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무예사랑방] 프로골퍼와 무예사범

프로골퍼와의 자리


오래 전 태권도를 배웠던 수련생 한명이 직장을 따라 멀리 떠났다 다시 찾아왔다. 개인 사업을 하는데 꽤나 잘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오랜만의 귀향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가보니 대동한 손님이 계셨는데 프로골퍼라고 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는데 개인레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벼 차례가 안 오니 여름휴가를 맞아 아예 뉴욕부터 마이애미까지 남북으로 미국을 종주하면서 유명 골프장을 도는 골프투어를 앞세워 모시고 다니며 개인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만나기 힘든 ‘비싼 분’이셨다. 프로골퍼에도 레벨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골프를 모르는 내겐 그냥 보통 사람일 밖에.......

프로골퍼가 떴다는 소식에 대접을 하겠다며 동네골퍼들이 만든 자리였다. 서로들 프로골퍼에게 인정받고 싶은지 ‘몇 년 전 어느 골프장 몇 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는데....... 그 땐 참 위기였었는데 내가 말이야......’ 등등. 허세 가득한 무용담들을 듣다보니 마치 삼국지의 관우가 청룡도 대신 골프클럽을 비껴 차고, 적토마 대신 골프카트를 타고 달리며 적군을 맞아 싸우는 듯 한 비장한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러면서 골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운동인지 마구 침을 튀기는데 정작 프로골퍼만 아무 말이 없었다.

화려한 경력 뒤엔 남모를 고생도 많았을 것은 뻔한 일, 한참을 듣다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거들었다. “그 경지까지 가려면 고생이 엄청 났겠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물만난 고기처럼 동네골퍼들이 차마 경험하지 못했을 프로골퍼들의 애환 어린 비운(悲運)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을수록 태권도로 살아오며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 평생을 골프로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들이 종목만 다를 뿐 일맥상통함을 느꼈다. 골프의 고수나 태권도의 고수의 경지가 같고, 타격의 원리, 수련의 원리, 해묵은 부상과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체력저하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막상 갈 곳 없어 제자리만 맴도는 듯한 이 답답함,,,. 나아가 더 나은 차세대 주자들을 키워내고픈 사명감 등 주제마다 이심전심 공감이 갔다. 게다가 골프에서 나온 지혜들은 태권도에 바로 적용시켜도 손색이 없을 뿐더러 태권도 사범으로서도 꼭 배워두어야 할 점들이 말속에 속속 묻어났다.

말은 못했지만 ‘아~, 골프의 세상이나 무예의 세상이나 프로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고수가 되면 하수들과 나눌 말이 있고 나누지 못할 말이 있는 법인데 그 동안 말 통하는 사람 못 만나 속이 막혔었나 보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골프의 고수를 만나 도리어 좁았던 내 무예에 대한 견문을 새로 넓힌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사천리로 말을 풀어내는 프로골퍼와 골프에 일자무식인 태권도 사범만 신나던 어색한 자리가 파하자 동네골퍼들은 프로골퍼가 개인적인 연락처라도 하나 남겨주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나중에 꼭 한 번 보자며 나에게만 따로 연락처를 주고 떠나자 다들 아쉬운 입맛만 다셨다. 나로선 많은 것을 배워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 드리는 것밖엔 다르게 감사를 표할 수 가 없어 아쉬운 헤어짐이었다.


내공 갖춤의 효과

한 무예에 오랜 시간을 바쳐 대가(大家)가 되고 나면 다른 무예를 배우긴 쉽다. 척 보고 몇 번만 따라 해도 그 대의를 파악하고 내 것으로 소화시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정통하게 틀을 세운 사람이라면 그 갖춘 내공과 안목 덕분에 다른 분야는 슬쩍 보기만 해도 그 대의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즉, 세상을 두루두루 넓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태권도나 어떤 무예로 정통하게 한 분야의 내공을 쌓은 이라면 다른 무예는 물론 인문, 사회, 정치, 경제, 예술 등 어떤 분야의 대가하고도 쉽게 말이 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문리(文理)가 터져 세상 다른 이치들도 터득할 수 있게 되어 사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능히 세상을 논하고 경영해 갈 도인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대자연의 운행법에는 ‘기운은 끼리끼리 모인다.’는 법칙이 있다. 비슷한 수준의 기운끼리는 서로 당겨 모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자기 분야에서 내공을 갖춰 대가(大家)가 되고 나면 자연스레 기운 레벨이 같은 다른 분야의 대가들과 만날 일이 자주 생기게 된다. 즉, 내 분야의 실력을 갖춰 1등급이 되었다면 다른 분야의 1등급과 만날 일이 자주 생기고 내 분야에서 2등급의 실력을 갖췄다면 다른 분야의 2등급과 만날 일이 생길 것이고 내 분야에서 3등급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기를 써도 다른 분야의 3등급 사람들하고 밖엔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왜 기운이 크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가? 내게는 왜 이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는가? 난 왜 이리도 운이 없는가?’ 그 이유는 바로 내게 있다. 내가 갖춘 ‘내공’의 수준이 낮기 때문인 것이다.

내공 융합

이처럼 오랜 기간 수련을 거쳐 무예의 고단자가 되고나면 갖춘 내공의 깊이에 맞게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지식인을 만나고, 기업인을 만나고 정치인을 만날 일들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런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질 때 평소 내 분야에 정통하면서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소양만 갖추어 놓았다면 내 분야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그 분야의 문제에 조언을 해 줄 실력도 갖게 된다. 서로의 분야가 다르더라도 말이 통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려 누구든 경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때 만나는 높은 사람들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고 늘 쓸 만한 인재를 구하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말 몇 마디 섞어보니 남다른 내공과 세상을 보는 신선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싶으면 즉시 호감을 갖고 따로 만날 기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연스럽게 기운이 큰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생기고 함께 큰일도 하게 된다.

반면에 무예의 고단자라고 높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맨 치고받는 이야기만 한다면 세상을 보는 안목이 낮아 곧 무시당하고 말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코피 터지게 싸우자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바꿀 만한 신선한 안목과 지혜를 구하고 있다. 주먹질로 어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래서 무인이라고 외골수로 무예수련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지식도 두루두루 갖추고 살펴 세상을 보는 안목도 키워내야 한다. 무예에 대한 편중된 지식만 쌓으면 사통팔달 뚫고 달려야 하는 인생을 바르게 살 수도 없고 다른 분야를 잘 이해 못해 자신이 닦은 무예의 활용도마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만사를 넓게 볼 줄 알 때 비로소 퓨전, 통합의 지혜가 발휘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새로운 미래의 문도 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왜 힘들게 단련을 거듭하여 고단자가 되려 하는가? 큰 기운을 갖춰 세상에 쓸모 있는 인재가 되려는 것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저 상대와 싸워 이겨먹기 위한 단련이라면 땀 흘려 고생한 수고는 편협하고 쓸모 적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수행

아무리 뛰어난 검객이라도 검술만으로는 완성된 무인(武人)이 될 순 없을 것이다. 때론 검과 무관한 시도 읊조려야 하고 꽃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한가한 시간을 골라 책도 뒤적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좋은 친구들과의 여유로운 차 한 잔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렇게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진정한 무인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살며 경험하고 갖춘 다방면의 지식들과 그 간 닦아온 무예의 내공이 융합되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영롱하게 수놓는 저 별과 같이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수행이 바로 오늘 우리 무인(武人)들이 힘써야 할 수행은 아닐까?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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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무토 2015.07.1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사범님 나중에 미국에 가서 꼭 찾아뵙고 싶네요. ^ ^
... 2015.07.14
이사범님, 이번에도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무인으로서 어떻게 세상에 나아갈 지 준비하도록 제촉하는 글입니다. 다음번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뉴져지 이사범 2015.07.15
글 감사합니다 ,도의 수준이 높지않은 제자신에 도전이 되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