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회 맞은 ‘전국체전’의 지난 역사?

1920년 전조선야구대회 기원, 1934년 전조선 종합경기대회로 점진적 발전

올해도 전국체전 성화가 강화도 마니산에서 채화됐다.
제92회 전국체육대회가 지난 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화려하게 개막했다. 전국 16개 시도에서 42개 정식종목과 3개 시범종목에 2만8천여 명이 참가, 오는 12일까지 7일간 체육으로 지역의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전국체전은 매년 가을 대한민국 최대 규모로 열리는 종합경기대회이다. 모든 국민에게 스포츠를 보급하고 스포츠 정신을 고취하여 국민의 체위를 향상시키며, 지방체육의 저변확대를 도모하고, 명랑하고 질서 있는 사회기풍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어 오고 있다.
해를 거듭하면서 본연의 취지와는 다르게 판정시비, 출전자격 등 과열경쟁이 심화되면서 볼썽사나운 장면도 심심치 않게 연출되고 있다. 경기종목 역시 엘리트화로 변질된 점 또한 경쟁이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국체전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첫 대회는 지금으로부터 92년 전인 1920년 11월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 주최로 배재고보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횟수를 기산해 왔다. 오늘날 실질적인 종합대회는 1934년 야구와 축구, 테니스, 육상, 농구 등 5개 경기가 열린 해부터다.
<무카스>는 주요 경기종목의 국내 최대 종합대회인 전국체육대회의 지난 역사를 소개한다. 자료는 전국체전을 주최하는 <대한체육회>가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92NSF)에 게재한 자료를 전한다. [편집자 주]
1.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개최
전국체육대회는 1920년 7월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후의 첫 행사로 그 해 11월에 배
재보고운동장에서 개최된 제1회 전 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삼는다. 조선체육회 출발 초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종합대회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단일 종목별 경기 대회를 형편 닿는 대로 차례차례 개최해 나가면서 체육 활동의 폭을 넓혀나갔다.
이 땅에 종합경기대회가 등장한 것은 1925년이었다. 그 해 성동원두에 경성운동장(현 동대문 운동장)이 세워지고, 이를 기념하여 이른바 조선신관경기대회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대회를 우리 민족의 체육대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이 대회는 일본인에 의해 준비 되고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본 선수들도 다수 참가했으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고 보면 한민족 종합체육대회의 효시는 1934년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전조선 종합경기대회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경기종목은 축구, 야구, 정구, 농구, 육상 등 5종목이고 경기장도 경성운동장 외에 욱천운동장(현 선린중 자리), 배재고보운동장, 철도운동장 등 이른바 보조 경기장을 사용하였다. 이 대회가 기록상 제15회 전조선 종합경기대회가 된다.
첫 번째 종합경기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이듬해에는 유도, 씨름, 검도, 역도가 추가되고 1936년에는 빙상, 권투, 탁구가, 또한 1937년에는 배구가 추가되는 등 대회 규모가 커져갔다. 이처럼 대회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의 경기 수준은 나날이 향상되고 여기서 기른 힘으로 많은 종목에서 전 일본을 휩쓰는 기개를 보였다. 특히 축구는 완전히 일본을 눌렀으며 육상, 탁구, 럭비 등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전조선 종합경기대회가 절정에 오른 것은 역시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을 전후한 2~3년 사이인 듯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황금시대는 일제의 새로운 탄압정책으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좌절되어야 했다. 1938년에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당하고 민족 체육이 억압당함으로써 전조선경기대회는 제1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고 만 것이다.
2. "조선"을 "대한"으로 개칭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감격은 체육인들에게 또 다른 환희와 광명을 안겨주었다. 곧 민족스포츠 대회의 부활이었다. 그해 11월 조선체육대회가 재기하자 곧이어 12월 초 겨울에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를 열었는데 이 대회가 제26회 전국체육대회인 것이다.
광복을 맞은 민족의 기쁨을 표현하는 민족축제로 마련된 이 대회는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뜻 깊은 행사였다. 경기종목은 육상, 축구, 야구, 배구, 정구, 럭비풋볼, 탁구, 자전거, 승마, 농구 등 10종목 이었으며 이듬해 1월에는 징상대회도 부활 되었는데 이대회가 오늘의 동계빙상 및 동계스키대회로 발전했음은 물론이다.
1946년부터는 각 경기 단체들이 조직 정비됨에 따라 경기 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8.15해방 1주년 기념대회 이외에 3. 1절 경축대회가 잇따라 열렸으며 1947년 6월에 대한올림픽위원회의 발족을 앞두고 제27회 대회는 조선올림픽대회로 불리기도 했다.
이어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정부수립을 경축하는 제29회 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부터 조선종합경기대회 또는 조선올림픽대회 등의 명칭을 전국체육대회로 고치고 이제까지의 자유 참가제를 시.도 대항제로 바꾸었다. 따라서 오늘과 같은 향토의 명예를 건 치열한 경쟁은 이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또한 정부수립과 함께 모든 단체와 행사의 명칭은 "대한" 또는 "한국"으로 통일되고 1949년에 윤석중 작사, 김희조 작곡의 "체육대회가"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전국대회라는 국가적인 이 행사가 본 궤도에 오르자 체육인들은 놀라운 의욕으로 좋은 기록과 높은 수준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1948년 우리나라 건국 후 최초로 런던올림픽 대회 참가를 앞두고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여러 부분에 걸쳐서 우수한 기록이 작성되고 많은 유망 선수들이 배출되었다.
3. 제36회 대회부터 마니산에서 성화채화
전국체육대회가 틀이 잡힐 무렵인 1950년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제31회 대회는 중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제의 질곡 속에서도 용솟음쳤던 체육인들의 정열과 투지는 다음 해인 1951년 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광주에서 제32회 대회를 치러내고야 말았다. 대회이 내용은 빈약했지만 대회 개최의 뜻은 자못 큰 것이어서 이 소식은 곧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한 각국 스포츠 계에 알려졌으며 이에 감격한 세계 스포츠인들은 뜨거운 격려를 보내왔다.
1953년 휴전이 되고 사회가 차츰 안정됨에 따라 체육대회도 질적으로 충실해지고 양적으로 대형화되었다. 그리고 1952년 제33회 대회부터 내리 다섯 번 서울에서만 개최하였던 전국체육대회는 중앙과 지방의 균등한 체육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 아래 지방순회 개최를 기하여 38회('57년) 부산, 41회('60년) 대전, 43회('62년) 대구, 45회는 인천, 46회는 광주에서 열려 스포츠의 전국적인 보급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4. 제53회 대회 때 소년체전과 분리
1966년 서울에서 5년 만에 개최된 47회 대회는 참가 선수단 규모가 13,000명으로 1956년 제37회 서울대회 때의 6,000명 참가보다 무려 2배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회 표어 '새희망, 알차게, 보다 힘차게'를 제정하였으며 대회가 거듭될 때마다 표어가 새로 제정되다가 (48회 : 푸른 마음 힘차게 내일을 위해, 49회 : 힘차게 슬기롭게, 알차고 명랑하게, 50회 : 슬기롭고 아름답게, 보다 힘차게), 제51회 대회('70년)에서 채택한 "굳센 체력, 알찬 단결, 빛나는 전진"이 그 후 계속 사용되었다.
1967년 제48회 대회에서는 카드섹션이 등장하였다. 흔히 인간 모자이크 또는 스탠드 마스게임이니 하는 카드섹션은 그 전년의 제5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도입한 것이다. 이듬해인 제49회 대회부터는 입장상 제도가 실시되어 이로 말미암아 개회식에 있어서의 질서와 행동미는 놀랍도록 향상되었고 개회식에서 대통령이 직접 1위 선수단장에게 수여하는 이 상의 매력은 경기성적 못지않은 또 하나의 과열 경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56회('75년) 대구대회 이후 계속 지방에서 대회가 개최되는 동안 입장상은 개최 시. 도 선수단에서 수상하는 관례가 싹터 경쟁의식이 사라지면서 제61회 대회부터는 폐지되기에이르렀다. 다만 남은 문제점이 있다면 씩씩한 기상을 표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굳어져 어색해 보이기조차 하는 행동보법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제5공화국의 출범 이후 뚜렷이 부각되어 제12회(1983년) 전구소년체육대회 때부터 자연스러운 "보법"으로 전환되었고, 제64회 대회부터는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1969년의 제50회 대회는 대회 반세기를 기념하여 (1)성화의 전국 일주 (2)카드섹션 의 동화 등장 (3)이북5도 임원단의 입장식 참가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에 선수단의 입장 때 출신도의 선전효과를 노린 갖가지 휴대물과 동작 등이 크게 유행하였으나 성화 전국 일주는 경비관계로, 선전 동작은 미관상 이유로 제53회 대회부터 단되었다.
1970년 태릉 국제 수영장의 개장과 함께 제51회 대회부터는 수영, 조정을 하계대회로 통합하고, 1972년 제53회 대회에 이르러서는 27개 종목에 16,000명이 넘는 임원, 선수가 참가하는 과대 현상이 나타내게 되어 운영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전국체육대회의 지방개최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어 왔던 것이다.
5. 86 아시아경기대회 및 88 서울올림픽으로 승화
소년체전과 분리된 제53회(1972년)대회 때부터 참가규모가 12,000명대로 축소되자 각지방에서의 전국체육대회 유치 신청이 이어졌다.
제54호 이후 제61회까지는 단 한번만 서울에서 개최되고 나머지 대회는 모두 지방 순회로 개최되어 균형적인 지방 체육 발전을 꾀하고 지역간의 화합은 물론 체육 인구의 저변확대와 대중화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경제 성장에 바탕을 둔 1980년대 우리나라 체육은 세계화로 치닫는다.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여 한국 체육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고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86아시아경기대회. '88서울올림픽 양 대회는 우리민족 반만년 역사에 유례없는 대역사로 1920년부터 꾸준히 개최되어 온 전국체육대회가 성공적인 대회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은 '86아시아경기대회에서 종합 2위, '88서울올림픽에서는 종합 4위를 차지하는 등 경기력에서도 체육선진국에 진입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전국체육대회를 통해 꾸준히 우수한 선수들을 발굴하고 경기력을 연마한 결과의 소산이며 전 국민의 체육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89년은 전국체육대회가 고희를 맞는 해였다. 대한체육회는 올림픽의 열기를 전 세계에 퍼져있는 교포들의 가슴에 심어줌으로써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고희를 자축하기 위해 세계한민족체육대회를 창설 전국체육대회와 병행 개최하였다. 제70회 체전은 교포들에게 한민족의 발전상과 조국의 관심을 확인시켜 민족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킨 대회로 기록되었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양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국체육은 세계의중심을 향해 힘차게 전진했다. 이체 따라 전국체육대회도 더욱 현대화하고 짜임새 있는 운영으로 내실을 닦았다.
6. 지방 체육의 세계화
특히 21세기를 눈앞에 둔 '90년대에 있어서 전국체육대회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까지 체육시설을 확장시켜 지방 체육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97부산동아시아경기대회와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그리고 '97무주. 전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99강원 동계아시안게임 등 국제종합대회를 지방에서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체전의 지방개최로 체육시설이 갖춰지고 국제종합대회 운영의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90년대에 이르러서 체전은 실시 종목 수가 35개에 이르고 참가선수 수도 2만 3천명이 넘어서 숙박이나 교통 등의 문제점이 많아 지방개최에 적신호가 울렸다. 77회 전국체전에서는 체전사상 처음으로 "달곰이"라는 마스코트가 선을 보였다.
제78회 전국체육대회는 울산광역시가 새로운 시. 도지부로 참가하여 16개 시. 도가 열전을 벌였고 처음으로 야간 개회식을 실시하였으며 마스코트로 "해울이"를 사용, 이후 전국체전에서 마스코트의 채택이 정착되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제79회 전국체육대회는 서울올림픽 개최 1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로서 제주도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제80회 전국체육대회는 희망찬 21세기를 준비하고 국제공항의 건설과 tri-port세계도시화를 추진하고 있는 인천에서 16년 만에 개최하였으며 정식 종목 36종목, 시범 종목 등 총 39종목에 걸쳐 국내 및 해외 동포가 참가, 전국체육대회가 아시아와 세계 스포츠의 정상으로 떠오른 한국 스포츠의 산실임을 입증하였다.
7. 전국민 화합의 장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의 리허설 성격으로 개최된 제81회 전국체육대회는 21세기 환태평양 시대의 국제교류 거점도시로의 발판을 마련코자 야심차게 개최되었으며 아울러 경기장을 부산 아시안게임 시설의 최대 활용처가 되었다.
제82회 전국체육대회는 충효와 예절의 고장인 충청남도에서 개최되었다. 1979년 대회 개최 이후 21년만에 개최되었고 천안 등 10개 시. 군에서 분산 개최되었지만 짜임새 있는 대회운영으로 광역도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의 운영체계에 있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와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국내 개최로 체육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1998년 제70회 대회 개최 이후 4년만에 다시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83회 전국체육대회는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 건설을 통해 대한민국 세계화의 전진 기지이자 동북아의 새로운 문명의 중심지로 뻗어 나아갈 수 있도록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였다.
제84회 전국체육대회는 예향의 고장 전라북도에서 1991년 이후 12년 만에 개최되는 대회로 문화예술체전을 표방,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가 함께 어우러진 대회였으며 개회식을 전주월드컵 경기장에서 야간에 개최함으로써 향후 각 지방 월드컵경기장의 야간 개회식을 예고하였으며 또한 전국체육대회 사상 처음으로 생활체육 동호인이 참가하는 산악, 바둑이 전시종목으로 채택되어 참여하는 체전의 시발점을 마련하였다.
제85회 전국체육대회는 한반도 중원에 위치한 충절의 고장 충청북도에서 1990년 제71회 대회 개최 이후 14년 만에 개최된 대회로 전 종목을 충청북도 일원에서 개최하였으며, 복싱 여자부 등 전시종목이 6개 종목으로 확대되어 개최됨으로써 생활체육종목이 정착되는 체전이 되었다.
8. 중소 도시의 동참
제86회 전국체육대회는 울산광역시가 처음으로 개최한 체전이다. 이 대회의 특징은 태화강에서 카누와 조정, 일산해수욕장에서 요트, 진하해수욕장에서 트라이애슬론 등 41개 종목의 경기가 자연과 함께 하는 체전으로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공해 도시로 인식되어 온 울산이 부단한 환경 복원 노력을 펼친 결과 친환경 생태도시로 거듭났음을 전국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제87회 전국체육대회는 경상북도가 체전사상 최초로 인구 15만명 규모의 중소도시인 김천시를 주 개최지로 정하고 15개 시. 군에서 분산 개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의 뜨거운 성원과 참여열기 덕분에 성공리에 치러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특히 부족한 숙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한주택공사에서 신축 중이던 덕곡지구 임대아파트를 선수촌아파트로 제공하여 참가 선수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제88회 전국체육대회는 14년 만에 광주에서 개최된 대회로 역대 최대 규모인 3만 여명의 전국 시. 도 및 해외동포선수단이 광주를 방문함에 따라 첨단산업도시이지 문화수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미지와 민주. 인권. 평화도시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9. 사상 최대의 체육대회
제89회 전국체육대회는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도시인 여수시를 주 개최지로 함으로써 세계박람회를 중간 점검하는 계기가 된 대회로 녹색의 땅 전남이 친환경 이미지를 스포츠 행사에 처음으로 접목시켜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도해 나가는 정책의지를 보여주는 등 전남의 쾌적한 자연환경의 이미지를 대회에 널리 알리는 대회가 되었다.
제90회 전국체육대회는 대전광역시에서 시출범 60년, 광역시승격 20주년이자 1994년 제75회 대회이후 15년만에 개최된 대회로 대전국제우주대회(JAC) 개최에 이어 기존시설 최대 활용과 효율적인 대회운영으로 경제체전, 우주. 과학. 문화가 함께하는 수준 높은 창조체전, 해외동포와 온 국민이 하나되는 한민족 화합체전, 완벽한 체전준비와 모범적인 대회운영으로 성공적인 대회가 되었다.
제91회 전국체육대회는 경상남도가 "하나되어 다시뛰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82년과 97년에 이어 13년 만에 개최한 대회였다. 진주시를 중심으로 18개 시. 군에서 펼쳐진 이 대회는 람사르총회 개최지로서의 친환경, 로봇산업과 항공산업 중심지로서의 첨단기계산업, 찬란한 가야문명과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유산 등 전통문화예술이 어우러진 매력과 역동의고장인 경상남도가 개최하여 쾌적한 환경정비와 완벽한 경기운영, 그리고 2014년 아시안게임과 2022년 월드컵 유치를 계획중인 우리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추구하는 화합체전을 이룬 모범적인 대회가 되었다. 역대 사상 가장 많은 44개 종목으로 치러진 체육대회와 더불어 '보고 즐기는 문화체전'을 표방하고 체전기간 중 진주 남강유등축체 등 25개 축제가 열려 풍성한 볼거리도 선사했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mooka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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