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지켜낸 아프간인 사범
"차려, 태극품새 시-작."
미군의 오폭으로 집이 부서지고 도로에 큰 웅덩이가 파인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주택가 제2마크로레이온 지역에서 27일 카랑카랑한 한국어가 울려퍼졌다. 허름한 2층 건물 아래층의 50평 남짓한 실내에서 아프가니스탄 소년 8명이 사범 아리안 하이바르(20)의 구령에 맞춰 태권도 수련에 한창이다.1996년 도장을 연 하이바르는 태권도를 금지하는 탈레반 정권의 압력을 견뎌내며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나뿐인 태권도 도장을 지켜왔다. 탈레반은 "사원에 가서 기도나 하라"며 도장을 몇번씩이나 폐쇄했다.
도복 사이로 맨 가슴을 드러내는 복장도 탈레반의 눈에 거슬렸다. 그 덕분에 하이바르는 담당경찰관이 바뀔 때마다 잡혀가 나흘에서, 길게는 열흘간씩 네차례나 구류를 살았다.
하이바르가 태권도에 입문한 건 92년 내전의 참화를 피해 피란갔던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였다. 당시 11세 소년이던 하이바르는 동네 도장의 창문 너머로 본 발차기에 매료돼 한국인 사범에게 "돈은 없지만 제자로 받아달라"고 떼를 썼다.
그가 `이사원`이란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범은 난민소년 하이바르를 4년 동안 먹이고 재우며 가르쳐 공인 4단의 실력을 쌓게 했다.
내전이 잠잠해진 96년 그의 가족은 카불로 돌아왔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은 공산정권에서 참모총장을 지냈던 아버지를 공개 처형했고 카불대 부총장 출신의 어머니는 신분을 숨겨야 했다. 하이바르는 막막해진 생계를 해결할 요량으로 카불에 태권도 도장을 열었다.
"꿈이 있다면 수련생들을 이끌고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겁니다. 탈레반 시절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허가를 요청했더니 해외로 도망가려는 줄 알고 펄쩍 뛰더라고요."
하이바르는 "언젠가 서울의 세계태권도연맹 본부에 지도관 인증서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냈지만 2백달러를 요구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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