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외국인 9단 에드워드셀의 스승 박해만 9단과 그리고 청도관.

지난 10일 국기원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처음 9단 승단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그 주인공은 에드워드 셀이라는 사람으로 40년 전 한국에서 태권도에 인연을 맺어 그 입신의 경지를 인정 받는 아주 특별한 행사였다. 당연히 이 승단 시험은 국내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고 기회를 준 한국태권도에 감사를 드린다는 말과 더불어 소속관인 청도관과 박해만 스승님께 감사 드린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현재 박해만 (68.현 국기원 자문위원)씨의 문하생으로 있다. 에드워드셀씨는 미국 프로리다를 중심으로 청도관를 열어 미 전지역에 120개의 도장을 운영 태권도 보급에 앞장서고 있고 79년에는 플로리다 태권도 협회를 창설 운영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태권도로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고 또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든 성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성공을 스승의 덕이라며 감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진정한 무도인의 모습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박해만씨는 누구이고 청도관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 에드워드셀와는 박해만씨는어떤 인연이 있을까? 이런 궁금중에 기자는 박혜만씨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그는 현재 회기역 근방 청도체육관에 청도회 사무실에서 청도회를 위해서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변해 청도관은 관이라는 이름을 김운용 대한 태권도협회 회장이 관을 없앤 뒤로 관을 포기하고 청도회라는 모임 형태로 유지하고 있으나 그나마 요즘은 단합과 기능도 갈수로 왜소화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기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그의 기자의 질문에 태권도 역사책과 같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내기 시작했다. 박해만씨는 우리 태권도 역사의 산 증인의 한 사람이다.
해방과 함께 귀국하게 된 많은 일본 유학생들 중에 일본의 가라데(唐手)를 수련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기존의 공공시설을 이용하여 가라데를 보급하기 시작하였다.영신학교 강당에서는 이원국(李元國) , 일제때 유도관이었던 조연무관에서는전상섭(全祥燮), YMCA에서 윤병인(尹炳仁) 이 있었고 황기(黃奇) 는 교통부에 당수부를 만들었고 노병직(盧秉直)은 개성에서 송무관을 개설하였다.곧이어 이원국은 청도관, 황기는 무덕관을 만들었다.그 외 최홍희, 하대영, 김기환, 이동주, 윤쾌병, 조영수, 김인화 등이 점차 학교와 군대 등에서 가라데를 지도 하였다.초기의 이러한 보급은 1947년 말경에 이르러 청도관(이원국), 무덕관(황기), 연무관(전상섭), 권법도장(윤병인), 송무관(노병직) 5개계파로 정리되었다. 이들 5개계파는 각각 명칭표기를 달리했는데 청도관 당수도(唐手道), 무덕관 당수(唐手), 화수(花手), 수박도(手博道), 연무관 공수도(空手道), 권법도장 권법(拳法), 송무관 당수도(唐手道)등이다.
박해만씨는 12살때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고 청도관의 3대관장인 엄운규(현 국기원 부회장)씨와 군에서 인연을 맺은 인연으로 청도관에 입적 태권도 보급에 앞장서게 된다. 그때 당시는 성인들 중심으로 태권도(그 당시는 당수도)를 가르치게 된다. 특히 서울대 상대,문리대등 서울시에 있는 10개 대학을 중심으로 무도를 가르치게 된다. 그때 당시 그로부터 무도를 배웠던 사람들이 현재 현 장관직에 있는 사람도 있다.
에드어드셀과의 만남은 1963년에 승단 심사에서 1차 만남이 시작된다.1960년 에드워드는 오산에 있는 미 공군에서 근무를 하였고 그때 태권도와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63년 한국에 다시 입국 1년 이상 태권도를 수련 1964년 청도관에서 3단 승단심사 시험장에서 당시 심사위원을 했던 박해만씨와 인연을 갖게 된다. 그 후 1973년 국기원 오프닝 행사를 축하하기위한 세계 제1회 태권도대회에 에드워드가 미국으로부터 15명을 데리고 참가하게 되고 그때 당시 박해만씨는 시합 총진행을 맡고 있었다. 그때 박해만씨는 에드워드씨의 코치 역할을 했다고 한다. 75년 제2차 대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에드워드씨의 연습과 코치 역할을 담당 하게 된다. 이렇게 맺은 인연은 지금도 에드워드씨가 운영하는 프로리다 청도관팀의 전체모임에 항상 매년 초대를 받아서 가곤 한다.
그는 요즘에 외국에 자주 나간다. 국기원 교육분과 위원장과 연구분과 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어느 누구도 써주지 않는다는 늙음에 대한 푸념을 웃으면서 말하며 지금은 해외에 나가서 세미나,강습회등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활동을 많이 하신다고 한다. 여행도 하시고 적지만 용돈도 생긴다고 한다. 그는 매년 플로리다 에드워드 단체가 여는 행사에 가곤 하는데 거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한다. 매년 120개 청도관 소속 도장이 모여서 행사를 하는데 여려 그룹을 만들고 그룹끼리 다양한 술기를 나눈다고 한다. 요즘에 무척 인상적인 것은 ATA처럼 무기술이 태권도에 접목 되어 가르친다고 한다.
그는 인사를 드리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서 에드워드와의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그는 성실한 태권도인이며 또한 기독교 신자였다. 에드워드씨 또한 80%는 태권도에 나머지 20%는 기독교에 40년을 바친 인생이라고 말을 한다.
기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의 대화는 태권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태권도가 걸어온 역사적인 사실을 듣고 있노라니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태권도의 발생 배경부터 태권도가 안고 있는 정치적인 문제까지 또한 ITF 총재 최홍희씨와의 인연과 그에 대한 입장과 생각 등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 이었다. 어쩌면 태권도를 하는 우리 젊은 세대가 지금의 태권도를 비판하기 앞서 한 번쯤은 분명한 태권도역사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태권도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셨다. 첫째 “태권도를 통해서 휼륭한 사람들을 키워내야 한다” 는 말과 그리고 두 번째로 태권도는 자연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무도이다. 우주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운용하듯이 태권도도 너무 겨루기에 편중된 스포츠화 되어 버리면 무도의 정신이 실종 기형적인 태권도인들이 산출 될 것이라고 그는 염려한다. 품새,격파,겨루기를 조화롭게 수련했을 때 진정으로 자연에 이치를 깨닫게 되고 그것이 바로 태권도 수련의 경지라고 말을 하신다. 그래서 모든 대회에서 겨루기와 더불어 격파.품세가 종목으로 채택되어져야 한다고 주장 하셨다.
“인기 있는 태권도 챔피언 보다는 인격을 갖춘 태권도인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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