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권총강도, 로우 킥 그리고 미스터.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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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5

이정규 사범
많은 한인들이 아직도 권총강도의 위협이 있는 위험한 곳에서 일을 한다. 나또한 미국 정착초기 이런 곳들에서 몇 년간 일을 했었다. 주위에서 권총강도를 당한 한인들 이야기가 하루건너 들려올 때도 있었다.영어가 짧은 한인들을 타겟으로 하는 연쇄 강도사건들도 있었다. 이웃 도시에서 무장 강도 둘이 총으로 주인을 위협해서 돈을 털고 나갔는데 여러 번 강도를 겪었던 주인이 참다못해 뒤따라 나가 도망치는 차를 향해 권총을 쐈다고 한다. 곧 총알은 떨어지고 빈총을 들고 섰는데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들이 닥쳤다. 강도들이 도망가는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쳤지만 도리어 자기를 향해 총을 빼든 경찰들. 이에 항의하다 총알세례를 받고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남의 땅에서 풀뿌리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동포들에게 이 사건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한 어른이 두 번의 총격전에 도합 8발의 총상을 입고도 살아 나셨다.달라는 돈을 순순히 내 주었는데도 강도는 돈을 챙기더니 마구 총을 갈겼단다.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 카운터 밑에 숨겨두었던 권총을 집어 대응 사격을 해서 간신히 살았다. 두 번째도 같은 꼴이 벌어졌는데 이번엔 목에 총상을 당하면서도 반격을 해 도리어 강도를 사살했다. 총 맞고 나서 하신 말씀, 대한민국 해병대를 뭘로 보고!
할 소린 아니지만 죽다가 살아난 이 분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첫 번째 총을 맞고 퇴원한 후 방탄조끼를 사 입고 일을 했는데 방탄복만 입으면 목이 갑갑하고 숨쉬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어쩐지 방탄복하고 자기하고는 잘 안 맞나보다 하고.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가만히 보니 이제껏 방탄조끼를 거꾸로 뒤집어 입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 쪽이 앞으로 가고 앞쪽이 등 뒤로 가게 입었으니 목이 조인 것은 당연지사. 앞뒤를 바꾸어 입고 보니 숨쉬기도 좋고 훨씬 편하더라고. 그렇게 바로 입고 나간 날 저녁 총을 맞았다. 그것도 하필 뒤집어 입을 땐 늘 가려주던 그 목 부분을!
이런 위험한 지역에서 가게를 하는 한인들의 카운터 밑에는 권총이 하나, 둘 씩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권총을 쏴본 적도 없고 사용할 줄도 모르거나 아니면 아주 오래전 가게를 사고 팔 때 끼워 받아 작동을 하긴 하는지 어쩐지도 모를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총을 좀 쏠 줄 아는 나한테(이 이야기는 나중 칼럼에서 다루겠다.) 사격 훈련을 받은 한인들이 여럿이다. 어떤 총이 자기 상황에 맞는 총인지, 어떤 방식으로 구입해야 하는지 등을 자문해 주기도 했다.
그 중 친구 한 명이 하는 가게에서 부친상을 치룬 친구를 위로하는 자리가 있었다. 경사는 못 챙겨도 애사는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도장을 마치고 차를 달려갔다. 친구가 하던 가게 뒤편 창고에 박스를 놓고 그 위에 떼어낸 문짝을 얹어 임시로 테이블을 만들고 십 여 명이 빼곡히 둘러앉아 있었다. 몇 명은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가뜩이나 이국땅에서 살아가느라 쌓인 스트레스에 술까지 섞이고 분위기도 죽죽한데 이것저것 언짢은 상황들이 겹쳤는지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게다가 무슨 일인지 초면인 한 친구가 좌충우돌 막 들이대는데 분위기가 점점 험해져 갔다.
이민생활을 하다보면 정말이지 하소연할 곳도 없이 답답할 일이 많이 생긴다. 한국에서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인종차별이며 신분문제에, 사업문제까지. 그러다보면 마음구석이 팍팍할 수밖에 없다. 그날따라 다들 쌓인 울분에 술까지 들어가고 이상한 친구까지 하나 끼어 화를 돋우니 악재가 겹쳤다.
어느 순간 펑 하며 터지듯 삽시간에 분위기가 흐트러져 버렸다. 한 사람이 술병을 거꾸로 집어 들고 그 친구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얼른 일어서 팔을 잡고 술병을 낚아챘다. 이역만리 타향살이도 서러운데 같은 동포끼리 왜 이러나? 좀 참자고 했다. 갑자기 반대쪽에서 가게주인이 권총을 뽑아 들었다. 내가 총 쏘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었다. 그 총이며 총알도 내가 구해주었고 장전도 내가 해 준 터라 그 총에 몇 발이 장전되어 있는 줄도 알고 있었다. 술상을 건너 뛰어 총을 쥔 손을 움켜잡았다. ‘이게 무슨 일이요? 아무리 그래도 술 먹고 총에 손을 대서는 안 되지!’ 권총을 쥔 손이 완강했다. 열 받아서 안 되겠다고 저 녀석 겁이라도 주게 공포라도 한 방 쏘겠다는 것이다. 한밤중에 총을 쏘면 경찰이 출동할 것이 뻔하다. 음주운전이 큰일이듯, 음주 상태에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총질이라면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된다. 한참 실갱이 끝에 총을 뺏어 탄창을 분리하고 치워두었다.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말리자 그 터프한 친구가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 내가 봐도 만만치는 않아 보였다. “네가 그 태권도 사범이냐?” 그렇게 잘났으면 자기랑 붙어보자고 시비다. 술 마신 사람하고 시비해서 무엇 하겠나 싶어 계속 예예하고 받아 주는데 끝이 안 났다. 자기도 격투기며 권투를 20년은 족히 했으니 붙어보잔다. “그러신가? 그런데 어쩌나? 난 태권도 한지 30년이 넘었는데?” 상대가 안 되니 그만두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더 막무가내였다. 지금도 웨이트 트레이닝하고 운동 열심히 해서 아직 할 만하니 붙어보잖다. 그래서 물었다. ‘아 그럼 팔굽혀 펴기도 잘하겠네! 한 번에 몇 개나 하시나?’ 100개는 너끈히 한다고 했다. ‘그럼 안 되겠는데....... 난 한 번에 300개 하는데.’ (나의 변명: 요즘 게을러져서 잘 안하지만 그 땐 그랬다.) 말로 자꾸 지니까 딴소리 할 것 없이 나가서 붙자고 계속 대들었다. 게다가 다들 나보고 뭘 좀 어떻게 해보라는 눈치였다. 어차피 안에 있어봐야 분위기만 더 험해질 테고 그럼 나가자고 했다. 다른 이들이 따라 나오려고 해서 그냥 앉아들 계시라고 찬바람 좀 쐬고 정신 좀 챙겨 들어오겠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염려가 앞섰다. 난 싸움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다. 싸우기 전의 긴장감이 싫고, 싸울 때 이성을 잃는 게 싫다. 몇 대 맞는 건 겁나지 않지만 질까봐 겁이 난다. 졌을 때의 패배감이 정말 싫고 무섭다. 시합장에서도 지고 나서의 패배감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나름 피땀 흘려 훈련했지만 언제나 나보다 뛰어난 이들이 있었다. 아무리 이겨도 결국 누군가에게 또 지고 마는 심정은 안당해본 잘 사람은 모를 것 같다.
게다가 미국서 태권도 사범이 누군가를 때렸다 이건 정말 살인미수다. 가중처벌이란 바로 이런데 해당된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L.A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인 유학생 둘이 장난삼아 길거리에서 겨루기를 했다고 한다. 발로 차고 막고 자기들끼리야 낄낄대며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실감나게 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들이 들이닥치더니 총을 들이 댔다. 깜짝 놀란 이들이 수갑에 채워져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입건 사유는 ‘살인미수’였다. 길거리에서 무술을 사용해서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서 듣자면 웃기는 얘기지만 그 만큼 미국에선 무술을 살인기법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이것을 사용했을 땐 심각한 행위로 간주한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진짜 더 문제다. 주먹을 쓰면 태권도 사범이 주먹질을 했다고 큰일이 나고 그렇다고 사람 좋게 그냥 맞아주면 태권도 사범이 자기 자신도 못 지켰다고 소문난다. 그러면 밥벌이는 끝이다. 때릴 수도 없고 맞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도 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어두운 뒷골목에 둘이 마주 보고 섰다. 그 친구는 두 손을 바짝 쥐고 가드를 올렸다. 누가 싸운데? 그러지 말고 재미 삼아 몸이나 풀자고 했다. 격투기를 했다니 로우 킥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잘 한단다. 그렇다면 그 로우 킥으로 나를 한 번 차보라고 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진짜지? 하고 묻는다. 물론! 어금니 꽉 물고 허벅지를 들이 댔다. 그 친구가 너 한번 죽어보라는 표정을 짓더니 내 허벅지를 로우 킥으로 힘껏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가 나고 다리가 저리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어쭈? 아마 내가 맞고 주저앉을 줄 알았나 보다. 웃으며 한 번 더 차보라고 했다’ 그러자 진짜 열 받았는지 같은 자리를 또 한 번 조준해서 찼다. 또 퍽하고 맞았다. 그래도 버티고 서 있었다.
우리 속담에 먼저 맞는 매가 낫다고 했다. 이럴 때 쓰는 명언이다. 웃는 얼굴로 이번에 내가 차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피식 웃더니 그러라고 했다. 가드를 딱 올리고 섰다. 그 친구는 웃는 얼굴 뒤에 감추어진 나의 사악한 음모(?)를 모르고 있었다. 오른발로 허벅지를 돌려 찼다. 퍽! 소리가 나자 휘청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긴 했지만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군. 하지만 이럴 줄 알고 내가 두 대 맞아 준거지! 같은 다리는 아플 테니까 자 이번엔 다른 쪽을 찰께! 그리고는 쭉 밀고 들어가며 허리를 깊게 넣어 왼발로 찼다. 일명 ‘이중타법!’(이 방법에 대해선 내 책, 태권도의 과학 259페이지, ‘팔로우 드루 + 되튐 원리’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퍽! 소리와 함께 휘청 하더니 두 다리가 풀린 채 확 무너졌다. 두 무릎이 땅에 닿기 전에 얼른 받아 주었다. 아무리 미워도 무릎까지 꿇게 되면 평생 자존심에 상처받을 것 같아서였다. 커다래진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혼자서는 이미 다리가 풀려 설 수가 없었다. 이 때 내가 달려들면 어쩔 것인가? 내 어깨 기대어 걸쳐 놓고 한 마디 했다. ‘야, 운동 했다더니 진짜 했나보네. 나한테 맞고도 이렇게 멀쩡하게 서있는 걸 보니, 대단해!’ 주저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 친구는 입만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 ‘왜 성에 안차면 주먹질도 더 해볼거나?’ 이건 쓰러진 사람 밟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심리전이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된 후에야 안에 들어가자고 했다. 실내로 들어서는데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 사범 조금 전에 그 소린 뭐요?’ ‘글쎄요? 뭔 소리?’ 내숭을 떨었다. 갑자기 공손해진 그 친구의 태도로 보아 다들 대충 짐작은 간다는 투였다. 소란했던 장내가 정리되자 그럭저럭 분위기 좋게 한잔씩들 더 하고 자리가 파했다. 하나 둘씩 가족들을 불러 차를 태워 보내고 뒷정리를 해주고 나서 나도 마지막으로 돌아갔다.
행여 그 친구 민망할까봐 그 일에 대해선 쉬쉬했다. 하지만 나만 입 다문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대번에 한인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나중에 그 친구가 불쑥 우리 집에 찾아왔다. 초면 인사를 그렇게 한 터라 나도 내심 다음엔 얼굴을 어떻게 보나 노심초사를 했는데 그 친구가 찾아와 서로 사과를 하고 웃고 말았다. 그 친구는 나 말고도 그 날 자신이 실수했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과를 구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다들 친해졌다. 이후에 보니 그렇게 사람 좋은 친구일 수가 없었다. 의리도 있고 배운 것도 많고 매사에 바른 사람이었다. 동양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미국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실력 있는 친구였다.
그 날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사람들에게 행여 자기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회사일도 놓고 달려가 도와주어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친구가 되었다. 손재주도 좋은데다가 영어도 잘하고 미국 생활도 잘 알아 여러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다. 정말 뭐든 척척박사였다. 동네 고장 난 컴퓨터는 다 이 친구가 수리 해주었다. 온갖 한인들의 애경사를 회사까지 빼먹어 가면서 다 챙겨주었다. 그래서 다들 집에 먹을 것 생기면 그 친구부터 불렀다. 입담도 좋고 아는 것도 많아 같이 있으면 정말 배울게 많은 친구였다. 어쩌다 그런 사람이 평생에 딱 하루 몹쓸 꼴을 보였는지.
서로 격 없이 친한 사이가 된 후에 사람들이 그날 일을 언급하며 서로 배꼽을 잡고 웃는다. ‘어이~, 왜 몸 근질거리면 이 사범이랑 또 한판 해 보지?’ 그러면 내가 말린다. ‘아 그만들 해요. 지난일 가지고 자꾸 민망하게.’ 성격 좋은 그 친구도 한마디 거든다. ‘내가 미쳤어요? 또 그러게? 그날일 만회하느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인데. 그리고 일주일 동안 다리 저려 얼마나 고생했는데. 에이~ 하여튼 그날 이 사범님만 없었음 다 죽었어, 진짜!’ 그리곤 다들 웃는다.
이역만리 타향살이가 쉽지만은 않다. 남들이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꿈속에서나 꾸어본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필요할 때 도움 되는 이런 친구야 말로 진정한 재산인데 올 봄 그 친구도 다른 먼 도시로 떠나고 말았다. 한 번 만나면 헤어지고 마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못내 서운했다.
그 날 내가 잘 한 일은 없었다. 술 취한 사람을 상대로 꼼수를 부렸으니. (한쪽 다리만 차면 다른 한 다리로 서 있을까봐 양쪽을 찬 것이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딱 하나, 그 친구가 무너질 때 받아준 것. 아무리 적이라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주려 애썼다는 것, 그거 하난 잘한 것 같다. 그러지 않았으면 이런 좋은 친구를 평생 사귈 기회가 없었을 테니. 남자는 싸우면 적이요, 사귀면 벗이라 않던가? 찬바람 부는 계절이 오니 이런 벗이 더욱 그리워진다.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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