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禪의 숨결… 경주 골굴사
동지를 하루 앞둔 21일 오전 불교무술 선무도의 중심지인 경주 함월산 골굴사를 오르는 길은 몹시 추웠다. 얼어붙은 연못이 있는 입구부터 몰아친 찬바람이 살깥을 파고들어 옷깃을 다시 여민 후 발길을 재촉했다.
마치 동굴처럼 깊은 골짜기를 따라 5분쯤 올라가자 멀리 석회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이 눈에 들어왔다. 1000년 세월을 견딘 마애여래불 아래로 숭숭 뚫린 구멍들이 마치 사람 두개골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이름도 골굴사다. 각각의 석굴에는 관음보살·약사여래·지장보살 등이 모셔져 있다.
절 입구에 다다르자 청량한 풍경소리와 목탁 소리가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줬다. 본당으로 향하자 눈처럼 흰 진돗개 한 마리가 나와 손님을 마중했다. 겨울에 태아났다고 해서 ‘동아’라고 불리는 녀석은 목에 의젓한 염주 목걸이를 한 것이 제법 속세의 때를 벗은 모양이다. 불당의 새벽 예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한다고 한다.
마애불로 오르는 108계단에서는 스님과 일반인 수련자 10여명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오리걸음으로 올랐던 계단을 다시 엎드려뻗친 자세로 내려온다. 잠시 쉴 틈도 없이 구령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토끼 뜀이다. 토끼 뜀으로 오른 계단을 다시 발차기를 하면서 내려온다. 선무도 수련자들은 매주 금요일이면 선무도 기본동작을 108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익힌다고 한다. 수련자 중 막내인 이다빈(9·서울 마포구)군이 “좀 쉬었다 해요”라며 힘든 표정을 지어보지만 김성봉(28) 사범은 “이번엔 올라갈 차례”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경주에서 감포방향으로 20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골굴사는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 9세기 인도인 승려 광유 일행이 이곳 석회암벽에 마애불을 새기고 바위에 12곳의 석굴을 뚫어 법당을 꾸몄다.
90년대 초 골굴사 주지로 부임한 적운스님이 불가 전통수행법인 ‘불교금강영관’을 대중화시키면서 선무도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때부터 골굴사는 선무도 전파의 중심지가 됐다. 한국의 ‘돈황 석굴’이 ‘소림사’로 변신한 셈이다.
적운스님은 “골굴사와 인근 기림사는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이었고 조선시대 승병들의 요람이었다”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단절이 있었지만 한국 불교무술의 역사가 서린 곳”이라고 말했다. 골굴사 석굴들 중 제일 처음 맞닥뜨린 산신당(산신을 모신 곳)에서 유·불·선이 융합됐던 신라시대 화랑도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마애불 옆길로 함월산을 더 올라가면 용이 되어 신라의 바다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화랑과 승병들의 숨결이 서려있는 골굴사에서 내려다 본 문무왕릉은 호국 정신을 새삼 생각해보게 한다.
■ 선무도란?
불가에 비전돼 온 무술 선무도는 심신의 수련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이다. 호흡을 따라 몸과 마음을 조화시키고, 움직임(동)과 고요함(정)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해탈을 추구한다. 일반인들에게는 건강을 지키는 수단으로 인기다. 수련한 지 7개월됐다는 김모(38·울산광역시)씨는 “5년 전부터 당뇨로 고생했는데 선무도를 익히기 시작한 후로는 약을 먹지 않아도 혈당이 정상 수치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무도의 수행방법은 크게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으로 나뉜다. 정적인 것을 영정, 동적인 것을 영동이라고 한다. 자세는 앉은 자세의 좌관, 선 자세의 입관, 움직이면서 하는 행관으로 구분된다. 이를 합친 것이 ▲영정좌관·영동좌관 ▲영정입관·영동입관 ▲영정행관·영동행관이다.
모든 수행은 호흡과 일치되야 하며, 가장 어려운 것은 영동좌관이라고 한다. 제대로 익히는데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호흡법과 기초동작만 꾸준히 반복해도 건강증진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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