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무예사랑방] 도(道)와 도술(道術) – 장풍, 삼성둔영보법

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 도(道)와 도술(道術)


이정규 사범

우리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는 많고 많은 병법 중 하나다, 병법에는 대규모 군사를 움직이는 병법이 있는가 하면 태권도, 유도, 합기도, 가라테, 주짓수 등과 같이 단병접전에 쓰이는 기술도 포함 된다.

어쨌거나 병법에 있어 그 근본은 속임수라 할 수 있다. 구덩이를 파서 적을 유인하며 어둠을 틈타 뒤통수를 치고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상대의 급소는 찾아 의표를 찔러 기습한다. 승리를 위해선 허장성세(虛張聲勢: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떠벌림),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 요란한 소리를 내 이목을 끌고 서쪽을 들이침), 상취하타(上吹下打: 위쪽을 공격하듯 현혹시키고 아래를 침)등의 속임수가 중요한 기술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만약 하늘을 나르고 바위를 쪼개며 허공에 칼을 날리는 수법을 익힌다면 이 따위 속임수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것이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도술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유이다.

굳이 무예의 고수를 꿈꾸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현대사회에선 누구나 초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환상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엑스 맨, 헐크 등등 가공할 초능력을 발휘하는 슈퍼 히어로들이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지구를 구해내는 할리우드 SF액션영화들이 철마다 극장가를 휩쓸고 있질 않는가? 맨몸으로 하늘을 날고 빌딩을 부수며 쏟아지는 총탄을 가랑비 맞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슈퍼 히어로들의 초능력 파워는 동양 무협지에 등장하는 고강한 내공을 기반으로 한 도술의 서양식 버전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장풍(掌風)

평생을 무예수련에 미쳐 살던 선배 관장님이 한 노스님의 장풍을 우연히 보고 놀라 세상을 등지고 무작정 산으로 쫓아 들어갔을 때였다.

도승(道僧)으로 유명했던 이 노스님이 거하신 암자는 우리나라에서 해발고도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암자로 삼국시대부터 내려왔다는 유서 깊은 암자다. 그래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유적 중 하나지만 가슴 아프게 불가에서도 속세와 마찬가지로 이런 곳을 차지하려는 알력과 암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루는 이 암자를 차지하고픈 이들이 고용한 해결사 깡패 중 하나가 노스님을 찾아와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면 암자를 접수하겠다고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받아주질 않자 산 아래 동네에 내려가 대낮부터 술을 마시곤 발가벗고 춤을 추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어찌 중이 저럴 수가 있냐?’며 산 위의 노스님을 찾아 항의하는 차에 어쩔 수 없이 깡패 중을 불러 들였다. “네 말대로 해 주되, 대신 지면 꼼짝 말고 내 밑에서 1년간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암자 마당에 두 사람이 마주 섰다.

깡패 중은 팔소매 밑에 쇠 피리를 묶고 다녔는데 이것이 무기였다. 나중에 보니 그 끝으로 소나무를 찍으면 “파바팍!”하며 눈 깜짝 할 사이에 인중, 명치, 낭심 높이에 한 치 깊이로 피리가 박히는 치명적인 기법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쇠 피리를 빼들고 공격 자세를 취한 깡패 중을 향해 노스님이 검지와 중지를 붙여 손가락을 뻗자 손에서 피리가 날아가 떨어졌다. 장풍이었다. “졌지?”하고 묻자 익히 소문 들어 알던 터라 놀라기는커녕, “지긴 누가 지냐? 피리를 놓쳤을 뿐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우겼단다. 이번엔 장(掌)을 들어 장풍을 쏘자 깡패중이 달려들다가 자빠져 버렸다. “졌지?” 그러자 “혼자 미끄러진 거다. 인정할 수 없다!”며 또 우기더란다. 이에 화가 난 노스님이 “저런 놈은 혼이 나야 한다.”며 다시 장풍을 날리자 깡패 중은 “억!” 소리 한 마디에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고. 한참 만에 의식을 찾은 깡패중이 무릎 꿇고 잘못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뒤로 암자에 잡혀 선배 관장님 옆에 나란히 앉아 일 년을 원치도 않은 수행을 했다.

삼성둔영보법(參星屯營步法)

이 노스님은 어려서 절에 맡겨졌는데 그 분의 조부께선 택견의 대가(大家)셨다고 한다. 가끔씩 절에 들리셔서 택견을 가르치셨지만 어린 소견에 부모 없이 절간에 버려진 것도 서러운데 무예는 배워 뭐 하나 싶어 반항을 했단다. 그때마다 조부께서 곰방대로 머리통을 내리치시니 팔소매 밑에 대나무 조각을 잘라 숨겨 막으면서까지 안 배우겠다고 발버둥을 치다 마지못해 배운 것이 ‘삼성둔영보법(參星屯營步法)’까지였다고 한다.
삼성둔영보법이란 공중에 뛰어 올라 허공을 세 번 밟고 상대를 차는 허공답보(虛空踏步)의 한 기법인데 이 때 세 걸음은 단순히 뛰어오르는 걸음이 아니라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뛸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구한말(舊韓末) 외세에 의해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염려한 애국지사들이 한 민가에서 극비리에 회동을 하다 발각되어 관군들에게 포위를 당했던 적이 있다. 포도대장이 투항할 것을 명하자 사람들이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와 사방으로 뛰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말위에 앉아 있던 포도대장의 얼굴을 발로 차 떨어뜨리곤 그 말을 빼앗아 타고 사라졌고 나머지 사람들 역시 번개처럼 군사들의 포위를 뚫고 사라져 한 명도 체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 사용된 기술도 삼성둔영보법이었다. 하지만 ‘삼성둔영보법’이 택견의 최고의 수는 아니고 ‘칠성둔영보법(七星屯營步法)’ 최고의 수이며 조부님은 이 경지에 이르셨다고 했다.

선배 관장님은 평생 무술 수련에 매진한 분이니 당연히 배우고픈 욕심에 삼성둔영보법을 익히려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여쭙자 3년을 지성으로 수행한 바가 있으니 3년만 더 공을 들이면 된다고 하셨단다. 선배 관장님은 부인과 어린 딸을 버리고 산중에 들어와 이미 최후 이혼통첩장을 받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죽을 고생한 것도 모자라 다시 3년 수행이라니 엄두가 안나 하산하셨다고 했다.

일양지(一陽指)

소림권법에 일양지라는 기법이 있다. 한 손가락 끝에 공력을 모아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손가락의 공력이 그 정도니 가히 살을 뚫고 근육을 찢을 수 있다. 선배 관장님이 노스님께 여쭈었다고 한다. “일양지가 가능하긴 합니까?” “그럼!” “에이~, 사람이 어떻게 한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섭니까? 말씀도 참.......” 그러자 “이놈이?” 하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서셨단다. 그리고는 “이~압!”하고 기합을 넣으면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튕겨 밀고 올라서 검지 손끝만으로 물구나무를 섰다고 했다. 그 모습에 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자 “이제 봤지?”하며 다시 몸을 내려 자리에 앉으시더라고.

의공(意功)

한 제자가 노스님의 금주령을 어기고 게으름까지 피다 걸렸는데 불호령 떨어질 것이 무서워 술을 마신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스승을 속이려들다니 머리통이 깨져야 정신을 차릴 놈이구나!”하고 고함을 치자 노스님 눈에서 파란 불빛이 번쩍 튀더니 제자 혼자서 머리통을 땅에 “꽝! 꽝! 꽝!” 박고 쓰러졌다고. 나중에 선배관장님이 몰래 물으니 누군가 뒤통수를 잡고 땅에 쳐 박는데 아파도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고 했단다.
하루는 선배 관장님께 노스님이 물으시더란다. “너희 무술한 놈들은 왜 그렇게 코피 터지게싸우느냐? 지저분하게.” “네? 그럼 어떻게 싸웁니까?” 대답이 의외였다. “코 밑으로 들어가는 숨을 잡으면 되지!” 갑자기 코로 공기가 딸려 들어가지 않아 숨을 못 쉬면 천하장사도 맥 못 추고 바로 쓰러진다. 이런 기법들을 일러 의공(意功)이라 한다. 의념(意念)의 힘만으로 상대를 다루는 방법이다.

과연 도술이란 실재하는가?

앞선 이야기들이 어떤 이에게는 실제처럼 흥미진진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허무맹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전하시는 분들의 무예실력이나 그 삶의 진정성을 통해 보건데 이것이 꼭 과장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곤 했다.

반면에 약간의 과학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트릭’들을 마치 엄청난 수련을 통해 얻은 초능력처럼 부풀려 시연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전속력으로 질주하려는 500마력의 슈퍼카를 팔로 붙들고 못 가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물리법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 아무리 힘이 세도 물리적으로 물건을 잡아끄는 힘은 <자신의 무게 + 지면과 발이 갖는 최대정지마찰력> 이상은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 해도 땅에 홈을 파서 발을 걸지 않는 한 자기보다 무거운 물체를 당기면 자기가 도리어 그 물체 쪽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니 실제로 이 사람은 그 차를 끌 수 없는 것이 맞다.

정지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이려는 슈퍼 카는 너무 빠른 바퀴의 회전 탓에 지면과의 충분한 마찰력을 얻지 못해 희뿌연 연기를 내며 바퀴가 헛도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즉 충분한 마찰력을 얻기 전까지 잠깐만 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이 차가 정지 상태에서 천천히 속도를 높인다면 이 사람은 보기 좋게 끌려가고 말 것이다. 마술쇼가 아무리 신기해도 그저 트릭인 것처럼 눈으로 보았다고 다 사실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무술을 소재로 한 액션무협영화들이 상영될 때마다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성벽 따윈 맨발로 뛰어넘는 초절정 고수들이 등장한다. 가끔 미국 수련생들이 이런 영화들을 보고 와서 ‘사범님도 저들처럼 할 수 있느냐? 얼마나 배우면 저런 것이 가능하냐?’며 당황스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런 초능력기법은 영화 속의 허구일 뿐 무예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짜라고 쿨(Cool)하게 대답해야하는가? 아니면 수련에 매진하다보면 언젠가 그런 경지에 오를 날이 온다고 해야 하는가?

사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이 우주 안에서 존재하고 발생한다. 다만 그 확률이 매우 낮을 뿐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등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이나 물체의 순간이동처럼 아직 우리의 기술력이 미치지 못하였을 뿐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도 있다.

그러니 초자연적인 도술을 직접 보았거나 경험했다는 선배 무인들의 증언을 마냥 무시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나름 이런 현상들을 살펴 그 원인을 연구해 밝혀 보는 것도 우리 무예인들의 책임 중 하나일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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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김사범 2015.03.09
흥미있는 글 잘 읽었어요.
seo 2015.03.09
thank you so much for other story and its so much fun to read and i can just till nex one.
이사범 2015.03.10
도와 도술을 구분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와 술 사이의 이야기가 재밌네요. 다음 편 기대합니다.
MASTER LEE 2015.03.11
태권도의 사랑과 열정이 대단하신거 같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