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는 더이상 들러리가 아니다
한국의 독주시대는 막을 내리는가?
이번 대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한국의 퇴보 현상이다. 이제까지 모든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독식해 왔던 한국은 거의 모든 체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측은 2진급이 출전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2진급이 출전한 것은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태권도 기술이 평준화 되면서 그동안 기술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한국은 더 이상 최강의 위치를 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작년부터 두드러졌다. 작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은 전체 16개 금메달 중 9개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의 56%에 해당하는 숫자로 수치상으로는 매우 높은 금메달 획득률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거의 일방적으로 경기를 이끌어 왔던 예전 대회와는 달리 제14회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어렵게 어렵게 메달을 획득했다. 득점도 1-2점 차이 혹은 판정승으로 이긴 경기도 상당수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국의 노현구 선수와 대만의 Chi Hung Hsu 선수가 맞붙은 남자 페더급 준결승. Chi Hung Hsu 선수가 일방적으로 앞선 경기를 하고도 한국의 노현구 선수에게 진 이 경기는 공정치 못한 심판판정으로 경기내내 잡음이 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경기 후 있었던 Chi Hung Hsu 선수의 말이다. Chi Hung Hsu 은 인터뷰에서 "억울하다. 다시 붙으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불과 1개월 뒤, 크로아티아 올림픽 예선전.
한국은 4체급을 모두 석권하리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최고의 에이스들을 투입하고도 3체급 출전권을 따내는데 그쳤다. 물론 1체급 정도야 그 날 선수의 컨디션 혹은 현지적응이라는 변수로 인해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유있게 앞섰던 게임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남자 -68kg에서는 이란 선수에게 그야말로 처절한 패배를 당했다. 한국 코치진은 뭐, 1 체급 정도야 라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지만, 어이없어 하는 모습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2000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이 획득한 금메달 수는 모두 5개. 불과 1년 사이에 한국의 금메달 수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태권도, 이제는 전문 분야시대

이제 태권도 강국 이라는 단어가 사라질지 모른다. 대신 남자 태권도강국 혹은 여자 태권도 강국 이라는 단어가 생길지도 모른다. 몇 년 전만 해도 태권도 강국하면 한국, 스페인, 대만 등을 꼽았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든 체급에서 강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각국의 강세 체급이 뚜렷하다.
이번 월드컵의 종합순위를 살펴보면 그러한 현상은 확연히 드러난다.
남자 : 1위 이란, 2위 프랑스, 3위 한국, 4위 미국, 5위 쿠바
여자 : 1위 한국, 2위 중국, 3위 터키, 4위 멕시코 5위 벨라루스
남자 3위 와 여자 1위를 차지한 한국을 제외하고는 상위 5위안에 드는 국가 중 남자부와 여자부 양쪽에서 성적을 낸 국가는 없다.
남자 1위를 차지한 이란의 경우, 남자부에만 출전을 하여 4체급에서 결승에 진출하여 금2, 은2 을 획득했다. 이란이 주력하고 있는 체급은 라이트, 웰터, 미들급 등으로 중량의 체급들이다.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라이트와 미들급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이번 월드컵에도 페더, 라이트, 웰터, 미들급 4체급에서 각각 메달을 획득했다. 이란 코치는 "이란은 남자 중량급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또한 그만큼 선수층도 두텁다"고 말했다. 이란은 앞으로도 중량급 남자 태권도의 강자로 계속해서 자리매김을 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중국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팀 스스로도 "여자 태권도 강국" 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만큼 여자체급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이 획득한 전체 메달수는 모두 2개. 2개 모두 금메달로서 여자부에서 나왔다. 이것을 단순히 어쩌다 보니 여자부에서만 메달을 땄다라고 생각하면 오산. 왜냐하면 중국팀에서 볼 때는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태권도를 시작한 것은 불과 4-5년 정도. 그 짧은 기간에 국제적인 강팀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국가에서 몇 개 지역을 태권도 집중 육성지역으로 선택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은데 있다. 그런데 그 육성지역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정주는 바로 여자태권도를 주력으로 삼는 도시이다. 정주는 한국 등 태권도 강국의 기술과 자문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전력이 급상승했다. 결국 정주 출신 선수들이 중국 대표팀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는 남녀 모든 체급에 선수들을 참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란과 중국과 같이 몇 개 체급 혹은 남녀 한쪽만을 집중 육성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현재 경기가 스포츠화 되어있는 만큼 치밀한 분석과 육성책이 각국에 필요한 시기이다.
아시아, 중동 대약진- 유럽돌풍 9개월만에 무너져
그야말로 아시아와 중동의 잔치 분위기였다. 유럽의 중심 프랑스의 리옹에는 이란, 터어키,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중동 국가들의 국가가 울려 퍼지느라 소란스러웠다. 이번 대회에서 중동, 아시아 국가가 획득한 금메달은 모두 10개. 전체의 62%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다. 불과 9개월 전 크로아티아 올림픽 예선전에서 모든 체급을 휩쓸었던 유럽은

주최국 프랑스가 얻어낸 단 2개의 금메달로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1990년대 유럽의 왕자 스페인이 따낸 메달은 모두 6개로 그 중 은메달만 3개를 차지했다. 결국 3체급에서 결승전에 오르고도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한 셈이다. 스페인 감독은 "올림픽을 생각해서 주전 선수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지만 선수단을 살펴보면 Asensio Belen (99 세계선수권 여자 핀급 우승) 을 비롯 Juan Antonio Ramos(97 세계선수권 남자 핀급 우승), Arnanz Luisa(98 월드컵 여자 라이트 우승), Montesinos Ruben (99 세계선수권 남자 헤비급 3위), Franciso Zas (99 세계선수권 남자 페더급 3위), Rosendo Alonso (99 세계선수권 남자 라이트급 3위) 등 쟁쟁한 국가대표 1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반해 중동, 아시아는 선전은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대회 첫날 여자 핀급에서 중국의 Kong Fantao의 우승을 시작으로 중동, 아시아의 각국은 누가누가 잘하나 내기를 하듯 각 체급 우승을 휩쓸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각국 태권도 기술의 평준화에 있다. 태권도계에선 이미 전 세계의 태권도 기술은 다를 게 없다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페인의 김영기 감독은 "기술차이는 없다. 이제부터는 기초체력과 정신력의 싸움" 이라고 현 태권도를 진단했다. 그 동안 각국의 꾸준한 기술향상에 대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태권도를 늦게 시작한 나라의 경우는 아예 재능있는 어린 선수들을 선발하여 한국과 같은 태권도 강국에 몇 년씩 태권도 유학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각국의 잦은 교류도 기술 평준화에 한 몫을 해 왔다. 꾸준한 해외 전지훈련으로 각국 에이스급 선수들의 장점과 단점은 이미 노출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어느 국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결과가 올림픽에도 그대로 반영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승자를 예상하기 힘들만큼 실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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