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 바둑의 정석과 무도에서의 본(本)
공권유술 강준 사범의 허튼소리 41
정석(定石)이란 바둑에서, 공수(攻守)의 최선이라고 인정된 방식으로 서로의 유, 불리함이 없이 돌을 놓는 법을 말한다.
바둑의 정석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어렸을 때, 우리가 한 두 번씩 두었던 장기의 정석을 연상하면 된다. 장기판에 말을 놓는 방법은 반드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는 지정된 곳에 장기 알이 놓여 져야 되며, 처음 십 여수 까지는 상대와 나의 수가 유리함과 불리함이 없이 지속되는 상태를 정석으로 생각하면 된다. 체스도 이와 비슷하다.
두서없이 바둑의 정석을 이야기 한 이유는 무도에서의 본(本)이 마치 바둑의 정석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공권유술의 기술적 특징으로 예를 들자면, 타격기-메치기-와술기(그래플링)를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엮어서 훈련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지속적인 반복연습을 통해 수련자들이 스스로 공수의 이치를 깨달게 하도록 하는 수련시스템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본(本)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본(本)은 검도, 유도에서 볼 수 있으며 태권도의 한번겨루기의 양식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나라마다 무술에는 특징이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수련하는 방식이나 이름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형 또는 품새라는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이것의 특징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규정된 형식(틀, 型)에 맞추어 지도자 없이 수련할 수 있도록 이어 놓은 동작을 말한다. 이러한 수련을 통해서 정신수양과 공방 원리를 간접적으로 터득할 수 있지만, 추상적인 면으로 인하여 실전에서 품세나 형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형, 품세의 수련을 멈추지 않는 것은 형 속에는그 무도가 추구하는 철학과 동작의 아름다움이 예술성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本)이란 무엇인가? 본(本)은 품세와는 달리 실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선별하여 상대의 파트너와 함께 실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동작들을 반복 숙달하여 몸으로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품세나 형처럼 가상의 상대와 공방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짜여진 틀에 맞추어 실제상황에서처럼 상대와 직접 공방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한 본(本)은 무수히 많기 때문에 상황별로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바둑의 정석 역시 각기 다른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많은 정석들이 체계화 되어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석은 일단 외워야 만 한다. 말하자면 정석이란 하나의 공식과 같은 것이고 무언의 약속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석을 완전히 암기한 후, 정석에 연연해하지 말고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정석은 나만 아는 것이 아니고, 상대 또한 내가 바둑돌을 놓을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정석 그대로 두기 때문에 일정한 수까지는 정석의 모양이 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상대가 갑자기 정석대로 두지 않고 다른 곳에 돌을 놓으면 정석의 순서가 그 즉시 깨어진다. 자신이 외웠던 정석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자신의 수읽기를 통해서 새로운 한판의 바둑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둑의 정석은 반드시 외워서 활용하되 정석을 모두 잊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공권유술의 본(本)이나 여타 무술의 본(本)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가령, 상대를 업어치기로 메친 후 계속해서 가로 누워십자꺽기를 하는 기술을 구사할 때, 공격자는 업어치기를 하는 순간부터 다음기술인 십자꺽기를 고려하여 기술을 구사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동작을 한 가지 동작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포지션싸움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적어진다. 상대가 “내가 지금 메쳐지는 군아..”라고 미처 생각도 하기 전에 십자꺽기로 제압을 당하기 때문이다.
포지션싸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당신이 바닥에 누워있고 상대가 당신의 배위에 올라가서 주먹을 당신의 얼굴에 퍼 붇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밑에 깔려 있는 사람과 배위에 올라타고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 중 누가 더 유리하겠는가?
그냥 단순히 생각하더라도 배위에 올라타 있는 사람이 유리하게 보인다. 이렇게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포지션 싸움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업어치기이후, 그러니까 나의 업어치기가 실패하거나, 상대가 방어를 하거나, 실력부족으로 인하여 십자꺽기를 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상대가 방어자세로 돌입했다면, 참으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정석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이 수련해왔던 두 가지의 연결 기술이 쓸모없는 기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바둑의 정석처럼 말이다.
업어치기에서 십자꺽기로 연결되는 본(本)은 매우 좋은 동작이지만 이것을 절대적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연습할 때는 반드시 어떠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가를 미리 연구해야 한다. 가장 좋은 연구법은 상대의 입장에서 나의 기술을 점검해 보는 것 이고, 내가 업어치기로 메쳐질 때 상대의 공격에 대한 대처방안을 강구해 보는 것이다.
가령, 업어치기를 한 후, 십자꺽기에 실패할 경우 이후부터는 포지션싸움으로 들어설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업어치기를 당한 상대는 어떤 포지션으로 자세를 변경할지를 미리 예측하여 상활별 포지션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에 따라 반복 연습하여 몸으로 체득한다. 이렇게 되면 포지션 싸움을 최소화하며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게 된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자!
가장 기본적인 업어치기에서 가로누워십자꺽기의 연습이다. 충분한 연습이 이루어지면 공격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술을 풀이해 본다.
상대가 업어치기를 하는 순간 당신은 재빨리 ‘거북이자세’로 만들며 가로누워 십자꺽기를 방어하였다. 이후에 이어지는 상대의 포지션싸움에 반응하여 가랑이 자세를 만든 후, 좌식십자꺽기를 하여 제압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별로 나누어 연습을 한다.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 훈련방법이나 기술들을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동영상에서처럼 공권유술의 훈련이 아니더라도 각자 수련하고 있는 무술의 기술적 특징을 잘 파악한 후 타격기법, 메치기등 자신이 평소 생각해 두었던 상황을 잘 정리하여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여 실전에서 몸이 머리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기법들을 수련할 수 있다.

<글 = 강준 회장 ㅣ 사단법인 대한공권유술협회 ㅣ master@gongk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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