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과 태권도장을 성공적으로 이끌기까지
가난했던 어린 시절나는 경북 영양이라는 시골 산골에서 태어나 전기도 없는 초가 지붕 밑에서 가난이란 큰 멍에를 지고 자라났다.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큰 아픔이었고 나는 그 멍에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으며 언제나 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성장과정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에 태권도를 알게 되었고 그것은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하였다.
그 시간만은 나의 세상이 되었고 나를 인정해 주었으며 생활 중 가장 큰 행복감에 젖어드는 시간이 되어서 그냥 좋아서 운동을 했다. 군 생활을 끝내고 막노동판에서 2달을 일해서 방을 얻고 난 뒤 일반 회사에 입사를 하여 3개월을 생활했지만 꿈꾸던 목표를 이루기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태권도장을 찾게 되었고 그 길이 영원한 직업이 되었다. 내가 처음 사범으로 취직하게 된 도장은 대학 때 잠시 가르치던 곳인데 관원생수가 많지 않아 사범을 쓸 여유가 없다는 관장님의 말씀에 난 월급은 안 받아도 괜찮으니 자격증을(사범)취득할 때까지만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의 관원생은 50명이 안되었지만 젊은 혈기하나로 어린 친구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젊음 하나로 시작했지만 나의 생각보다 그렇게 관원생은 늘지 않아서 고민했으며 그래서 나는 먼저 관원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관원생들이 즐거워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답을 하나하나 찾아서 실시했다.
태권도 도장 경영 입문
그 결과 정열과 고민이 어우러져 관원생은 한 명, 두 명씩 늘어나게 되었고 난 1년이라는 기간동안에 4단 그리고 사범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 1년 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관원생은 150여명으로 늘어났는데 거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하나는 모든 일을 철없는 나에게 맡기시고 전혀 관여를 하지 않으셨던 관장님의 배려가 있었고 또 하나는 관원생의 입장에서 무엇을 좋아 하는지 생각하고 그에 따라 교육이라는 것을 접목하여 접근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 한다.
그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의 지도철학을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고 1년 뒤 생활의 여유도 없는 나는 욕심이 앞서 무작정 사범 생활을 그만 두었다. 여기 저기에 체육관을 하려고 경제적 어려움을 부탁했지만 가진 것 하나 없는 나에게 큰 액수는 아무도 빌려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먼 친척으로부터 5부 이자에 2천만원을 빌려서 꿈에 그리던 도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나 가슴 벅찼으며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기쁨은 끝이 없었고 이제 큰 끔을 이루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하늘을 나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1,3,5개월이 되었지만 관원생은 불어나지 않았으며 인수 때 30여명에 있던 관원생이 그대로 이어져 고민했다.
그 답의 여론을 들어본 결과 관장은 바뀌지 않고 사범만 바뀌었다는 줄로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체육관 이름을 우진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했다. 그 후부터 서서히 알려져서 한, 두 명씩 들어왔다.
하지만 많은 이자 돈과 어려운 생활로 생활자체가 아픔이었지만 하루 2끼를 먹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 때 2끼 먹던 버릇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왜냐고 반문한다면 사람은 배부르면 게을러지기 때문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 1명이라도 지도하려고 노력했으며 밤 12시 30분까지 1명을 위해 뛰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려움
좋은 옷, 영양가 있는 음식, 여자친구들, 잠 등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열심히 2년을 생활하고 난 뒤 빚을 다 갚게 되었고 관원생도 180여명에 이르렀다.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냉정하였으며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이유는 어려서 배고파 본 사람이 아니면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체육관 생활 중 잠자리는 연탄불도 없는 사무실 뒤쪽 바닥에 스티로폴을 깔고 두꺼운 이불 한 채 덥고 새우잠을 3년 잤으며 공간이 부족하여 화장실 옆 1칸을 막아서 밥을 해 먹었다.
하루는 화장실 옆에서 라면을 먹는 나를 보고 한 학부형은 교육비를 납부하러 왔다가 눈물을 흘리고 간 일도 있었고 손이 시려워 떨고 있는 모습을 몰래 바라보던 학부모님들이 반찬과 먹을거리를 종종 가져다 주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져 목이 잠겨온다.
3년 동안 운영하면서 핵심은 학부모입장에서 생각하자, 관원생은 어떤 것을 좋아할까?라는 2가지 물음에 매일 고민했으며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항상 내 곁에 머물고 있었으며 그 답을 찾아 조금씩 조금씩 실천에 옮기기를 시작했다.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첫째는 입관동기가 태권도를 배워서 국가대표나 전문선수를 원해서 오는 이들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위치가 시장이 있는 지역이라 버릇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한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효도하게 하는 일 즉 부모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교육 하는 일과 또 소중한 분이라는 점을 중점적으로 교육했으며 그에 행동 표현 방법으로는 큰절을 실시했다.
학부형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갈 수 있었던 내용들은 이러한 교육(인성교육)이었는데 주위의 시장가에 소문으로 퍼져 나갔으며 그로 인한 인지도는 많이 올라가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체육관을 운영한지 3년만에 결혼했다. 처는 중매로 만나게 되었고 영남대학교 사범대 수학교육과 출신이였다. 나는 더 욕심을 내서 3층에 학원을 증설했는데 그 해 유치원생 150여명을 모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교육설명회를 열어 직접 알렸다.
성공적인 도장 경영 시작
태권도 교육을 바탕으로 학원도 햇수가 거듭될수록 타 주위 학원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확장이 되어 갔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열심히 뛰다 보니 아내가 몸이 몹시 좋지 않게 되었다.
늘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으로 지냈으며 눈물로 호소하던 아내를 데리고 모처럼 바깥나들이를 가는데 지금의 도장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난 그곳에 올라가서 상가를 둘러보니 너무 위치가 좋아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자리가 낙찰되어서 지금 분양이 안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다음날 바로 계약을 하였으며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가슴은 설레였다. 나중에 안 사실은 그 자리를 두고 많은 관장님들이 절충중이었다는 것이었다.
판단이 섰으면 강력히 추진하는 지혜도 성공의 열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위 여건은 그 지역에는 10년이 된 체육관이 500미터 정도의 거리에 1개가 있었다. 지금은 5개가 있지만...
하지만 소신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성실히 임했다. 첫 달에 50여명 입관했으며 3달만에 160명이 모였다. 그 주된 이유는 입관상담 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도장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1위가 입관상담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것을 통해 나의 철학을 알리고 자녀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안 제시를 함으로써 학부모님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도장이 되기 때문이다.
입관상담 시간은 30분에서 40분 정도였으며 그로 인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아파트 전 지역으로 퍼졌으며 특히 반상회를 통해 많이 알려 지게 되었다.
도장 경영에는 소신과 철학이 있어야
무엇보다 신개발 지역이라 반상회가 자주 열렸고 그 시간에 주된 이야기는 새로운 지역에 적응할 수 있는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가장 큰 이야기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에 우진 태권도라는 교육이 고객만족으로 이어졌다. 그에 탄력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승급심사였다.
도장운영의 둘째는 승급심사다. 이 시간을 통해 입관 시 상담에서 약속했던 교육을 확인 시켜 주는 시간이 되었고 그로 인한 확실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기존 심사에서 탈피하여 교육으로 인정받기 위한 일에 고민하고 몸부림쳤으며 심사가 끝난 뒤 많은 관원생과 학부모님들은 감격의 눈물바다로 이어졌다.
그리고 심사가 끝난 후 아파트 단지에는 우진교육의 열기로 붐이 일기 시작했다. 1년도 안되어서 상상을 넘는 관원생이 불어났으며 난 그럴수록 더욱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것은 어린시절 가난이 가져다 준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나에게 힘든 만큼 더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강한 자립심을 알게 해 주었다.
체육관을 처음 개관한 해에는 이자 돈을 주고 나니 추석에 시골 갈 차비도 없고 선물을 준비할 여유가 없어 체육관에서 달 보며 남몰래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그 상황은 나 자신 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목이 메어 온다.
생각해보건데 96년부터 가장 성공적인 도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의 덕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도장을 하면서 대학이라는 곳에서 강의도 2년 동안 했고 전국을 다니며 성공사례를 발표도 많이 하였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도장에서 어린 친구들을 지도할 때가 가장 보람있고 즐겁다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어린 친구들에게 물꼬는 트는 데로 흐르니까. 그리고 많은 부모님의 적극적인 사랑과 성원이 있으니까. 그리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우리 체육관을 방문한다. 하지만 도장이 잘 되려면 어느 한가지만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동시에 조화를 잘 이루어야 된다. 위치, 시설, 프로그램. 지도자의 교육방향, 단정한 모습, 상담, 화술 그리고 성공도장의 공통적인 것 하나는 유머와 재치, 순발력을 가진 지도자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도장을 찾아 오시는 사범님들께 그 때마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①인테리어는 1년마다 바꿔 주어라.
②지금은 아이들이 없어도 1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지도철학이 확실하다면 분명 역전을 시킬 수 있다.
③기존 관원생 유지의 필수적인 것은 계절별 또는 학기별로 교육프로그램을 바꿔 주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린다.
④신입 관원생을 위해서는 붐 조성(이벤트)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
⑤태권도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고객만족은 무엇인지 늘 생각하라는 것과,
⑥수익금액의 5~10%는 자신의 교육을 위해, 도장을 위해 재투자하라는 것
그리고 도장을 신설 하고자 할 때는 많은 관원생이 있는 체육관 옆은 피하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식당을 가 보면 기다려도 많은 사람들이 먹는 곳에서 먹으려 한다. 하지만 그 옆에는 언제나 파리만 날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도장 옆은 너무 힘이 들 것이다라고 나름대로 경험담을 일러준다.
아무튼 도장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 질 때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도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장교육의 평가는 학부모와 관원생(고객)이 내리고 판단하기 때문에 분명하고 확실한 지도철학이 먼저 정립이 되어야 될 것이라 본다.
ex)석공에게 얻을 수 있는 지혜
내가 이 돌로 무엇을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돌이 진정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태권도장은 태권도 교육을 통하여 고객이 원하는 교육으로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인성교육이란?
태권도를 교육적 수단으로 하여 부모와 사회가 바라는 아이로 교육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느낄 수 있도록 해야 되며 체험으로서 얻어지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피교육자는 생각과 행동이 바뀌게 된다.
ex)무단 횡단 안 하기
-준비물 : 일기장, 연필, 지우개
-인성교육
수업시간에 도로에서 다른 사람들을 직접보고 체크한다.
무단횡단 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
①왜하는지
②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
③느낀 점 발표하기 등이다.
-얻을 수 있는 효과 : 우진도장 이미지, 태권도에의 다양한 전인교육, 도복 입은 모습의 씩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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