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재 칼럼] 태권도 미래와 농부의 지혜
"태권도의 과거와 미래를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박천재 교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나는 나름 농사일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그중 농부가 빼놓지 않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쟁기질’이다. 지금은 대부분 기계들이 대신하고 있지만 그때는 소가 멍애를 메고 땅을 갈고 뒤집어엎었다.지혜 있는 농부는 척박한 땅을 다시 비옥한 땅으로 바꾸기 위해 땅을 깊게 갈고 두엄을 뿌리는 객토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소출증대를 위해서는 이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농부들은 잘 알고 있다.한 가지 더.현명한 농부는 많은 생각을 하고 노력하되 알찬 열매가 맺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태권도는 지난 수십여 년 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2000 시드니올림픽에 정식종목이 채택된데 이어 현재 206 회원국, 8천만 명의 수련인구, 대한민국의 10대 문화유산으로 국내외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태권도는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신체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이같은 결과를 우연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김운용이라는 태권도 미래에 대한 혜안과 지도력 그리고 국내외 태권도 지도자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졌다. 비정통 태권도인 아니 비사범 출신 김운용 대태협 회장은 1972년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영동 말죽거리에 땅을 파고 그곳에 국기원을 세웠다. 태권도의 상징이 되는 원로 태권도 지도자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와 손을 잡고.나는 그것을 미래의 태권도를 위한 객토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때까지의 태권도의 위치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했었다. 대부분의 도장들은 시장통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종종 불량배 따위들이나 하는 것으로 폄하되기도 했었다.만약 허허벌판 말죽거리의 객토작업이 없었던들 오늘과 같은 태권도 역시 존재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장이 예전만 못하다” “뭔가 새롭게 해야만 될 것 같다”이게 무슨 말인가?국내외를 막론하고 태권도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지도자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들이다. 도장운영도 어렵고 여기저기에서 성황리에 열렸던 태권도 시합도 이젠 그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지난 주 세계 태권도 본부도장 국기원에서는 오물투척이라는 치욕스러운 일이 다시 벌어졌다.이사회는 뭐고 국기원 존재 가치가 뭐길래.하여튼 전 세계 모든 태권도인들이 다같이 똥물을 뒤집어 쓴 것은 사실이다.
태권도에 관심을 두고 있는 모 텔레비전 프로듀서가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태권도인들의 자화상” 이라고.이와 관련해서 국내 최고단자 모임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해외 태권도 지도자들은 청와대에서 직간접적으로 나서 국기원의 시끄러운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청원하고 나섰다.
또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국기원 리더쉽에 대한 비판 또는 기다려야 한다는 목소리로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현 사태를 보면서 마치 ‘볼은 무지하게 열심히 차지만, 방향을 잃은 축구선수들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적어도 자살골은 먹지 말아야 한다.
지금 태권도계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뒤집어엎고 거름 주는 객토작업이다.언제부턴가 태권도계는 열매를 거두어들이기에 바빴다. 갈아엎고 거름 주는 작업을 게을리 했다. 그동안 태권도 지도자들은 자기수양과 도덕을 가르쳐 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 나름 부(富)도 축적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경기 룰과 보호대를 개발하여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국제 스포츠로도 도약했다.그러나 이제 그 땅이 척박해졌다. 지나친 상업주의에 치인 나머지 태권도는 그 가치와 목적이 혼동됨은 물론 수행적 행위라는 그 독특함 마저 잃어가고 있다.
재미와 공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관중 그리고 대중 매스컴의 장단에 맞추다 보니 옷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라고 혹자들은 말한다. 제도권에서는 리더쉽에 대한 정통성 시비로 불협화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그러나 귀를 열고 들어봐도 태권도 미래를 향한 혜안이나 대안에 대한 소리는 들어보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태권도가 성장하기에 너무나 척박해진 환경에 처해 있다는 증거다.미래 태권도를 위해 누가 어떻게 객토작업을 해야 할까?
옛말에 잃어버린 곳에 가야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최초 국기원은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어 정부와는 관계없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초대원장이었던 김운용 박사가 물러난 후 정통 태권도인 출신 원장이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국기원은 태권도인들의 연대서명의 결과로 대한민국 정부로 넘어갔다.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일들로 국기원이 시끄러워지자 원로 태권도인들이 주축이 되어 정부에 넘겨주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자체적으로 해결을 못한 채….
그 이후 태권도계의 자생능력이 향상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다.그때 뜻있는 해외 지도자들은 나름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었다.태권도의 국제적 본부인 국기원이 어느 특정 정부에 속하게 되면 그에 따를 역기능을 염려한 것이었다.
해외 지도자들은 여타 국제단체들이 어느 국가에 속하지 않고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최근 해외 태권도 지도자들은 국기원 리더쉽이 태권도를 상징할 수 있는 정통 태권도인의 손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로 SNS를 달구고 있다.
문체부는 국기원을 문체부 부처 소관으로 넘겨 달라고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태권도인들 스스로가 문체부를 국기원 이사회 정관을 승인하고, 이사장 임이면권을 가진 상부기관(?)로 초대했다.
상부기관 문체부가 승인한 정관 어디에도 원장은 최고 단이어야 한다고 적혀져 있지 않다.양수겹장이라고 했던가.빼어난 리더쉽과 태권도에서 잔뼈가 굵은 수장은 태권도계의 정서를 깊게 이해할 수 있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이제 물건을 잃어버린 곳으로 돌아가자.
태권도장으로 성공한 케이스들을 살펴보자.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공한 요인 중 단수가 최고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쉽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시장구조에 따른 마케팅 전략, 운영철학, 리더쉽, 일에 대한 열정, 끊임없는 주변환경과 소통능력, 등 태권도 단수외 또다른 요인들이 성공을 가름하는데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성공적인 지도자들은 단증을 벽에 걸어 놓긴 하지만 도장 안에 가부좌을 틀고 앉아서 권위 의식만을 내세우려 들지도 않는다.
세계 태권도 중앙도장 국기원은 변해야 한다.밖으로 나가 일선 지도자들의 눈높이와 의견이 반영된 맞춤형 사업을 해야한다.경영 역시 세계 중앙 도장으로 본이 되어야 한다.그래야만 그 존재 가치가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지도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국제경영 체제로 전환되어 세계본부에 걸맞는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고 진행해야 한다. 정관과 의결기관인 이사회 구성이 글로벌하지 않고서는 이같은 시대적 요청을 담아 낼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취임사에서 국기원을 글로벌화 시켜나가겠다고 천명한 오현득 원장은 정당한 과정을 거쳐 그 일을 실천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한때 인기를 누렸던 성인부 태권도 시장이 요가와 MMA에 잠식당하고 있다. 유년부는 축구 등 지역 스포츠에 크게 위협 받고 있다.결코 녹녹치 않은 적들이 진을 치고 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MMA를 극복할 수 있는 수련법을 개발하고 낮아진 연령층에 맞춰 인성교육에 초점을 둔 체계적인 지도법을 연구하고 마케팅 전략도 세워야 한다. 외적 성장이 아닌 내적 성숙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우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의식있는 원로들이 일어나 자정운동을 펼쳐주면 좋겠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능력 있는 후진들이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부터 시작해 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린다. 국기원에 오물을 투척하기 보다는 땅을 파고 씨뿌렸던 지난날의 지혜를 후배들에게 일러주시기 바란다.
큰 무당은 굿에 온 마음을 쏟고 작은 무당은 주머니에 담을 돈에 마음을 두고 있다고 한다.지금 제도권내의 태권도 지도자들이 모두 큰 무당이기 바란다. 그래야 태권도의 미래가 기 때문이다.
뜻있는 해외 지도자들도 윈윈할 수 있는 대화의 물꼬를 터야한다. 우리 모두를 자멸시키는 무리수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이쯤에서 힘을 소모하고 태권도에 상처를 입히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 발로에 의한 싸움은 잠시 멈추자.
그리고 태권도의 과거와 미래를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그리고 다시 논해보자. 현명한 농부는 갈아엎고 거름주고 열매 맺기까지 소요되는 기다림의 소중함을 잘 안다. 우리도 농부의 마음을 한번 얻어보자.
박천재 교수 약력
-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학 여가스포츠사회심리학 박사 (1995)
- Park 태권도 리서치 센터 센터장 (2016)
-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미국 태권도팀 단장(2015)
- 국기원 9단 승단(2015)
-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우승(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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