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고대 기원설은 왜곡이다"
두 학습교재의 오류
태권도 공인기관에서 발간된 학습교재로서 태권도교본(품새편, 대한태권도협회, 1972)과 국기태권도교본(국기원, 1987)이 있다. 이 교본을 체(體, 근거)로 하여 용(用, 쓰임) 즉 여러 갈래의 말과 글로 여러 나라에서 발간되고 있다.
체(體)로서의 태권도교본은 용(用)의 쓰임새에 따라 더욱 체·용의 관계성이 희박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체는 본으로써의 전문성을 구비할 때 용은 쓰임새로써 활용되며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기원 등 유관기관은 본래적 목적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탓에 전세계 태권도인은 태권도의 역사 및 이론적인 면에서도 종주국에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 두 교본은 태권도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 고대 한국 무예사(武藝史)를 독식하고 마치 태권도의 원형이라고 단정하며 기술했다.
"역사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고대, 중세, 근세, 현대의 넷으로 나누어 편의상 나라별로 구분해 보면 고대는 삼국시대까지...(중략)" 등으로 시작, "태권도는 발생 후 택견, 턱걸이, 턱건이, 수박, 태껸, 탁견 등으로 불리어 오다 태권도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단정지었다.
그리고 태권도 발생의 결론으로 다시 "전기한 바와 같이 시대적 환경이 무예를 중시한 관계로 무예를 수련하는 무사단의 창설을 촉진하였으니 그 대표적인 예가 고구려의 선배(帛衣仙人)와 신라의 화랑이었으며 이들의 심신 단련과 무예 수련의 방법으로 태권도가 행하여졌다고 추찰된다"(국기태권도교본, 1987;22∼23)고 애매모호한 표현을 썼다.
태권도 명칭의 유래에 대해 이 교본에서는 "점차 수련생이 늘고 도장간의 교류가 이루어지자 1954년에 명칭을 태권도로 통일하고 그 후 1961년 9월 16일에는 태권도협회의 명칭을 대한태수도협회로 개칭하였다가 1965년 8월 5일 다시 대한태권도협회로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국기태권도교본, 1987;32)"고 두리뭉실하게 호도하고 있다.
태권도를 포함한 한국 무예 정통성에 대한 설왕설래
국기원은 왜, 지금껏 태권도 명칭유래 등 중요한 사적 기록에는 그토록 인색하였을까?라는 의혹에 그것은 단지 최홍희를 소외하고 김운용에 아부하려는 의도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태권도를 포함해 택견, 유도 등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의 정체성에 대한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택견 전수교본(오장환, 영언문화사, 1994;20)에서는 "태권도가 우리 나라의 국기(國技)로써 각광을 받는 이때에 그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전통 기예인 택견을 보호 육성하고 학문적으로 정리 연구함은 큰 뜻이 있는 일이라고 본다"라고 표현했다.
유도의 경우 한국에서의 유도 기원설에서 유도의 기원에 있어 한국에서도 경기화 이전의 유술에 대해 그 기원설이 다양하다. 그러나 유술이라는 것은 일본 유도의 전신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먼저 한국의 수박을 유술(柔術)이란 용어로 개칭한 최초의 인물은 안자산(安自山)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안자산(1974:74-75)은 그의 저서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에서 유술의 시초는 고려 중기 때부터이다. 충혜왕 때에는 점차 유도의 유행이 대흥하여 이 때에는 이를 수박 혹은 권법이라 하였으며(생략)라고 기술했다.
김상철은 "유술이 수박이었다는 증거가 우리의 문헌자료 혹은 유물가운데서 발견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안자산과 이제황(李濟晃)의 견해는 바로 학계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유도론, 김상철, 교학연구사 2000;54∼55)라는 신중한 표현을 하고 있다.
수박(手搏)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는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태권도계에서는 수박을 태권도의 전신으로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태권도는 수박과 별개다라는 대립적인 주장이 있다. 나현성(1976;18-22)은 <韓國 手搏(跆拳)攷>란 논문에서 수박을 태권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의 저서인 한국체육사연구1981:26)에서 수박이란 오늘날의 태권의 원형으로 생각되는 일종의 권법으로...(중략)... 각저총의 그림과 같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 자체의 형태로 보아 큰 착오가 없을 듯하다고 주장하여 다시 한번 수박과 태권의 동일성을 주장하고 있다.(유도론 김상철 2000:56)
한편 중요무형문화재 3(문화재연구회, 대원사 1999;156)에서는 택견의 유래에 대한 문헌적 기록은 없다는 서두로 시작, 단재(丹齋)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인용, 삼국시대부터 택견이 행해졌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태권도는 고대로부터 발생에 대한 기록은 분명한 왜곡
그리고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면 수박(手拍) 또는 권법이라 하는 유술(柔術)이 유행하였다는 기록이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 무예고(武藝考)에 전한다. 한국 무예의 정체성을 논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다.
이에 대해 고구려 고분의 자유 겨루기와 기타 품세의 그림으로 보아 고구려에는 이미 택견이 일반인에게 보급되었다고 정찬모는 한국무술 태권도라는 글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려해 보아야 할 지나친 견해가 아닌가 생각한다.(택견 전수교본, 오장환, 1994;43)
한편, 이학래(1989;9)는 고구려의 벽화에 대한 이러한 견해들은 한국 고대의 투기가 오늘날처럼 유도, 씨름, 태권도로각각 분화되어 발달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태권도를 전공한 사람들은 이 벽화를 태권도의 원형이라고 하고, 씨름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씨름이라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이 벽화를 무엇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유도론, 김상철 2000;58)
이렇듯 수박 또는 권법이 태권도, 택견, 유술(유도)이라는 각각의 주장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아전인수격 기록은 아직도 한국 무예가 안고 있는 병태(病態)다. 오늘날 택견은 역사적 고증과 1983년 6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인정 등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태권도는 세계화, 한국문화 상징 지정(1996),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등 논리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태권도 명칭유래와 협회창설 원로들의 무력(武歷) 등을 준거(準據)로 삼을 때 태권도는 고대로부터 발생에 대한 기록은 분명한 왜곡이다. 오늘의 무예인은 근세 이전의 한국 무예사를 고무예(古武藝)로서 애정을 갖고 숭고(崇古)해야 하는 것이다.
댓글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