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무예사랑방]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고수(高手)의 꿈

[무예사랑방]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고수(高手)의 꿈

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3 - 깨달음


필자의 태권도 수련

모처럼 줄기찬 밤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에 풀벌레 소리들이 씻겨선지 또 다른 운치가 묻어나는 밤. 두런두런 함께 옛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그립지만, 그런 생각조차 사치인 먼 나라에서 저물어 가는 밤. 새록새록 지나간 추억들이 피어오른다.

나는 의학계에는 보고된 바 없는 두 가지 불치병을 오래도록 시름시름 앓아 왔었다. 그건 ‘고수병(高手病)’과 ‘안고수비증(眼高手卑症)’이다.

고수병은 무예의 고수가 되고 싶어 안달복달하다가 쓸데없는 수련들로 몸의 기력은 소진하고 기운은 머리로 뜨는 병이다. 일상생활조차 몽롱한 환각 속에서 수많은 적들과 싸우며 사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무인들에게만 걸리는 열병의 일종이다.

안고수비증(眼高手卑症)는 눈은 높고 기예는 형편없음을 뜻한다. 실력은 없으면서 괜스레 눈만 높아서 남을 업신여기는 증상이다.

난 어려서부터 무술들을 좋아했다. 무사, 무예, 무인의 길 이런 말들이 너무나 황홀하게 들렸다. 재물이나 지위보다 명예와 신념을 위해 죽고 사는 사나이들. 동서고금의 옛 이야기들에서도 이런 영웅들의 서사시가 유독 좋았다.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켜내는 이들의 모습이 더 없이 값지게 보였다. 이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당대최고의 고수들이었다. 그러니 나도 이런 고수의 대열에 끼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호령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이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 두 가지 불치병 사이에서 고생해 본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아직도 이런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도장에서는 이런 고수가 되기 위한 수련은 시켜주지 않았다. 맨 날 받아 차기나 시키고 다 외우고 있는 품새나 다시 하는 정도. 야외훈련이래야 왕복달리기에 계단뛰기, 구보가 전부.

철없던 시절 이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특히 겨울이 되면 혼자 수련하는 시간이 많았다. 눈 내린 겨울밤 사람들이 아직 밟지 않은 하얀 눈밭 위를 달렸다. 웃통 벗고 발차기, 구르기, 맨발로 품새 해보고 진행선 살피기, 동네 골목을 누비며 얕은 웅덩이에 얼어있는 얼음들 주먹으로 깨고 다니기 등. 이러다 보면 뿌옇게 날이 밝곤 했었다.

그 밖에도 무술 영화 속에서 본 수련장면들은 거의 다 따라 했다. 거대한 얼음을 쌓아놓고 내리쳐 부수는 장면은 그런 얼음을 구할 돈이 없어 냉장고에 2리터짜리 플라스틱 음료수 병에 물을 넣고 얼렸다가 꺼내 내리치거나 세수 대야에 물을 놓고 얼렸다가 내리치기로 대신 했다.

소나무며 벽돌이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치다보면 얼었던 손이 깨져 피가 났지만 상처가 늘 때마다 훈장이 느는 기분이었다. 철사장을 하겠다며 휴대용 가스버너에 모래가 담긴 세수 대야를 올려놓고 찌르기도 여러 번. 결국 부탄가스 값을 감당 못해 포기. 진검(眞劍)이 없어 쇠파이프를 대신 휘두르다가 출동한 경비아저씨한테 쫓겨 도망가던 일. 거리에서 만병통치약을 파시던 차력사 아저씨들의 신비한 기술을 배우고자 직접 따라하다 반병신 될 번한 일들도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이런 추억들을 엮어 쓴다면 단편 무예소설 한 권쯤은 나올 법도 한데…. 그런 내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이 탓에 벌써 지쳤는지 무술에 대한 애착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고수가 되겠다던 청춘의 꿈이 세월의 흐름 속에 점점 씻겨 가나 보다.

고수란 무엇일까? 누가 고수일까?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나만의 정의를 먼저 내려 보자.

고수란 ‘문무를 겸비한 존경받는 무인’이 아닐까? 만약 몸으로 갖춘 실력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최고 고수일 것이다.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에 가장 힘든 수련을 거쳐 최고의 예리한 감각과 기술을 갖추었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이들을 진정으로 ‘존경’하는가? ‘칭찬’은 하지만 ‘존경’까지는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린 그들의 실력은 알지만 아직 그들이 갖춘 무예에 대한 지식과 학문적 소양, 사상의 깊이 정도는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력에 비해 아직은 젊은 나이가 고수라 부르기 뭔가 석연찮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다.

태권도에서 고수란 태권도를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를 가진 이들이어야 할 것이다. 태권도에서 ‘어른’으로 존경하고 모실만한 분들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몸으로 갖춘 실력 외에도 세월의 깊이만큼 자신을 다듬어 나간 정신적, 사상적 경륜이 배어 있어야 할 것이다.

동양의 성자인 공자님이 항상 말씀하셨던 ‘군자’라는 완성된 인간형의 사람을 보자. 이에 밝은 사람은 소인이요, 의에 밝은 사람은 군자이다. 가난이나 역경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사람이다. 배우기를 즐기며 가르치기에 싫증 내지 않는 사람이다. 남이 써 주지 않는 것을 염려하기보다 그 지위에 맞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기타 등등 좋다는 수식어를 다 같다 붙여서 만들어지는 경지가 ‘군자’이다. 이런 군자의 모습 속엔 학자나 선비의 모습이 쉽게 상상된다. 하지만 글만 열심히 읽은 선비는 군자가 될 수 없다.

공자님은 누구보다 ‘문무겸비’를 주장하신 분이다. 문약한 선비는 아무리 똑똑해도 큰일을 맡길 수 없다. ‘무권무용 직위난계(無拳無勇 職位亂階)’라 하셨다. 힘과 용맹이 없으면 직책을 맡겨도 따르는 자들이 우습게보기 때문에 그 자리가 위태롭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글 읽는 선비들에게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활쏘기, 말 타기를 무척 강조하셨다. 공자님 자신도 무인의 아들이었으며 부리부리한 눈, 장대한 덩치에 험한 인상으로 무인의 형상을 갖춘 분이셨다.

그 제자들도 병법에 능한 자들이 많았다. 그 중 ‘자로’라는 제자는 이기지 못할 싸움임을 알면서도 군신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적진에 홀로 뛰어들었다. 칼을 맞고 쓰러지고도 “군자는 죽을 때도 관(冠)을 벗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갓끈을 고쳐 매고 바르게 앉아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공자님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고수. 한때 나의 삶을 지탱해 주던 말이었다. 그런 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묻기도 했다. 그러다 천운(天運)으로 수행을 오래하신 고수 몇 분을 뵙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기예를 가진 분도 있었다.

그 분들에게 물었다.
“장풍이나 공중부양 같은 것은 어떻게 배웁니까?”

“그건 왜 묻나?”

“그야, 장풍 한방이면 다른 것 필요 없이 바로 비즈니스 될 꺼 아닙니까?” 물론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지만 당시에 내 본 뜻은 그랬다.

“예전엔 장풍, 축지, 공중부양이 필요했던 시대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필요 없네.”가 답으로 돌아왔다.

장풍으로 10m밖의 상대를 거꾸러뜨리면 뭐하나. 대한민국 60만 대군이 하나같이 250m 밖의 적군도 쓰러뜨릴 소총을 가지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까지 비행기 티켓 하나 끊으면 단박에 날아가는데 축지에 공중부양은 무슨 쓸모이며 인터넷으로 세계 구석구석의 소식을 앉아서 다 아는데 천리안은 무슨 소용이냐는 말씀이다. 쓸모적은 일에 공연한 긴 시간 버리고 몸 상하지 말라는 뜻이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두 수도승이 입산하여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20년을 수행했다. 20년 수행을 마치고 하산해서 강을 만났다. 한 수도승은 물 위를 척척 걸어 강을 건넜는데 다른 수도승은 당시 돈으로 두 냥을 내고 나룻배를 탔다. 그걸 본 사공이 물었다.

“아니 저 분은 물 위를 걸어 강을 건너시는데 당신은 20년 동안 뭘 했기에 배를 타고 건넙니까?” 수도승이 말했다.

“저 사람은 고작 두 냥을 아끼고자 20년 동안 수행을 했을 뿐이요. 난 그 시간에 우주의 온 진리를 깨우쳤소.”

고수병에 시달리던 내게 뜨끔한 교훈이었다. 맨손으로 돌을 깨기 위해 숱한 시간을 피나게 단련했는데, 고물상에서 구한 단 돈 몇 푼짜리 망치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벽을 타고 뛰어 올라 높은 곳에 놓인 송판을 부수려 노력했는데 결과만으로 본다면 돌멩이 하나 던지는 것만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높이 뛰어 오르면 무엇 하랴. 날아오른 물체는 언제가 떨어지게 마련인데.

육체의 단련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곧 정신의 한계, 우리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고귀한 노력이다. 그래서 올림픽경기나 모든 스포츠들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매우 높은 가치가 있다.

다만, 내가 후회하는 것은 혹독한 육체의 단련에만 매진하다가 몸만 망가지고 더불어 허황된 꿈에 시간만 낭비하고 당연히 갖추었어야할 소양을 갖추지 못했음이다. 이런 전철을 혈기방장한 우리 젊은 후배들이 반복하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무겸비’ 이것은 고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나이가 점차 차가면서 몸은 점점 기력이 쇠하게 된다. 나 또한 그런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기울어져 가는 몸과 실력을 보면서 차라리 태권도를 그만둘까 생각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태권도 세상에서 내가 꿈도 꾸지 못했던 기술들을 발휘하는 후배들에게 밀려 추레해져만 가는 모습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다시 목표를 바로 잡고 꿈을 꾸고 이상을 가져야 할 때이다. 지나온 삶을 되살펴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한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태권도.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에서 그나마 잘했고 좋아했던 일이다. 몸은 지쳐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무(武)에서 쇠한 만큼을 문(文)에서 채워가자. 아직도 고수가 되고자 하는 나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산에서 인생을 배우듯, 바둑을 좋아하는 이들이 바둑판에서 인생을 읽듯, 우린 태권도 안에서 인생을 읽고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수가 아니겠는가?

첫 사랑에 빠졌던 그 때처럼, 다시 무예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쳤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서자. 모자란 것을 탓하지 말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탐내지 말고 오늘의 나를 받아들이고 여기부터 다시 시작하자. 다시 태어날 순 없지만 다시 시작할 순 있다. 내일은 아무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날들이 펼쳐진다. 지혜로운 스승이 되어 또 다른 고수들을 키워내자.

세월의 흐름 앞에 무너져가는 육체를 한탄만 하지 말자. 세월의 흐름 속에 더욱 경륜이 쌓이고 지혜로워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번뜩이는 인생의 큰 지혜를 보여줄 수 있는 멋진 고수로 늙어가자. 그것이 오늘 내가 꾸는 꿈,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고수(高手)의 꿈이다.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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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김사범 2012.09.26
동시대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가는 입장에서 좋은 글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 책도 잘 읽었습니다.~
무향 2012.09.29
태권도가 무도의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야 하는데 맨날 540도 돌고 720도 돌고.. 어디까지 돌지 모르겠지만 이러다보니 곡마단의 냄새가 납니다. 그러니 김연아나 손연재를 고수로 모실 판이니 되돌이키기가...
뉴져지 이사범 2012.10.05
문무겸비 진정한 고수가 되는 길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2.10.11
인생에 진정한 고수가 되고 싶게 하는 글입니다. 참 감사히 읽었습니다. 좋은 글 계속 올려주세요.
마음만검은띠 2012.10.24
고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해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문과 무는 공생할때 가장 빚을 발한다는 공자님의 말씀,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