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무예사랑방] 칠전팔기(七顚八起) 거미줄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고사

이정규 사범

아주 오랜 옛날 전투에 패해 쫓긴 장수 하나가 조그만 굴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간신히 비집고 앉은 굴 입구에 거미 하나가 줄을 쳤다.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거미줄을 손으로 흩어버렸다. 거미는 처음부터 다시 줄을 치기 시작했다. 딱히 숨어있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도 없고 해서 거미가 줄 다 치자 아무 생각 없이 다시 흩어버렸다. 그런데도 거미는 포기하지 않고 또 줄을 치고 말았다.

‘이젠 하찮은 미물까지 나를 무시하는구나!’ 괘씸한 마음에 그렇게 다 만든 거미줄을 일곱 번이나 흩어 버렸는데도 거미는 묵묵히 여덟 번째 거미줄을 치더란다. ‘이런 답답한 놈이 있나? 이쯤 되면 포기할 일이지!’하며 거미의 우둔함을 탓하던 순간 갑자기 적병의 수색대가 굴 입구에 들이 닥쳤다.

이젠 꼼짝없이 죽었다 싶어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있자니 노련한 적 병사 하나가 굴 입구로 다가와 거미줄로 입구가 막힌 것을 보고는 아무도 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니 수색할 필요가 없다며 동료들을 이끌고 돌아서 버렸다.

자연 상태의 거미줄은 일부러 걷어내지 않는 한 비바람에도 잘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에서 적병을 추격할 땐 거미줄이 끊어진 것을 보면 적이 지나간 흔적이라 여겨 그 곳을 따라 추격을 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러니 그 병사 역시 사람이 굴에 들어갔다면 당연히 거미줄이 끊어져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거미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장수는 하찮은 거미를 다시 보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는 거미의 불굴의 정신에 목숨을 빚지고 큰 깨달음을 얻은 장수는 나중에 재기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여러 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칠전팔기, 백절불굴의 기백이 바로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보는 이 거미줄에서 유래한 것이다.

거미줄과의 전쟁

새 도장에 처음 이사를 가서 보니 도장 바닥과 벽 사이에 사선으로 손바닥만 하게 쳐진 거미줄이 보였다. 나뭇가지 사이에 날렵하고 짜임새 있게 짜놓은 거미줄과는 다르게 솜씨 없는 목수가 마지못해 지은 집처럼 얼기설기 줄 몇 개 그어 놓은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 게으른 목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게을러서 먹고는 살겠냐?’ 속으로만 훈수를 두며 거미줄을 발로 밀어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양으로 거미줄이 쳐 있었다. ‘그 놈이네.’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또 발로 밀어 흩어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양의 거미줄이 걸려 있었다. ‘어라? 또 그 놈이네?’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기는 마찬가지인지라 좀 야박한가도 싶었지만 그래도 매일 한 뼘도 안 되는 거미줄을 볼 때마다 발로 차 걷어냈다.

하지만 아무리 철거작업을 해도 그 무허가 건축물은 다음 날이면 버젓이 신축되었다. ‘어쭈, 이놈 봐라?’ 언제부터는 오기가 발동해서 도장에 오면 그 거미줄부터 발로 차 밀어버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은 곧 잊혀 지기 마련. 나는 걷어 내고 제 놈은 다시 치고 그렇게 무덤덤하게 날이 가고 세월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깜짝 놀라 정신이 확 들었다. ‘아니, 벌써 3년째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거미줄을 볼 때마다 발로 지우고 제 놈은 밤마다 새로 치는 작업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거미 한마리가 그리 오래 살 수 있나? 아닐 것이다. 그 거미줄은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으니 아마 할아버지 거미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다시 손자를 낳아 대물림으로 끊임없이 쳐 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도장 거미들은 7전8기가 아니라 999전1000기가 넘는 노력의 대가 중의 대가라는 말이다!

노력의 공답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마음만 고쳐먹고 보면 우린 거미에서도 배울 점이 엄청나게 많다. 자연을 순환시키기 위해 하늘이 맡겨 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해나가는 성실성이 바로 그 중 하나이다.

살다보면 앞뒤가 꽉 막혀 굉장히 어려울 때 극적으로 일이 해결 되는 경험을 한 적이있을 것이다. 중요한 프로젝트도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야 갑자기 아이디어가 나와 처리를 해내는 경우도 많다.이런 때가 바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이 실감 날 때이다.

이것은 끝까지 노력할 때 기회가 온다는 것을 하늘이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조급하게 포기 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마음이 급해서는 어떠한작품도 완성시킬 수가 없다. 역사 속에 남은 위대한 작품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 않았으며 역사에 획을 그은 영웅들도 일생의 고난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마침내 그 뜻을 이루어 내지 않았던가?

이렇게 세상 어떤 일이든 항상 고비를 넘겨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고비를 넘기지 않고는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에 우리는 항상 노력이라는 단어를 가슴 깊이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노력은 해보지만 실패를 하는 것은 그 정도와 끈기가 깊질 못해 끝까지 밀고 나가지를 못하기에 성공을 눈앞에 두고도 번번이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뜻을 품고 묵묵히 끝까지 노력만 해나가면 그만이다. 그러다보면 하늘이 도울 때가 분명히 온다. 왜 그런가? 하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정말 그 일을 하려는가? 마음은 정했는가? 어려움을 이겨낼 각오는 되었는가?’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다.

내가 먼저 지쳐 포기한다면 할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힘을 내면 좋은 기회를 준다. 이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보는 면접이고 시험이다.

성공 세미나

지난 주말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한 '무도 비즈니스 세미나'에 다녀왔다. 평소대로라면 지금 바로 도장 수익을 높여줄 긴요한 방법은 없을까를 궁리하며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세미나에서 오가는 내용들보다 열심히 강연을 하시는 연사들께 눈이 갔다. 그들은 남들이 따라가길 원하는 이 분야 최고의 리더들이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도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가는 경영기법을 알려주지만 사실 성공한 도장의 소프트웨어의 중심엔 ‘경영기법’이 아닌 저 ‘인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도장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한 가지 방법도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시켜 써가야 한다. 하지만 그 변화무쌍한 상황들을 초지일관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중심을 지키고 있던 바로 저분들의 뚝심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공의 대명사로 불리는 세미나 연사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강연장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언변에 프로페셔널 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전사(戰士)의 느낌을 주지만 사석에선 그렇게 편안하고 맘씨 좋은 형님일 수 없고 시골동네 삼촌 같은 털털한 모습을 갖추고 계신다. 남 보기엔 무모하리만치 강력한 추진력에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냉정함을 갖추고 있으리라 생각이 들지만 알고 보면 더 없이 따듯하고 친근한 모습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선지 꾸임 없고 격식 없는 서글서글함 속에서 혼자만 성공을 만끽하는 사업가가 아니라 어떻든 함께 성공이라는 고지를 향해 달려 가기위해 손을 잡아 이끄는 노병(老兵)의 의리가 느껴진다. 이런 친근함 때문에 그 간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나갈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열정, 패기

그리고 이분들이 품은 무도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라도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분들의 열정 가득한 얼굴에선 무도로 돈을 버는 사업가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무도로 인생을 헤쳐 나가며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혁명가의 모습이 더 진하게 묻어났다.

그래선지 눈만 뜨고 입만 열면 무도 수련의 가치를 높일 방안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연구하는데 온 정열을 다 받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먹고 살기위해 마지못해 도장을 운영한다면 도저히 저런 비전과 열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한 평생을 닦아온 자신의 무도에 대한 사랑과 애끓는 열정이 오늘에 이르러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두게 만든 것이 아닐까?

세미나 후 사석에서 만나본 이 분들의 성공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오늘의 현실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당신들이 이룬 성공은 아낌없이 뒤로 물려 준 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뛰고 있었다. 이 분들이야 말로 누구보다 더 많은 인생의 파도를 맞았건만 포기할 줄 모르는 칠전팔기 거미의 정신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아닌가?

어릴 적 도장 벽에 소복하게 먼지가 쌓인 채 걸려있던 칠전팔기, 백절불굴이라는 액자들이 생각난다. 아무도 관심 있게 쳐다보지 않던 구태의연한 액자 속의 글자들이었건만 오늘따라이토록 신선한 느낌으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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