 주시곤 하였다.
이 시기에 나는 기술적으로 발전을 이룬 중요한 계기 있었다. 그것은 충주에서 대회를 개최 하였는데 택견을 배운 수련생과 태권도 수련생이 같이 참가한 가운데 호구를 차고 하는 시합이어서인지 태권도 선수가 거의 다 우승을 하였다. (아마도 내 생각에 신한승씨는 승패에 상관없이 택견의 실전성을 연구 하셨던 것 같다.) 그 대회에서 나는 택견 수련생들이 구사하는 특이한 기술을 발견했다.
그것은 발로 공격하는 상대의 발을 막는 기술이였다. 이 기술을 신한승씨에게 나중에 질문하니 미소를 지으시며 " 태권도에 자네처럼 연구하는 젊은이가 있어 희망적이라시며 막음다리라고 설명을 해주시고 덧 붙여 태권도 시합에도 쓸수 있는 것중에 정강이 차기라는 것도 있는데 태권도 선수들은 발을 많이 쓰니 이 기술로 상대의 발을 막으면 효과적일 것 같다는 설명도 하여 주셨다.
이 두가지 기술과 또 하나는 이소룡의 격투 기술 중에 하나를 나의 것으로 만든 일이다. 나는 77년 봄에 이소룡과 만났다. 물론 영화를 통해서....
영화 제목이 정무문이였는데 이소룡의 격투신에서 나는 그가 오른발을 앞에 놓고 앞에 있는 발로 상대를 가격하는(복싱에서 잽과 같은) 것을 보고 상당히 효과적인 기술이 될 것 같아 연구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앞에 있는 발로 공격하는 상대를 택견의 막음다리와 정강이차기 를 변형시켜 공격과 방어를 연결하는 기술들을 연습하였고 실제로 시합에서 앞발을 사용하고 또 발로 상대의 무릎이나 허벅지를 밟고 상대의 얼굴을 공격하는 기술을 구사하니 상대에게 잘 먹혀 들어 각종 지방 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하였다.
자신이 붙은 나는 태권도장외에 타무술도장으로 다니며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배우고 싶다며 타 무술의 유단자와 대련을 많이 가졌으나 나는 한번도 진적이 없었다.
[타무술도장에 가서 느낀 것은 타무술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정중한 배움을 청하면 배타적인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특히 청주에 있는 중국무술인 십팔기도장에 본인이 다니던 도장이라며 원정희선생님이 주선하여 갔을 때는 대련을 마치고 나서 좋은 교류였다며 관장님께서 차를 한잔 주시면서 촌경, 발경에 대해 설명도 하여 주셨다. 그것은 무술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며]
3. 正의 覺
1981년 제61회 전국체전을 방황 속에 마치고 그녀와의 이루지 못한 약속을 가슴에 묻고 나는 다시는 시합을 하지 않겠다며 도복을 불태워 버리고 군에 입대하였지만 우연히 태권도 측정에서 측정관들의 눈에 발견되어 태권도 교관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렇게 군생활을 마치고 나는 나의 길을 가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한번 쯤은 되돌아 볼 필요성을 느끼고 1984년 6월 사북으로 가서 마음의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뜻한 바있어 8월 제천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뵈었다.
" 승동아! 앞으로 어떡 할거냐? "
"....."
" 제천시청에 복직해라 "
"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는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한참을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께서는
" 음! 그렇다면 너의 길을 가거라. 내가 보기에는 그 길이 힘든 길일 것 같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도를 지키며 흔들림없이 가거라. "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그렇게 나는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고 도장을 열려고 했으나 평소 많은 조언을 해주시던 선배 한 분의 간곡한 부탁에 도장을 양보하고 정익진관장님을 제2의 스승으로 모시고 1984년 10월 지도자의 첫 발걸음을 내 디뎠다.
정익진관장님께서는 관을 초월하여 진정한 태권도인을 육성 하시겠다시며 나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수련생을 지도하는 법과 사회 생활 특히 무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들을 자상하게 가르켜 주셨다. 특히 태권도인들은 경제적으로 자립이 되어야 좋은 지도를 할 수 있다며 노름과 보증 같은 것을 하지 말고 늘 검소한 생활을 강조 하셨다.
그런 가운데 나는 일반 수련생들을 지도하며 제천의 모든 중고등학교 선수들을 모아 정익진관장님의 허락하에 제천체육관에서 무료로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국대회의 벽은 높았다.
나는 동계합숙의 필요성을 느껴 훈련을 계획하고 친구와 선배들의 후원, 선수들의 자발적인 훈련비 그리고 나의 사재를 모아 동계합숙 훈련을 하면서 훈련이 끝난 저녁에 두시간씩 공부를 병행시켰다.
그러던 중 나는 선수들에게 정신력 강화훈련을 시키기로 하고 밤 12시에 엄청난 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중,고등학교 선수들과 의림지까지 달렸다.
그렇게 폭설이 내리는 한밤에도 청춘남녀 몇 쌍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참으로 남녀간의 사랑은 국경도 초월하고 시공도 초월하고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사랑의 유희를 지켜보며 선수들을 기다리는데 선두와 꼴찌간에 30분이 넘게 차이가 났다. 그냥 넘어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팬티만 입고 꽁꽁 얼은 의림지 얼음 위로 집합을 시켰다.
머뭇거리는 선수들 앞에 내가 먼저 옷을 벗고 팬티 차림으로 얼음 위에 나가 서자 사태를 짐작한 제자들은 앞다투어 옷을 벗고 눈이 쌓인 의림지 얼음위로 들어왔다.
그런데 창원이가 들어 오지 않고 있기에 "너는 뭐하냐"하고 묻자"팬티를 안입었는데요"하고 대답을 한다.
주장인 명기가 그걸 보고는 " 야! 싹 벗고 빨리 들어와" 하고 소리치니 창원이는 할 수 없이 옷을 모두 벗고 들어왔다.
옷을 홀랑 벗고 눈 내리는 한밤에 선수들과 땀이 나도록 뛰고 소리치는 창원이의 모습이 너무도 우스웠으나 어느 누구도 분위기상 웃을 수가 없었다. 눈 내리는 한밤에 웃음을 참으며 일그러지는 선수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운동시킬 마음이 없어 지려는 그 순간!
갑자기 -쩡- 하는 소리가 들리며 바로 나의 발 밑으로 손가락 굵기의 금이 가면서 얼음이 갈라졌다. 머리를 들어 앞을 보니 그 짧은 시간에 둑위로 모두 올라가 있었다. 내가 어이가 없어 쳐다보니 준호가 "사범님 얼른 나오세요"하며 고함을 친다. 그러나 두껍게 얼은 얼음은 금만 갔을 뿐이였다.
다시 얼음판 위로 정렬한 선수들에게 "이런 의리없는 놈들 하지만 너희들의 순발력은 정말 대단하다 이런 정도라면 전국대회 우승감이니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 중 누군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내가 장가를 가리라" 하니 모두들 숙연해졌다.
1986년 봄날! 수련중 휴식시간에 수련생 한명이 일어나 질문을 한다
" 사범님! 태권도가 뭐예요?" 갑자기 묻는 질문에 " 跆는 발로 밟을 태를 뜻하고 拳은 주먹을 뜻하며 道는 길을 말하는데 이것을 합쳐서 태권도라고 하는데 태권도는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는데 그 참 뜻이 있다 "하고 대답을 하자 " 정신 수양이 뭐예요"하며 다시 묻는다.
.....
둥근 보름달이 뚝 떨어져 나의 뇌리를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갑자기 큰 벽에 부딪친듯 답답해 졌다.
태권도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는게 태권도인가?품새를 잘하는게 태권도인가? 발차기를 잘하고 격파를 잘하고 여러명을 해치우는게 태권도인가? 예절을 잘지키는게 태권도인가?
이게 아닌데.....이후 놀랍게도 나는 처음으로 태권도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에 사로잡혀 처절한 방황이 시작되었다.
몇날 며칠 밤을 지새며 태권도 교본과 무술서적을 보며 씨름하고 생각해도 답답하고 혼란스러움이 더해 가기만 했다. 나는 나의 한계에 부딪쳐 고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미친듯한 행동은 다해야 했다.
그러던 중 경북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실전태권도(이것은 태권도교본이 아니다)라는 교본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였다. 전굴! 후굴! 기본형! 평안형! ... 책을 덮었다.
(60년대에 태권도에 입문하여 나는 기본형 평안형 밧사이 나이한찌 초단, 이단(내 기억으로)이라는 명칭의 태권도를 배웠다.) 그리고 나는 쫓기듯 밖으로 나왔다.
배달 최영의!
그분을 나는 태권도인(이것은 대야망이라는 만화 탓이다)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은 태권도인이 아니고 무도의 한 일가를 이룬 극진공수도의 창시자라는 것과 자기 무도의 세계화를 위해 일본으로 어쩔 수 없이 귀화한 재일동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영의는 1967년 최홍희의 설득으로 태권도와의 통합을 결심하고 한국에 왔었지만 한국태권도계의 현실에 실망하고 극진공수도의 세계화를 위해 일본으로 귀화 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피를 가진 한 무도가가 (인간의 극한 상황을 극복한 수련과 세계의 여러무술과 격투하여 실전에서 검증된 기술로써(타무술의 장점을 받아 들여) 창시한 극진공수도는 일본 전통의 가라테(공수도)와는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탄생 시킨 현존하는 무술로서 세계 최강중 하나인 극진공수도의 교본에 나오는 기술들이 어떻게 내가 배운 태권도와 똑같은 기술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일이였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선수시절 구사 하였던 기술들은 극진 공수도의 격투 기술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것은 최소한의 규칙이 있는 상황에서의 보호대 없이 치루는 대결과 복잡한 규칙을 정해 놓고 보호대를 착용하고 살상을 최소화하여 점수로 승패를 나누는 태권도 경기(현재의 아마추어)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극진공수도와 태권도의 차이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태권도 경기력과 기술은 파괴력만 갖춘다면 인간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기술로써 타무술을 제압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기술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나는 自負(자부)한다.)
그 분은 태권도인이 아니지만 나는 님의 길을 동경했다.
그것은 역사 이전에 사람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피눈물과 땀의 처절한 수련과 실전을 통한 무도의 완성은 곧 인격의 완성이라는 그분의 무도철학은 나를 우물안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이러한 방황속에 나는 또 한번의 현실에 부딪쳤다.
그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순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였다.
" 사범님! 예수님 믿어요, 부처님 믿어요."
....대답대신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태권도와 종교!
이 문제에 있어 나는 사범으로서 어떤 헤게모니(Hegemonie)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또 답답해진다.
태권도란 무엇이며
태권도를 통한 나의 삶은 무엇인가?
태권도에 있어 眞理(진리)란 무엇인가?.....
태권도의 완성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태권도에 있어 올 바른(正) 깨달음(覺)은 무엇인가? 나아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동해의 검푸른 바다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나는 SK와의 약속에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듯이 보다 큰 것에 또 한번 목숨을걸고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4. 禪僧 지선과의 만남
거리의 가로수에 스치는 찬바람이 잎새를 떨구는 86년의 늦가을!구름이 드문 드문 떠가고 동편 하늘에는 초승달이 걸려 있는 어둠이 내려 앉는 초저녁.
승급 심사를 마치고 모처럼 초저녁 거리를 방황하는 나를 따라 지도사범을 하고 있는영배는 좋아라 하며 나선다.
오랜만에 시내를 걸어가니 늘 지나 다니는 거리인데도 또 다른 세계 인듯 하다.
영배와 남천동 천주교 성당을 지나 한산사 앞을 막 지나는데 스님 한분과 눈길이 나와 마주쳤다.
내가 가볍게 목례하자
스님은 합장을 하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나무관세음보살!" 한다. 마치 나의 무례함을 깨우쳐 주듯....
잠시 멈추어 서서 " 가득 차지 않은 초생달을 따라 걷는중입니다."하니 " 저는 지나는 객입니다." 한다.
나는 웬지 스님과 이야기가 나누고 싶어 졌다. 그래서" 실례가 안된다면 차를 한잔 하실 수 있는지요 " 하고 묻자 잠시 생각을 하더니 " 그러지요. 저도 객이니 나가시지요. " 하며 나선다.
스님 나 영배순으로 나란히 서서 시내로 걸어 나가는데 택시가 서로 엇갈려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코너에서 갑자기 차 한대가 휙 돌아 나타났다.
깜짝 놀라 아무 생각없이 옆으로 피하는데 안쪽에 있던 스님의 피하는 몸놀림이 나의 몸놀림보다 더 빠르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걸어가며 " 스님! 수련하고 계신것이 있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웃으며 " 특별히 수련하는 것은 없고 산속 생활을 하다보니 민첩성 이랄까?" 한다.
프라도로 들어간 영배와 나는 커피를 마시고 스님은 우유를 마시는데 나는 궁금해서 실례를 무릎쓰고 물었다.
" 왜? 스님이 되었습니까? "
" 그 해답을 얻고자 수행중입니다."
나는 스님의 번뇌가 나보다 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그 해답을 얻어 무엇하려고요? " 하고 내가 묻자
" 당신은 무엇 때문에 달을 따라 걸었습니까? " 하며 반문한다. 대답대신 나는 웃었다.
그러자 스님은 오늘 밤은 우리들 이야기로 초생달을 채우자며 한산사로 다시 가자고 한다. 그러자 영배는 흥미가 없는지 " 형님, 저는 약속이 있어 갈게요." 하며 일어 섰다.
스님의 법명은 지선이라고 했다.
만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지선은 결가부좌를 하고 나는 반가부좌를 한채 자리에 앉았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요. "
지선은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 가슴에 묻어 두는 것이 힘이 듭니다. "
또 미소를 짓는다.
"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걸고 태권도를 훈련했었습니다."
또 미소를 지을 뿐 말이 없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그러자 지선은 말한다.
"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 저는 지금 방황하고 있습니다. "
" 무엇 때문에 방황하지요? "
" 처음에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괴로웠는데 지금은 저의 한계에 괴로워 하고 있지요."
" 어떤 한계를 괴로워 하십니까? "
" 태권도가 저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 방황의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그 순간 나는 빛을 보았다.
" 인연의 신비로움이 삶이랍니다. 박사범님께서는 이별의 아픔 보다는 지난 날의 추억을 더 그리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이 나왔다.
" 여자는 꽃입니다. 모든 꽃들이 저마다 풍기는 아름다움이 다르듯 여자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 스님도 사랑을 해 보셨습니까?"
" 세상에 태어 나서 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잠시 눈을 감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던 지선은
" 괴로움이 있으면 그것을 끊기 위해서는 마음의 집착을 버려야겠지요."
" 苦執滅道(고집멸도)를 말하십니까? "하고 반문하자
대답대신 지선은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 보다가
" 박사범님께서는 부처님처럼 맑은 어린 수련생과 함께 가시니 큰 깨달음을 얻으실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 번뇌와 마주치면 그들과 함께 가세요."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그렇구나 나에게는 함께 갈 그들이 있었구나.
나의 목숨을 바쳐도 될 그들이.....
지선이 묻는다.
" 태권도는 무엇입니까? "
나는 대답했다.
" 지금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자 지선이 소리내어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한산사가 떠나가라고
저녁 8시 조금 넘어 시작된 대화가 어느덧 자정이 되어 일어 서는 나에게 지선스님은 " 착한 일 많이 하세요. 인연이 있으면 또 다시 만나겠지요" 한다.
한산사를 나와 길을 걸으며 기쁜 마음의 한 가운데에서 패자의 슬픔이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나를 반성했다.
그것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결가부좌를 한채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지선스님과는 다르게 태권도 사범이라고 하는 나는 결가부좌도 아닌 반가부좌의 자세로 고통을 못이기고 몇시간 밖에 안되는 대화 속에 서너번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목숨 걸고 태권도 수련을 했다는 내가......이제사 나는 깨닫는다. 나에게 忍(인)은 있을지언정 耐(내)가 없었음을.....
그렇다. 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가 있다. 참는 것보다 힘든 것이 견디는 것이다.
올바른 깨달음을 위하여 무엇보다 나는 견디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깨달았다.
지선스님은 그렇게 나에게 참다운 인내를 가르치는 인연속에 한줄기 빛을 주고 떠나갔다.
5. 楊花(양화)
새벽의 봄바람을 맞으며 뛰어 가던 나는 멈추어 서서 버드나무를 바라 보았다. 모진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며 바람에 휘날리던 버드나무 가지는 푸르스름하게 물이올랐는가 싶더니 어느새 버들강아지 목을 내밀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손으로 가지를 잡고 버들꽃의 향기가 어떤가 맡으려고 코앞으로 가까이 당기는 찰라!
온세상이 빛으로 가득차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진 형용할 수 없는 환희! 그렇게 나는 87년의 봄을 시작하고 있었다.
도장에 일찍 나와 도복을 갈아 입는데 도복이 더욱 정답게 느껴진다. 빛 바랜 낡은 검은 띠를 잠시 바라보았다. 내가 보아도 낡은 검은 색이다. 그러나 새롭다......
힘찬 기합소리와 더불어 수련생과 땀을 흘리고 그들과 마주 앉았다.
기섭이가 " 사범님! 사범님도 땀을 흘리시네요. " 하고 말을 건넨다.
대답대신 씩웃으니 용기가 났는지 다들 한마디씩 한다. 어린 그들이 마치 버들강아지 같았다.
" 너희들 양화라고 아니? "
" 몰라요 "
" 양화는 버들꽃이야."
" 버들 꽃이 뭐예요? "
" 버들 강아지라고 알지."
" 네 "
" 그거 보면 꽃이 피어 있어! 너희들이 꼭 버들 강아지 같아. 태권도하는 너희들이....태권도가 뭔지 아니 " 하고 물으니
" 태권도는 몸을 튼튼하게 하고 정신을 수양하는 운동입니다."하고 씩씩하게 누군가 말한다.
" 그렇지, 그런데 정신 수양이 뭐지?"
모두들 조용히 꿀먹은 벙어리다.
그렇게 물으면 사범인 나도 대답을 못했었는데..하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뜬 나는 몸을 바르게 고쳐 앉으며 말했다.
" 태권도는 밥먹는 거다. "
" 에이 사범님! 태권도가 밥먹는 거라니요." 하며 누군가 반론을 내놓는다.
" 너희들이 태어났을 때 무엇을 먹었지? "하고 물으니
" 엄마 찌찌 먹었지요." 하고 대답한다.
" 그래 그다음에는 "하고 묻자 " 밥 먹었지요."하고 대답한다.
" 밥 먹을 때 처음부터 너희들은 숟가락 젖가락을 잘 사용 했니? "하고 물으니 모두들 "아니요"하고 대답한다.
" 그런데 지금은 "
" 숟가락으로 밥 잘먹어요."하고 말한다.
" 그래, 봐라 처음에는 못하다가 지금은 잘하잖니. 너희들이 잘한다고 하는 그것이 숟가락질하는 기술이라고 하는 건데 태권도에 있어 앞차기 아래막기도 기술인데 앞차기를 못하다가 열심히 연습하면 잘하게 되는 거 있지. 그것을 일러 기술이 늘었다 라고 하는 거야. 숟가락질도 처음에는 못하다 지금은 잘하잖아. 숟가락질 하는 기술이나 앞차기 아래막기가 뭐가 다르지"하고 말하며 그들을 살펴보니 어느새 모두들 나와 똑 같이 반듯하게 앉아 있는 그들이 나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태권도를 밥먹는 거라고 한 것이란다"
"그래 그러고 보니 태권도는 어디에도 있구나. 너희들이 화장실에 가서 똥을 눌때 바르게 눌줄 아는 것도 태권도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태권도고 절에가서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도 태권도이다." 하고 말하자
" 학교가서 공부하는 것도 태권도네요."하고 누군가 말한다.
" 그~럼, 그것도 태권도이고 말고 "하고 대꾸하니
" 잠자는 것도 태권도인가요? "하고 묻는다.
" 그럼, 잠자는 것도 태권도이지"
" 응아 하는것도 태권도 인가요? "
" 그럼" 하고 대답하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는다.
나도 웃으며 허공을 바라보니 투명한 양화(버들꽃)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렇다. 이것이 진리가 아닐까? 태권도에 있어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른 수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깨달음을 실천하는 생활이야말고 진정한 태권도이리라. 이것은 저 서양의 위대한 철인 Sokrates가 이야기한 知行合一論(지행합일론)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本質(본질)은 理性(이성)에 있다고 본 聖人(성인)은 이성의 기능이 지혜를 찾는데 있다고 하셨다.
그 참된 知가 태권도의 수련을 통한 깨달음이리라.
버드나무 가지가 봄바람에 흔들린다.
楊花(양화)가 춤을 춘다.
6. 흰 띠
진달래가 곱게 피어 마음이 들뜬 봄날!
말을 더듬고 몸이 말을 잘 안듣는 규혁이가 입관을 했다.
흰띠를 매어 주고 주먹 쥐는 법을 알려 주는데 몇번을 알려 주어도 주먹쥐는 것이 잘안된다. 다음날 또 주먹쥐는 것을 알려 주는데 또 안되는 것이였다.
그러자 규혁이가 속이 상했는지 " 사 사 사범님! 저 저 태 태 태권도 안 안 할래요."하고 말한다.
안쓰러워 웃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니 규혁이가 고개를 떨군다. 문득 주먹 쥐는 것이 잘 되는 나를 삼일 동안이나 반복 시키던 사범님 생각이 났다. 그것은 규혁이처럼 주먹을 잘 못쥐는 아이를 지도 하는 것보다 더 힘든일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규혁이가 태권도를 포기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되어 나는 인내를 가지고 지도 하기로 했다. 규혁이에게 주먹 지르기 한번 하기 위해서 나는 여러번 시범을 보여야만 했고 반복된 설명을 계속 해야 했다.
많은 갈등 속에 규혁이를 지도하며 첫 심사(8급)에 응심 시키기 위해서 나는 넉달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첫 심사 날!
규혁이 어머니는 백합꽃으로 만들어진 꽃다발을 준비해 오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 사범님! 규혁이가 사범님 이야기만 해요. 이번 심사에 기대가 굉장히 큰데.... 합격해야 이 꽃다발을 줄텐데.... "
심사가 시작되고 규혁이는 앞차기에 이어 태극1장을 하기 시작했다. 어설픈 동작으로 열심히 하던 규혁이가 17번째 동작에서 다리가 꼬이며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장내는 시간이 정지된 듯 잠시 조용하다가 이내 웃음바다가 되었다. 순간 나는 " 아! 어떻게 할까? "하고 고심하다 규혁이를 바라보며 박수를 쳐 주었다.
일어선 규혁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 규혁아! 다시 시작해 " 하고 내가 힘있게 말하자 나를 쳐다 본다 .
" 준비! 태극1장 시~작" 하고 구령을 붙이자 규혁이는 다시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규혁이가 끝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잠시후 박수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바라보니 규혁이는 태극1장 마지막 18번째 동작인 앞굽이 몸통 반대 지르기를 하고 있었다.
심사가 끝나고 꽃다발을 내게 가져오는 규혁이! 비로소 나는 규혁이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이 소중한지를 아는 그 마음을....콧등이 찡해져온다.
그랬다. 규혁이는 내게 자신을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嵩山(숭산) 소림사에서 신광이 달마에게 자기를 맡기듯.....
傳燈錄(전등록)에 전해지기를
『神光(신광)은 달마를 만나기 전에 공자와 노자의 교리 그리고 장자와 주역을 통하고도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신광은 道를 구하기 위해 소림사로 가서 달마를 조석으로 섬기며 물었으나 아무런 가르침이 없자 홀로 생각하기를 " 옛사람이 도를 구할 때는 뼈를 깨뜨려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 주린 이를 구제하고, 머리를 진땅에 펴고 벼랑에서 떨어져 주린 호랑이를 먹였다. 옛사람도 이러하거늘 나는 또 어떤 사람인가." 하며 그 해 12월 9일 밤 폭설이 내리는데 신광은 꼼짝도 않고 서 있으니 새벽녘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달마가 민망히 생각하여 물었다.
" 네가 눈 속에 오래 서서 무엇을 구하는가?"
이에 신광은 슬피 울면서 사뢰었다.
" 바라옵건데 감로의 문을 여시어 여러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여 주시옵소서 "
달마가 대답하였다.
" 위 없는 묘한 도는 여러 날을 부지런히 정진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 법을 바라는가. 이는 헛수고만 할 뿐이다."
이 말을 들은 신광은 달마가 자기의 작은 공덕과 지혜와 경솔함과 교만함이 가득찬 마음을 질책하는 것을 깨닫고 슬며시 칼을 뽑아 왼쪽 팔을 잘랐다고 한다. 그것으로 신광이 자기의 마음을 보이자 달마는 신광이 법기임을 비로소 깨닫고 혜가라는 법명과 법(道)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
흰띠!
자기를 스승에게 맡길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흰띠인 그러한 제자다움을....나는 규혁이를 통해 느끼면서 참된 스승이란 흰띠와 만나면 흰띠가 되어야 진정한 스승이 되리라 생각하며 그가 전해준 백합꽃을 바라 보았다.
" 향기가 좋고 아름다웠다! 오래도록 나의 기억에 남을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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