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천부경(天符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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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9월 9일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 깊은 계곡의 석벽에서 계연수(?〜1920) 선생은 신지전각(神誌篆刻)의《천부경》을 발견하였다. 계연수 선생은 《천부경》의 발견을 ‘낭가(郞家)의 경사’라고 하였는데, ‘낭가’란 ‘화랑도’를 말함이며, 바로 국선(國仙)의 도(道)인 ‘국선도’이다.
《천부경》은 상고시대에 환웅께서 설하시고, 신지(神誌) 혁덕이 받아 적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내용은 간략하면서도 정밀하여서 사람이 소천지(小天地)라는 이치를 일목요연하고도 명백하게 밝혀놓고 있다.
신지(神誌)의 녹도문자로 되어 있는《천부경》을 맨처음 태백산에서 발견한 이는 신라 말기의 대학자이며 도인이었던 고운(孤雲) 최치원( 857〜? ) 선생이었다.
녹도문자로 되어 있는 《천부경》을 바르게 읽기가 매우 어렵고 힘들었지만, 대(大) 학자요 도인이었던 최치원 선생은 그것을 해석하여 한문으로 옮겨 적은 뒤, 묘향산에 각(刻)을 해두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발견한 분이 계연수 선생이었다.
계연수(?〜1920) 선생은 일제시대에 정신적 사상적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았으나, 끝내 1920년 일본인 첩자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그리고 최치원( 857〜? ) 선생은 12살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19세에 당나라 과거에 급제한 신라의 천재로, 당나라에서 문명(文名)을 드날렸다.
《고운 최치원 사적》에는 “태백산의 단군전비(檀君篆碑)에 적혀있는 난해한 ‘단전요의(檀典要義)’를 어렵게 해석했다.”고 나오는데, 태백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한 학설은 태백산이 지금의 ‘백두산’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다른 학설은 현재 중국의 서북지방에 있는 태백산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1. 현재 중국의 서북지방은 고조선시대 치우천황이 활동했던 동이족의 무대였다.
2. 발해 대조영이 전쟁 중에 불타 없어진 《단기고사檀奇古史》를 복원·편찬하고자, 친동생 대야발을 시켜 13년에 걸쳐 자료조사와 집필 작업을 하였는데, 대야발이 자료조사차 현지답사를 간 돌궐국에서 옛 단군(檀君) 시대에 세운 비문(碑文)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단군전비(檀君篆碑)를 직접 본 것은 당나라에 체류했던 기간일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신라의 천재 최치원 선생은 이후 조국에 몸을 바치고자 28세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산수(山水)를 벗 삼아 구름처럼 바람처럼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신지 녹도문자 천부경 진본
《천부경》은 《삼일신고》《참전계경》과 함께 우리민족 3대 경전인 동시에 국선도의 경전이기도 하다.
계연수 선생은 말하기를 《천부경》《삼일신고》는 ‘낭가(郎家)의 경전’인데, 유교(儒敎)의 《대학》《중용》과 같다고 하였다. ‘낭가(郎家)’란 화랑도를 말함이며, 바로 국선(國仙)의 도(道)인 국선도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이해 못하시는 것 같다.
우리나라 3대 성인인 환인, 환웅, 단군이 왜 국선도의 열조님들인가?
우리민족 3대 경전인《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이 왜 국선도의 경전인가?
우리민족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왜 국선도의 종지(宗指)인가?
그것은 우리나라 상고시대가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였기 때문이다.
제정일치 시대에는 도(道)를 이룬 분이 곧 왕(王)이 되어 백성들을 이끌었기 때문에, 스승과 왕이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리민족과 국선도는 불이(不二)이며,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이렇게 비교를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현재 티벳의 달라이라마는 옛날 우리나라의 상고시대처럼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군왕이다. 그러므로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동일하게 최고 지위를 차지한다. 그리하여 티벳의 역사는 곧 티벳 불교의 역사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에 가듯, 티벳의 젊은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의무적으로 승려생활을 한다. 그리고 의무기간이 지나야 자유선택을 할 수 있다. 승려가 되든, 농부가 되든, 사업가가 되든.
이처럼 우리나라의 상고시대에는 국교가 신도(神道)였으므로, 백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선도(仙道)를 닦았었다.
신도(神道)나 신교(神敎)나 선교(仙敎), 선도(仙道)는 모두 같은 말이다. 현묘지도, 밝도, 풍류도, 화랑도, 선비도, 국선도와 함께 모두 다 우리나라의 ‘고유사상’을 일컫는 말들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땅덩어리는 하나지만 그것이 시대에 따라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대한민국 등으로 이름을 달리 한 것과도 같다.
그렇다면 국선도는 종교인가? 아니다.
요가는 인도 힌두교에서 나왔지만, 요가가 종교는 아니다.
소림권은 중국 불문에서 나왔지만, 소림권이 종교는 아니다.
태극권도 중국 도교에서 나왔지만, 태극권이 종교는 아니다.
그것처럼 국선도는 한국 고조선(古朝鮮)의 고신도(古神道)에서 나왔지만, 종교는 아닌 것이다.
아무튼 지금 미국에서는, 옛날 무도(武道)가 하나로 있을 적, 그때로 다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무도가 이리저리 갈라져서 너무도 광범위하게 세분화되니까, 지금은 오히려 각종 무술이 하나로 통합되어 가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경 또한 마찬가지다. 태초에는 나라의 경계가 없었으니, 지금 또한 국경이라는 의미가 없어지고, 국가 간의 통로가 사통팔달(四通八達)하게 열려가고 있다.
《천부경》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이미 모두 들어 있는데,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필자는 2000년 가을부터 2001년 봄까지 5개월 동안, 계룡산 갑사 대자암에서 5개월간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천부경》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一. 하나. 무엇이 하나인가? 하!(감탄, 감동) 나구나!
一始. 하!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었구나, 나로부터 비롯되었구나!
하나님. 하! 내(나)가 바로 님이로구나! 하나님은 바로 나구나!
나는 여성인데, 그러면 왜 나는 여지껏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렀나?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는 ‘절대자’인데, 나는 그런 능력이 없잖은가?
자기가 하나님임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가 되도록 끊임없이 자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나날이 자기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바로 ‘귀본(歸本)’이고 ‘복본(複本)’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네 안에 천국이 있다.’ 부처님의 ‘너 자신이 부처다.’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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