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단 태권도 가족
한 가족의 태권도 단수가 23단인 가족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유럽태권도연맹 부회장인 서명수씨가족. 현재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서부회장 가족은 서명수씨를 비롯해 부인 그리고 두 딸 모두가 태권도 유단자이다. 태권도를 통해 가족의 건강은 물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서명수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의 가족은 그야말로 태권도 가족이다.
부인인 Aniata Seo-Dornbach 여사가 6단, 두딸들이 각각 4단 그리고 서명수씨가 9단으로 가족의 단수는 도합 23단. 현 태권도 최강국인 한국의 경우 대표선수들의 평균 단수는 4-5단. 그렇다면 서명수씨 가족은 그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서명수씨 가족이 이렇게 태권도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집안의 분위기 덕분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조성의 최대 공로자는 다름 아닌 부인 Aniata Seo-Dornbach(49, Business-woman) 여사. 어려서부터 수영뿐만 아니라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에는 빠져 지냈을 만큼 Aniata Seo-Dornbach 여사는 당당한 스포츠 우먼이었다. "16살때 쯤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전 남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금까지의 것과는 뭔가 다르고 아주 새로운 외국의 스포츠를 하고 싶었죠. 그것이 바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당시 태권도는 남자들의 스포츠로 알려져 있었어요. 전 여자도 태권도와 같은 운동을 잘 할 수 있고, 오히려 남자 보다도 더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건 바로 하나의 도전이었죠" 라는 Aniata Seo-Dornbach 여사의 태권도 사랑은 그만큼 남달랐다. 어려서부터 늘 같이 해왔던 태권도가 그녀에게는 생활이 일부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태권도를 배우고 태권도 행사에 참여했어요. 이미 4살때 태권도시범에 참여를 했고, 5살때는 처음 참가하는 태권도 챔피온쉽에서 이기기도 했지요.
이처럼 태권도 사범인 서명수 뿐 아니라 부인 Aniata Seo-Dornbach여사 역시 태권도 유단자인 까닭에 평소에 태권도를 가까이 하게 되었고 집안에는 태권도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비록 제가 어린 나이에 태권도를 시작했지만 결코 부모님이 제게 태권도를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또한 태권도 이외에도 발레, 음악, 승마 그리고 소프트볼같은 다른 취미가 있었죠." 라는 둘째 딸 Desire Seo(19, 대학생) 말처럼 태권도는 그녀에게 그저 일상적일 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대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모두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듯 부모가 태권도를 했다고 해서 서명수씨의 두 딸들이 모두 처음부터 태권도를 한 것은 아니다.
첫째 딸 Jessika Seo(23,Lawyer)의 경우 둘째 Desire Seo와 같이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접했지만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전 솔직히 태권도보다는 고전 발레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제가 발레를 하도록 내버려 두셨죠. 하지만 항상 전 제 취미중 일부로서 태권도를 즐기곤 했어요. 좀 더 자라자 저는 태권도가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죠. 전 태권도를 하면서 태권도가 가지고 있는 배경 즉 도(do)라는 정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열심히 연습했고, 품세 참피온쉽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라는 첫째 딸 Jessika Seo(23,Lawyer) 는 태권도의 매력에 빠져 자신들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임을 넌지시 밝혔다.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같은 스포츠를 즐기면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가족간의 사랑이다.
점점 개인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것들은 사라져가는 가족 본연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제 딸이 조금 성장하자 우리는 하나의 팀으로서 가족 전체가 즐겁게 어울렸습니다. 심지어는 저의 둘째 딸의 남자친구까지도 저희팀과 어울리기을 좋아했죠" 라는 서부회장은 그런 가족간의 끈끈한 정 덕분에 가족 모두가 힘을 합쳐 독일어 및 영어판 품세책을 펴내기도 했다고 귀뜸해 주었다.
태권도가 그에게 가져다 준것은 가족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1997년 터키에서 열린 제3회 유럽기술 챔피온쉽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당시 우리팀은 트레이너인 저와 코치이던 제 아내 그리고 두 딸을 포함해서 1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온 힘을 다해서 그 대회에 대비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우리가족은 우리의 결과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결과는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매달 2개로 종합 1위를 했지요" 라며 서명수씨는 가족이 서로 똘똘뭉쳐 땀흘렸던 그 때가 그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고, 지금은 그 순간들이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며 "아름다웠던 것들을 회상할 수 있어 행복하다" 며 흐뭇해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에게 모든 행복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명수씨도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네덜란드에 건너간 해는 1969년. 그 당시 네덜란드에서 태권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Korea Karadae 로 시작을 했다. 아는 이 하나없는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그의 유일한 벗은 오직 태권도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매주 챔피온쉽, 세미나, 심사와 같은 태권도 이벤트가 열릴 정도로 태권도는 네덜란드 스포츠계에서 돋보적인 위치로 성장을 했다. 또한 그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가 가르친 제자들 그리고 태권도를 통해 알게된 그의 벗들이 유럽 곳곳에 퍼져있다. 이미 그는 유럽 태권도의 대부가 되어 있었다. 30여년간 유럽에서 태권도 하나만을 고수해온 결과이다.
그런 그의 마직막 꿈은 태권도가 스포츠로서의 모습이 강조되어 서서히 잊혀져가는 태권도 본연의 정신을 되찾는 것이다. "태권도는 스포츠일 뿐만 아니라 무예이기도 합니다. 올림픽 스포츠를 향한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는 잃어버린 오래된 가치를 다시 되찾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태권도는 단순한 스포츠이상입니다." 라며 마지막 말을 마친 그의 태권도에 대한 사랑은 그의 아내와 두 딸과 함께 가족 곳곳에 베어있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