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무예사랑방] 호신술 - 싸우기 전에 이긴다!

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4 - 태권도를 배우는 첫 번째 목적?


이정규 사범

미국은 법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엄하다. 누가 괴롭힌다고 맞서 주먹질을 했다간 도리어 큰 코 다친다.

성인반 수련생 스미스 아저씨는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안하고 사는 정말 점잖은 신사다. 그런 스미스 아저씨가 하루는 다리를 절며 도장에 왔다. 수갑 차고 경찰에 끌려갔다가 유치장서 하룻밤 보내고 나왔다고 했다.

사정은 이랬다. 이웃집에 막 되먹은 사내가 있었는데 다짜고짜 아줌마와 딸만 있는 스미스씨네 집에 쳐들어와 문짝을 걷어차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웠다. 너무 놀란 아줌마가 급히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부리나케 직장에서 달려와 보니 옆집 사내 왈, 이 집 개가 자기네 마당에 똥을 쌌단다. 펜스는 없었지만 거긴 스미스 아저씨네 잔디밭이 확실했다. 여긴 우리 마당이니 이렇게 소란피울 필요 없다며 좋게 말하고 돌아서는데 주먹이 날아왔다. 눈에 불이 번쩍하더니 안경이 벗겨지고 갑자기 둘이 엉겨 붙고 말았다. 경찰이 출동해서 폭행죄로 나란히 수갑 차고 평생 상상도 못했던 유치장 신세를 지고 보석금을 내고서야 풀려 나왔다. (그 후 몇 달간의 법원 공방 끝에 상호폭행에 대한 유죄판결 받고 적지 않은 벌금까지 내고서야 일이 일단락되었다.)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여자뿐인 집에 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그것도 모자라 먼저 주먹질까지 한 사람에게서 자기방어를 했는데 유치장에 벌금이라니? 그럼 아내와 딸 앞에서 경찰이 올 때까지 죽도록 맞고 있어야 된다는 말인가?

쓰레기 처리 문제로 말다툼을 하던 이웃이 자기 집 마당에 발을 들여놓자 총을 쏘아 죽이고도 가택침입에 대한 자위권발동이라며 무죄판결을 내렸던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가택침입에 폭력까지 행사한 자에게 주먹으로 맞대응 했다고 폭행죄? 도대체 미국에서는 어디까지가 자기방어(Self defense)인지 개념이 서질 않았다.

스미스 아저씨도 정말 법이 너무하다며 투덜댔다. 그건 그렇고 싸움은 이겼냐고 물었다. 이 대목에서 스미스 아저씨가 갑자기 씨익 웃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경찰서에서 사진을 찍는데 ‘난 평생 싸움 한 번 못해 본 사람인데 내가 미쳤다고 직업군인 출신의 근육질 녀석한테 먼저 싸움을 걸었겠는가? 내 얼굴의 멍 좀 보라.’며 억울하다고 했더니 경찰 왈,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요. 저 쪽 방에 있는 사람 얼굴은 아예 엉망진창이라고!’ 정신이 없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기긴 이긴 것 같단다. 지난 몇 달 꾸준히 태권도를 하고 몸 좀 만들어 놓은 덕을 봤다고 고마워했다. 나도 통쾌했다! 그 착한 스미스 아저씨가 맞기만 했다면 억울해서 아마 내가 쓰러졌을 것이다.

심사를 마치면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앉혀 놓고 질문을 하는 시간이 있다. 그 때 묻는다. ‘너는 왜 태권도를 배우는가?’ 십중팔구 호신(self defense)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먼저 나온다. 그러면 내가 다시 묻는다. ‘누가 널 때리더냐? 누구한테 맞아본 적 있냐? 왜 호신술이 필요하지?’사실 미국사람들은 한국과 달리 크면서 주먹다짐하고 싸워본 기억들이 별로 없다. 학창시절 기껏해야 누가 세게 밀었다는 둥. 그래서 선생님께 일렀다는 기억 정도.

‘진짜 호신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총을 사라. 한 달 수업료면 권총 한 자루쯤 살 수 있다. 뭐 하러 시간 버리고 돈 버려가며 삼 년씩이나 수행해서 힘들여 블랙벨트를 따려는가?’

내 말이 농담이 아니다. 다른 칼럼에서 다루겠지만 미국하면 애기까지 포함한 전체 인구가 일인당 총 3자루씩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균치가 나올 정도로 총이 많은 깔린 나라다. 미국인들이 상상하는 위험한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총질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얼마나 많은 총기난사 사건과 무장 강도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인줄 아는가? 그런 나라에서 한가하게 주먹질, 발길질을 배워 호신을 한다? 이게 별로 경제적이거나 이성적인 판단이 못된다. 미국인들은 태권도를 배우면 영화 속 ‘닌자’처럼 표창 하나 들고 빗발치는 총알도 뚫고 들어가 마피아 두목도 혼자 해치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당신들 대부분은 평생 주먹질 할 일 없을 것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호신을 한답시고 태권도를 사용했다간 더 큰 법적 소송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 태권도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최후의 카드다.’ 그럴 거면 태권도를 뭐 하러 배우냐는 눈치다. ‘게다가 난 돈을 받고 태권도를 가르치긴 하지만 당신들이 내게서 가져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도 그런 것 같다. 난 소리만 지르고 정작 힘든 수련은 자기들이 다 한다. 그러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대신 난 태권도를 통해 자신감(Self-Confidence)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주먹질과 발길질을 주고받는 호신술은 태권도 수련을 통해 그저 덤으로 얻는 부수입이라고 말한다.

자신감이야 말로 미국 사회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호신술이다. 범죄 심리학자들이 교도소의 죄수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았다. 어떤 상대를 범행의 타겟으로 고르는가? 그냥 생각 같아선 작고 힘없어 보이는 사람을 범죄목표로 삼을 것 같지만 그게 아니란다.

거리를 걸을 때 왠지 자신감 없어 보이는 사람을 제일 쉬운 상대로 보고 노린다고 한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눈을 내리 깔고, 두려운 기색을 갖으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덩치나 성별에 상관없이 어깨를 펴고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들고 걷는 사람. 활기찬 말투에 씩씩한 걸음걸이를 갖는 사람들은 피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상대하기가 곤란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은 비겁한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뭣 하러 쉬운 타겟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타겟을 고르겠는가?

미국 어린 학생들이 마주치는 대부분의 위기 상황은 바로 ‘왕따’나 학원폭력(Bully)이다. 누가 왕따가 되고 누가 학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가? 성인들의 경우와 똑 같다. 바로 자신감 없는 눈빛과 행동, 말투를 가진 학생들이다.

그래서 난 늘 강조한다. 절대 만만한 먹잇감으로 보이지 마라! 언제나 당당한 눈빛, 밝고 친절한 말투, 씩씩한 걸음, 당당한 자세를 보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친절한 몸가짐, 신의로 맺은 우정 등이야 말로 진정한 호신술이라고 가르친다. 친절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면 당연 좋은 친구들이 주위에 모이게 되고 그 친구들이 보호막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미국은 마약으로부터 학생들이 자유롭지 못한 나라다. 많은 경우 문제아들은 마약과 관련되게 마련이다. 대부분 마약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배우게 된다. 마약은 호신술로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자기의 공간, 자기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호신술이다.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비즈니스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은 언제나 문제의 연속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던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임한다면 분명 승산이 있다. 하지만 싸우기 전에 주저앉고 피하고 무기력해진다면 아무 승산도 희망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태권도 수련이 왜 필요한가? 힘든 수련을 통해 하나 하나 태권도 기술들을 배워나가다 보면 자연히 몸에 힘이 붙고 당당한 자세가 나온다. 도장에서 항상 강조하는 말 중에 하나가 있다.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강하다!(’you are stronger than you think!) 처음엔 절대 못할 것 같은 일도 사범의 명령에 따라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마침내 쉽게 해내게 된다.

두꺼운 송판이나 블록 등 깨지기 어려울 것 같은 격파물들도 하나씩 격파해 나가다 보면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어려워만 보이는 심사를 하나씩 통과해 가면서 벨트도 자꾸 올라간다. 자기가 성장함을 눈으로 보고 느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목표에 대한 도전정신이 생기고 성취감을 맛본다. 이로써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를 믿는 자신감이 배가된다.

이때 강해진 내면으로부터 자신감이 주는 힘이 자연스럽게 발산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힘은 주위사람들이 느끼게 된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내공(內攻)이다. 이런 힘은 첫째 눈으로 발산된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말로는 속여도 눈은 속이기 어렵다.번뜩이는 눈을 통해 자신감을 발한다. 두 번째, 말로 발산된다. 맑고 당당한 목소리, 긍정적인 말투가 생긴다. 대인관계를 이끌 수 있다. 세 번째, 몸으로 발산된다. 활짝 편 가슴, 반듯한 자세, 활기찬 걸음. 건강한 힘이 느껴진다.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신뢰감이 든다. 마지막으로 얼굴 가득한 미소! 웃는 자는 강하다. 강하지 못한 자는 웃을 수가 없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가진다면 아무도 만만히 보고 함부로 대하진 않을 것이다.

‘자 따라해 본다! 눈 번쩍 뜨고, 목소리 가다듬고, 배에 힘주고, 가슴 펴고, 기합! 앗~!’

한순간에 수련생들의 눈빛이 바뀌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태도가 바뀐다. 이 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새로운 벨트를 수여한다.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자신도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진다. 이렇게 심사를 마무리 한다.

처음 도장을 차렸을 때 별별 녀석들이 다 와서 시비를 걸었다. 이웃동네 유단자들이며 사범들, 터프하다는 동네 건달들에, 다른 무술이나 격투기를 한다는 녀석들까지. 그 때마다 직접 부딪히기보다 이런 방법으로 아예 너희는 나의 상대꺼리가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많은 경우 이 정도 선에서 굽히고 돌아섰다. 물론 겉으론 웃으며 당당하게 보였지만 여차하면 죽기 살기로 싸울 각오로 마음속엔 칼을 품고 있었다. 나중에 친구가 돼서 들어보면 그 때는 왠지 모를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차마 더는 못 달려들었다고 한다. 헛말은 먹히지 않지만 속에 든 것이 있을 때 하는 말은 먹히는 법이다.

싸우기 전에 이긴다!

이것이 태권도를 배우는 첫 번째 목적이고 이유라고 설명한다. 일단 싸움으로 뒤엉키게 되면 승패를 떠나 나도 피해를 입는다. 싸우기 전에 이기면 불필요한 힘을 낭비할 일도 없고 경우에 따라선 적도 친구로 만들 수 있다. 매일 매일 부딪히는 삶속에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 힘을 쌓아 가는 것, 그것이 태권도 수련이고 태권도 병법이라고 강조한다.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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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kimsabu 2012.10.10
좋은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워갑니다.
.. 2012.10.11
이번에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다음 번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태권 2012.10.11
아~~ 정말 좋은글 감사합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이유와 지도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호 2012.10.13
좋은 내용에 무용담같네요. 저도 미국에서 운동을가르치는 과장이지만,전 참다가 아니다 싶으면 싸우데 , 무조건 이겨라를 강조합니다 어자피 경찰에 끌려가면 피장파장 처벌은 같이받으니,가급적이면 몸을 가누지못하게 데지게패주라고 합니다,싸움잘하는넘이나 못한는 넘이나 막상 주먹이 오고가면 거기서 거기입니다,싸움도 깡다구와 정신력이지요,운동많이 배웠다고 싸움에서 꼭 이기는것은 아니더라구요. 단 운동을 배우는 사람들은 조금 마음을 자제하는 인내력을 배우지요.쥐도 막다른곳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달려듭니다. 죽기아니면살기라는건가요.운동을 열심히 하다보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절제하는 방법을 배워갑니다.운동한 사람이 않한사람에게 데지게 맞으면 창피하구~열심히 세상을 사시는 모습이 보여 좋습니다.
헐... 2012.10.17
비호님 깡다구와 정신력으로 싸움한다 말하는게 태권도인가 보네요? 어릴적 기술없는 싸움이야 님이 말한대로지만 성인이 되고 체력을 기르고 무술을 배운사람이라면 일반인들과 천양지차 차이가 나야합니다. 물론 90%이상 태권도장에서 발길질만 하다보니 아무리 태권도 잘해봐야 싸움과는 별 상관없습니다만(정권지르기 하나 똑바로 하는 태권도사범 잘 본적이 없습니다.) 타 무도까지 실전에 약하다라는 생각은 안하셨으면 좋겠네요.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사람은 누구나 싸움이 시작되면 본능적으로 손을 휘두르게되지요. 태권도는 주로 하던게 발이라 발을 휘두르겠지만 극심한체력 소모와 발차기를 위한 간격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주먹으로 개 맞고 어쩔수 없이 같이 주먹으로 왔다리갔다리 하다 끝나죠. 많이 봤습니다.
마음만검은띠 2012.10.27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병법의 최상이다라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말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