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제 생활을 버텨주는 뿌리와 같아요 - 임미화
보디가드, 목숨을 거는 직업
경계 중이던 보디가드는 암살자가 자신의 의뢰인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자

의뢰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암살자의 총구가 불을 뿜고 의뢰인 대신 총에 맞은 보디가드의 가슴은 피로 흥건하다.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디가드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총을 움켜준다. 그리고는 단 한방의 총알로 암살자를 쓰러뜨리고 정신을 잃고 만다. 의뢰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쓰러진 보디가드를 흔들며 눈물을 흘린다. "누가 엠블런스 좀 불러줘요. 내 보디가드가 다쳤단 말이에요"
영화 보디가드(1992년작. 캐빈 코스트너, 휘트니 휴스턴 주연)에는 보디가드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의뢰인과의 사랑은 예외이다 - . 24시간 의뢰인 주위에서 의뢰인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의뢰인을 대신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목숨을 거는 직업 그것이 바로 보디가드이다.
100% 남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보디가드의 삶입니다.
"한마디로 예방입니다. 제 의뢰인에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도록 미리 행동을 하는 거죠. 일단 상황이 벌어지면 그건 이미 경호에 실패한 겁니다."
블루버드 여성 경호팀장 임미화씨는 경호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아닌 100% 남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직업의 특징. 철저하게 자신을 버려야 한다.
임미화씨가 보디가드라는 직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선배중 한 사람이 이곳에 근무하고 있었고, 마침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있던 임미화씨는 자연스럽게 블루버드와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 2월 정식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사실이 경호에 별다르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경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이예요. 그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또 그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 직업은 정말 보람된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
경호가 필요한 일이란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 블루버드에 요청이 들어오는 의뢰를 보면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친어머니가 자기의 아들 때문에 경호를 요청하는가 하면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부인의 경호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봄, 가을의 결혼 시즌에는 결혼식장에 경호원을 배치해 달라는 의뢰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전에 사귀었던 연인이 결혼식을 방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의뢰에 대해 임미화씨는 안타까워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토커에 관한 경호요청이기 때문이다. 스토커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임미화씨는 같은 여자로서 늘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제가 담당했던 한 스토커 피해자중에 직장을 다니다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여자분이 있었어요. 문제의 스토커는 그전에 다니던 직장상사 였구요. 그 직장상사는 이 여자분이 마음에 들었지만 여자분은 관심이 없었죠. 계속 여자분에게 접근을 해도 여자분이 안 만나 주니까 아주 집요하게 이 여자분을 괴롭히기 시작한 거예요. 그것도 무려 3년간이나요. 그 동안 여자분은 정상적인 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죠. 늘 스토커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이런 스토커 의뢰건 같은 경우는 24시간 경호원이 늘 의로인과 함께 한다고 한다. 경호라고 해서 무조건 24시간 경호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해진 시간에만 경호를 하는 경우도 있다. "경호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의뢰인을 만나봤는데, 의뢰인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정말 너무 안쓰럽더라구요. 의뢰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일단 한국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죠. 스토커를 잊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외국이 낫다는 판단에서였어요. 저는 의뢰인에게 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한다고 생각하라고 조언을 했죠. 결국 그 여자분은 외국으로 나갔고 평소에 관심이 있어하던 호텔경영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는 지금도 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데, 의뢰전과 비교하면 웃음을 많이 찾았어요."
임미화씨는 의뢰인이 다시 새롭게 시작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하지만 의뢰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경호원들이 겪는 일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일인만큼 의뢰를 맡으면 개인 사생활이란 없습니다. 더구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요. 웬만한 의지 없이는 일 자체를 해내기가 힘듭니다."
오빠의 복수를 위해 태권도를 배우다.
늘 힘든 일에 지친 그런 임미화씨가 버틸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태권도 덕분이었다. "태권도를 하면서 배웠던 모든 것들이 비단 무술로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늘 도움이 됩니다. 아마 태권도가 아니었다면 이 직업을 선택하지도 그리고 이곳에서 버틸 수도 없었을 거예요"
임미화씨가 태권도를 배우게 된 동기는 순전히 오빠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임미화씨는 1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오빠와 친구처럼 잘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태권도 도장을 다시고 있었던 오빠가 겨루기를 해서 맞고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 발생을 했다. "오빠를 보는 순간 갑자기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빠가 맞고 들어왔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정의감에 불타 올랐다고나 할까요? 하하하 그래서 시작했어요" 임미화씨는 당장 태권도 도장에 등록을 했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오빠의 복수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죠. 하여간에 태권도를 그렇게 시작했는데 글쎄, 이 태권도가 적성에 딱 맞는 거예요. 특히 겨루기가 너무 재미있는 거 있죠. 그렇다고 제가 싸움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겨루기는 재미 있더라구요"
도장에 들어가서 겨루기를 한 첫 상대는 다름 아닌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 그런데 그 첫 겨루기에서 상대 남자아이를 울려버렸다. 멋들어지게 오빠의 복수를 한 셈이다. 우연히 시작을 했지만 임미화씨는 태권도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하루종일 태권도만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리라공고(태권도가 유명한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에서 태권도 선수가 되면 태권도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녀 앞에는 커다란 장벽이 버티고 있었다. 그 장벽은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였다. 취미로 태권도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늘 부상이 많은 태권도선수는 안된다는게 어머님의 생각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일반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죠. 하지만 태권도가 너무나 하고 싶었고 그래서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태권도를 했죠.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예요.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태권도학과에 진학을 하지 뭐하러 체육학과 에 들어갔을까 하고 말이예요"
그러나 그때까지도 임미화씨는 그저 태권도가 좋아서 할 뿐 태권도에 대한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재미있으니까 태권도를 계속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태권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는 계기가 발생을 했으니 바로 국기원 시범단 입단이었다. "대학교 2학년때였죠. 선배의 권유로 국가대표태권도시범단에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덜컥 합격을 하더라구요." 그곳에서 그녀는 평생의 스승인 이규형 단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태권도의 정신이랄까? 진정한 태권도란 무엇인지를 배웠죠" 임미화씨는 그곳에서 새로운 태권도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태권도 정신이었다. 발차기 하나 주먹 지르기 하나 보다도 올바른 마음가짐과 정신을 배운 것이다.
해외 시범 또한 그녀의 좋은 선생님이었다. "시범단에 있으면서 40개국 정도 갔던 것 같아요. 시범단 활동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활동을 했으니까 한 3년간 돌아다닌 셈이네요. 94년 겨울 동부 유럽 시범 때 일이죠. 헝가리로 기억을 하는데, 날씨가 추워서 시범단원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추우니까 동작도 잘 안나오고 그래도 열심히 시범을 보였죠. 추운 날씨에 모두들 땀을 흘리며 시범을 끝마쳤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기립을 하더니 박수를 쳐주는 거예요. 순간 아, 우리의 시범을 보고 이렇게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 지면서 가슴이 벅차 오르더라구요. 그런 느낌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는 그녀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해외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40여개국 이나 다녀봤지만 늘 정장을 입고, 시범을 보이러 간 거지 쉬러 간 것은 아니거든요. 해외 여행을 하고싶은 이유는 단 하나 새로움을 접해보고 싶어요. 평범함을 거부한다고 할까요? 평범하면 너무 지루할 것 같아요. 만약 가게된다면 칠레에 꼭 가고 싶어요. 저랑 가장 절친한 친구가 칠레에 살고.... 칠레는 남북으로 긴 나라쟎아요.

그곳엔 같은 시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대요. 그전에 칠레에 태권도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칠레로 가는 도중 안데스 산맥이었던가요? 진짜 멋있었어요. 비록 비행기안에서 본 광경이지만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인 그리고 그 웅장한 모습. 정말 다시 가보고 싶어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늘 태권도를 한다는 임미화씨. 평생을 태권도만을 하고 살고 싶다 고 자신의 소망을 밝히는 그녀는 분명 태권도에 푹 빠져 있었다.
태권도, 내 삶의 뿌리
"오빠 때문에 시작한 태권도를 시작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 이예요. 전 태권도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죠. 이렇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정신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다 태권도 덕분이죠. 태권도는 제 인생의 전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 예요. 전 정말 태권도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계속 태권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상투적이고 인위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태권도를 통해서 제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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