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섬 소녀 브리짓 야궤… 태권도로 세계 호령

12세 태권도에 입문, 세계태권도선수권 및 유럽선수권 3회 우승, 올림픽 은

첫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한 브리짓 야궤가 환호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각) 영국 맨체스터 센트럴센터에서 열린 ‘2013 월드태권도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49kg급 결승. 지난 푸에블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통해 2연패를 달성한 김소희(한국체대)가 결승에 안착했다. 평소 체급보다 한 체급 높은 올림픽체급에 출전해 체격적인 한계가 느껴졌다.
결승 상대는 백전노장의 스페인의 브리짓 야궤 엔리께(32). 2003 가르미쉬 세계태권도선수권을 시작으로 3회에 걸쳐 월드챔피언을 지내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최고 실력의 선수. 상대는 노장이고, 김소희는 상승세를 타는 신성이라 충분히 해볼 만한 경기라 기대했다. 힘과 노련미에서 부족함이 나타났다. 9대1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81년생. 현역 태권도 선수로서는 최연장자 그룹에 속한다. 그런데도 예선부터 결승까지 강한 체력과 빠른 스피드로 돋보이는 경기력을 펼치며 퍼펙트 한 첫 그랑프리 우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전자호구 경기에 유리하게 앞발 커트도 사용하지 않고 옛 경기방식으로 경기를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만났다. 어떻게 10년 이상 세계 정상을 지킬 수 있었는지.
야궤는 첫 번째 성이고, 엔리께는 두 번째 성, 이름은 ‘브리짓’이다(스페인에서는 아빠 성을 첫 번째, 엄마 성을 두 번째로 사용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섬인 마요르카 섬(Mallorca)이 고향이다. 태권도로 성공을 위해 15살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
애향심과 대단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제주도와 같은 곳이었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라파엘 나달, 카를로스 모야, 스페인 축구선수였던 미겔 앙헬 나달, 2006년과 2007년 세계 모터사이클 250cc 랭킹 1위였던 조르헤 로렌소 또한 이 섬 출신이다. 이들 스타들을 소개했는데 잘 모르겠다는 기자의 표정을 잃고 잠시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옛 기억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태권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소싯적부터 유별나게 액션영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장 끌로드 반담, 아놀드 슈왈제네거 같은 액션스타의 팬이었다. 자연스럽게 무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발차기를 좋아해 태권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1살. 브리짓은 태권도를 만났다. 좋았다. 함께 무술 액션을 좋아했던 사촌동생 둘과 함께 시작했다. 재능을 보였을까. 그를 지도한 사범이 1년 후 그들을 데리고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연달아 입상을 하기 시작했다. 열다섯 주니어 국가대표에 발탁돼 1998 이스탄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2년 후에는 성인 국가대표에 선발, 2001 제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2003 가르미쉬 세계선수권에서 첫 금메달을 따내며 월드챔피언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고향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태권도 보급과 인지도가 낮은 섬이 브리짓의 영향으로 학교 방과 후 수업과목이 유도에서 태권도로 바꾸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태권도에서 활약은 그때가 시작일 뿐이다. 2005 마드리드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 2007 베이징에서는 다시 금메달, 이어 2009 코펜하겐까지 연패를 달성했다. 2011 경주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유럽선수권도 3회 우승을 차지했다.
2012 런던올림픽 은메달, 평생 잊을 수 없는 기록이 될 것
세계선수권을 무려 세 번이나 우승했지만 늘 갈증이 있었으니 그것은 올림픽 때문이었다.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2004 아테네올림픽은 첫 경기에서 패했고, 2008 베이징올림픽은 부상 때문에 메달을 따지 못했다.
“내게 모든 경기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추억이다. 월드챔피언을 세 번이나 지냈지만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얻고 싶었다. 실력부족과 부상으로 두 번 실패했다. 마지막이 될 런던올림픽에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은메달을 땄다. 꿈에 그리던 무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어 매우 기뻤다”
숙명의 라이벌 중국의 우징위의 등장, 4전 2승 2패
세계를 호령하던 그에게 막강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2008 베이징, 2012 런던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중국의 우징위. 국제대회에서 모두 네 번을 만났다. 전적은 2승 2패. 2009 덴마크 세계선수권과 2011 스포츠어코드 월드컴벳대회에서 이겼다. 2011 경주 세계선수권과 2012 런던올림픽 결승에서는 금메달을 내줬다.
우징위에 대해 묻자 “좋은 선수다. 빠르고 강하며 장점이 많은 선수다. 그에게 지지 않기 위해 많은 대비를 했고, 훈련도 더 열심히 했다. 전략은 필수였다. 오랜 선수생활을 하면서 우징위 처럼 꾸준한 실력으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는 없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첫 그랑프리 결승 상대였던 김소희에 대해서는 “준결승에서 프랑스 선수와 하는 걸 보았다. 내심 한국선수가 맞붙었으면 했다. 많은 선수들이 앞발을 들며 ‘발 펜싱’을 하는데 이 선수는 제대로 태권도 경기를 한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점수는 9대1로 크게 이겼지만, 경기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다. 모처럼 훌륭한 선수와 제대로 된 태권도 경기를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 2회 우승자 후안 안토니오 라모스 산체스와 2009년 결혼

남편 라모스와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2009년 결혼한 유부녀라는 사실. 남편도 화려한 경력의 태권도 선수 출신인 후안 안토니오 라모스 산체스(37). 1997 홍콩 세계선수권대회와 2007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회 우승을 차지하였고, 유럽선수권도 3회 우승을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남편 라모스가 2012 런던올림픽 남자 헤비급에서 감동의 은메달을 딴 가봉의 안소니 오바메의 코치였다. 건국 이래 올림픽 태권도에서 첫 메달을 딴 것이라 가봉에서 라모스는 ‘백인 마술사’로 통한다.
때마침 남편이 그를 찾고 다녔다. 당장 인터뷰에 합류시켰다. 밝은 표정으로 브리짓과 인터뷰를 응했다. 그는 지난 9월부터 안소니 오바메를 브리짓의 고향인 마요르카로 함께 이주해 훈련캠프를 차렸다. 여기에 브리짓도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브리짓의 코치는 남편이 된 셈이다.
라모스는 아내가 나이가 많은데도 힘든 훈련을 하는 것을 보면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부싸움 후 훈련에 영향이 미치지는 않느냐는 엉뚱한 질문에 “(라모스, 웃음) 그러지 않는다”라면서도 “함께 대표팀에서 선수를 할 때는 스텝 겨루기로 감정을 표출할 때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브리짓, 최고의 선수답게 1등으로 은퇴하고파
적지 않은 나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6~7년 전과 다르다는 걸 느낀다. 다른 것보다 한 경기를 뛰고 다음 경기까지 소비된 체력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다르다. 3회전 동안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예전같이 않아 이를 균등하게 조절한다”고 말했다.
은퇴에 대해서는 “당장 할 생각은 없다. 몸이 그만 해라고 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은퇴를 하더라도 최고의 실력으로 이번처럼 박수를 받으며 1등을 하며 마무리하고 싶다”고 밝혔다.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브리짓
브리짓은 2012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그는 올해 고향으로 귀향했다. 내년 1월부터는 주정부 체육부에서 태권도를 포함한 여러 스포츠 종목을 관리 운영하는 행정공무원으로 일하게 됐다. 남편과 마요르카에서 태권도 엘리트를 육성하는 전문도장을 만들 ‘드림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꿈을 물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답을 했다.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지도자나 체육 행정가 같은 자신의 커리어를 통한 직업을 이야기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브리짓은 “운동을 하더라도 가정적인 아내로서 엄마도 되고 싶다. 내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그 아이가 가는 길을 바르게 안내해주고 싶다”고 했다. 브리짓은 “아들” 라모스는 “딸”을 희망했다. 아들이 될지 딸이 될지 모르지는 그 아이에게 태권도를 가르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당연하지”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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