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 한국무술의 이단아(異端兒)와 배신자
제임스 다이슨 (Jame Dyson)은 수륙양용차를 디자인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움직이기 편한 손수레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쪽이 훨씬 인간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그의 새로운 혁신은 계속되었다. 먼지봉지가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순식간에 물을 말려주는 손 건조기 등이 그것이다.
“무릇 테크놀로지란 생활의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그의 생각에 나는 언제나 동의한다.
과거 내가 열중했던 무술은 합기도였다. 비록 합기도에서 공권유술로 전향을 했지만, 그것이 내가 수련했던 합기도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합기도를 사랑하고 항상 합기도인으로 남길 원한다.
20대의 젊은 합기도사범의 시절부터 내가 줄곧 주장했던 것은, 합기도의 초창기부터 이어져 내려왔던 비과학적인 기술을 과감히 버리고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술과 수련프로그램의 개발이었다.
가령, 합기도의 대표 기술 중, 80세의 노인들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지팡이를 사용하여10대의 어린유단자가 관절기와 던지기를 시연하는 단장술이나, 더울 때 선풍기 대신 사용하라는 부채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부채술, 오로지 정권지르기만을 가지고 주먹을 뻗은 후, 몇 초간 멈추면 그때서야 공격자가 반격하는 단조론 패턴의 방권술이나 포박술등이 그것이었다.
나는 개혁이야말로 많은 합기도인구의 증가와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말을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나는 합기도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어리석은 아이로 취급을 받았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했던 나의 열정에 나 스스로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세상과의 타협은 일시적으로 자신의 몸을 편하게 하지만, 갈수록 자신의 몸을 갈아먹고 발전이 없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던 것은 어쩌면 한국무술계의 이단아(異端兒)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합기도의 미래를 짊어질 혜성이 등장하여 합기도계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면, 어쩌면 그는 내가 공권유술로 겪은 고초만큼이나 어려움을 감내해야 만 할 것이다. 또한 아무도 그의 공적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합기도의 발전은 현재 합기도를 주도하는 기득권층이 말하는 배신자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에 따라 합기도의 앞날의 성패가 좌우한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합기도의 발전을 위하여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자기희생이 있어야 만 가능하다.
지난 3,500년 동안 세계가 평화로웠던 기간은 고작 230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국의 합기도의 역사에서는 단한 번도 평화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글 = 강준 회장 ㅣ 사단법인 대한공권유술협회 ㅣ master@gongk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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