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통신사 무예시연”
매년 8월 첫째 주 토, 일요일 가깝고 먼 이웃나라 일본의 작은섬 대마도에서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축제인 ‘아리랑축제’가 이즈하라를 중심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는 오히려 한국 본토와 더 가깝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와 생활이 예로부터 한국과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대마도는 고대로부터 한반도와 일본을 이어주는 중간 고리의 역할을 해왔다. 사실 대마도 주민들이 8월이면 축제 포스터를 거리마다 부치고 한국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적지않은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 조금 시비가 엇갈린다. 대마도는 90%가 산이다. 항상 물이 부족하고 먹을 것이 없어 정치가 불안하고 기근이 들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조선을 침략하는 왜구로 돌변하던 사람들이었다.
대마도에 가면 왜구에 약탈된 삼국시대의 불상을 비롯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천년의 비운을 간직한 채 그들이 예를 올리는 신사와 사찰에 고이 간직되어 오히려 한국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해서 대마도를 관광사업화 시키고 있다.
어쩌면 500년전 대마도가 정치적 목적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이 이루어진 것처럼 아직까지도 대마도는 양국의 정치적외교를 위한 교각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8월이면 대마도는 축제 분위기로 분주하다. 이런 행사에 마상무예와 무예시연은 빼놓을 수 없는 보기 거리다. 통신사 구성원을 살펴보면정사와 부사 일행 350-500명으로 구성되는 통신사 일행은 선진 조선 문화에 대한 일본측의 강한 욕구에 대응하기 위해 신중하게 구성 되었다. 학문 높은 명사로 대표단을 구성하고 문사, 무사, 화원, 의관등 전문가가 수행하였으며 심지어는 수행, 시종하는 소동들도 시문 교양을 갖춘 소년들로 선발하였다.
통신사의 본래 임무인 국서전달보다도 어찌보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문화교류일 것이다. 국서전달의식 후에 시를 서로 읊고, 마상재, 무예시범등의 행사와 화원, 악공들의 활약으로 에도성을 온통 축제 분위기로 만들게 된다. 정사 조엄 <<해사일기>> 에 보면 “간빠구가 활쏘는 기예를 관람코자 청하는 것은 규례이다. 기해(1719)년과 무진(1718)년에는 연속 여덟 사람을 보냈다…… 사장(射場)에 같이 들어간 자나 좌우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기사라고 칭찬하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의 조선인의 여러 기예 가운데 일본인들에게 아주 관심을 끌었던 것이 바로 마상재였다. 1635년 막부장군 도꾸가와 이에미쓰의 특별 초청으로 마상재의 명수인 김정, 장효인이 처음 시연한 후로 통신사가 파견될 때는 반드시 마상재를 파견하였다. 그 후 마상재의 시연은 에도에서 꼭 하는 행사가 되고 말았다. 에도 시대의 일본학자인 ‘아라이 학세끼’ ,’유이사 죠오산’등이 마상재에 대한 감탄의 문장을 썼고 오늘날에도 각지에 조선의 마상재 그림이 많은 것을 보면 당시에 얼마나 큰 관심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또한 마상재와 더불어 마상 기사 무예 시범도 시연도 일본인의 관심의 대상이였다.과거 대륙문화권에 소속되어 독자적 문화체계를 구축해온 우리나라는 임란이후 일본과 평화협정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요청으로 조선통신사를 파견하게 되고 이는 양국의 문화교류의 첨병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그 시절 문화교류 중 무예 시연은 어쩌면 무사계급사회인 일본인에게는 가장 큰 관심거리였을 것이다.
우리보다 200년이 앞서 있다는 일본의 검문화가 우리로부터 전해졌다는 흥미로운 학설이 있다. 이런 흥미로운 주제대한 고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그리고 현재에도 일본인에 의해서 재현되고 있는 역사적인 행사인 조선통신사 행사에서 재현되고 있는 무예 시연을 통해서 우리 고유 문화 유산인 우리 전통 무예의 현주소를 파악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다음 편에는 조선통신사 중 우리 무사들이 시연을 했던 마상재와 무예시연에 되어서 알아보자.
전통 무예에 대한 정보 및 기고를 원하시는 분은 02-878-2241, 또는 jylee@taekwon.netfh연락주세요.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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