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다이어리]미국 버스의 실상 그리고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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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취득까지의 경험담 소개

미국 마이애미 버스 안 풍경.
휴식이 길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태권도를 가르치고 또 TNT(태권도+타이복싱)를 가르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살기 위해’서는 별별 일들을 다 해야만 하더군요. 이 미국이란 땅에서는 말이죠. ‘AMERICA’ 뭘 그리도 많이 요구하는지요. 휴~. 도장 경영으로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를 배우는 것 보다 ‘ILLEGAL(불법)’ 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준비해야하는 시간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샐 정도였으니까요. 미국 현지의 체류 신분과 영주권까지의 과정 및 중요 사항들에 대해서는 향후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더욱 실제적이고 생동감 있는 정착기를 원한다는 편집부(잘 보여야합니다^^)의 요청으로 인해 중요도 순으로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줄여 말하면 미국에서 꼭 겪어야할 것들입니다. 먹고 살려면 말이죠. 나이 서른 넘어 미국 땅을 밟은 제가 겪은 좌충우돌 생활담이 녹아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삶과 직결되는 ‘자동차’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워낙에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인지라 자녀들이 학교에 가는 것,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는 것조차 자동차를 이용해야 하니까요. 한국처럼 도보로 무언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생활권이 아니란 것이죠. 나이 70, 80세가 넘는 고령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조차 핸들을 잡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쯤에서 미국 정착 초기 차와 관련되어 잊을 수 없는 경험담을 소개하려 합니다. 미국에 와서 자신의 명의로 된 지금의 제 자동차를 운전하기까지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쳤죠.
2010년 11월이었습니다. 당연히 차가 없던 저는 이동 수단이 필요 했습니다. 어느 국가에서건 운전면허가 있어야 차를 사거나 운전할 수 있죠. 때문에 거의 한 달이 소요되는 운전면허 취득 기간 동안 혼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경로와 교통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BUS(버스)’ 였습니다. 뭘 버스 좀 타는 것 가지고 엄살이예요 라고 묻는 분들이 있겠지만, 하지만 미국에서 버스란 하층민들이 애용하는 교통편이라고만 운을 떼고 싶습니다.
때문에 지금도 ‘120’이라는 숫자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 7시부터 교통 체증이 시작되는 관계로 아침 9시까지 제가 사는 Davie(데이비)라는 곳에서 South Beach(사우스비치)라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 120번을 타야했죠. 정착 초기 약 2개월 간 강 관장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저는 강 관장의 차를 타고 매일 'Aventura Mall' 이라는 대형 백화점 앞 정류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강 관장은 매일 아침 Miami Garden이라는 정 반대의 장소에서 개인 레슨을 하는 까닭에 애당초 저와는 길이 달랐죠.
요금은 정확히 1달러 였습니다. 도착지는 사우스비치.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이었죠. 버스를 타기 전 정류소에서부터의 상황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잠시만 현재시제로 가겠습니다. 버스 정류장에는 엉덩이가 저의 두 배 정도 되어 보이는 검은 아가씨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네요. 한 쪽에는 레게머리를 한 어린 학생들이 껌을 쫙쫙 씹으면서 서 있구요. 그 옆에는 3대 째 내려 입었을 법한 낡은 청바지를 엉덩이에 걸쳐 입은 흑인 학생들이 그룹을 이뤄 몸을 흔듭니다. "What's up man!"을 연발하네요. 그들주변에는 남미의 모 국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에스파뇰(espanol) 언어로 통화를 하네요. 이들 모두가 바로 저와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함께하는 동승객입니다. 앞이 깜깜하네요. 오해 마세요, 단지 설명이니까요. 전 인종차별주의자 아니랍니다.
저기 멀리서 120번이 오는 군요. 버스에 오르기 전에 수십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이 버스가 맞나? 다른데로 가는거 아니야?” 하구요. 문이 열리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거대한 엉덩이의 흑인 여자 운전수가 저를 맞이합니다. 그 운전수는 흡사 우리 안에 갇힌 동물 같아 보이는 군요. 그녀가 말합니다. “Hi.” 얼굴도 쳐다보기 귀찮다는 듯이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에 열중입니다. 남자친구는 아닌가 봅니다. 꼴을 보니요. 미국에서 가장 불친절한 매너를 가진 직업군이 바로 이 버스 운전수라는 말이 실감이 나네요.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자리가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동양인은 저 뿐이네요. 아직도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저를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듯 하네요. 세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 탑승하는데 만 1분여가 소요되는 검은 피부의 거대 뚱보 아줌마가 차에 오릅니다. 왜 이런 사람들은 짐도 많은지요. 양손에 내용물이 확인되지 않은 봉다리를 한 네 개 정도 들고 서 있네요. 승객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군요. 때마침 제 옆자리가 비었습니다. "오 마이 갓." 다른 좌석에 앉기를 간절히 기원하지만, 꾸역꾸역 제 곁으로 걸음을 옮기는 군요. 뒤뚱거리며 오는 폼이 마치 스모 선수 같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옵니다. 빨리 앉아야 숨을 쉴 수 있을테니까요. 왜소한 동양인 꼬마의 옆 자리가 엄청 탐이 나나 봅니다. 그렇게 동승은 시작되었네요. 이들의 특성 하나, 앉아마자 엄청난 양의 수다를 떨기 시작합니다. 옆, 앞, 뒤 사람들과 닥치는 데로 말을 거는 군요, 이것도 안되면 전화기를 듭니다. 저는 투명인간 취급이죠. 동양인이라는 존재는 이들에게조차도 무시 당하는 밑바닥 부류이기 때문입니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또 다른 손님이 탑승을 시작합니다. 떴습니다. 노숙자들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룹이 형성되어 있다는 그 분들. 딱 버스 탈 돈만 가진 그들이기에 타자마자 여러 사람에게 동정표를 던지네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Give me a quarter(한화 약 250원 상당).”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아, 빨리 내리고 싶다!”
집에 오는 길은 더욱 멀었습니다. 사우스비치에서 성인부 수업이 끝이 나면 저녁 8시 30분. 누구도 저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범이 없었던 것이죠. 또 그때 당시에는 영어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던 터라, 누구도 저를 ‘마스터’로써 대접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혼자 움직여만했죠. 예전과는 달리 실력 없으면 여기서 사범 취급 못 받습니다. 어쨌건 제가 사는 데이비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두번 씩이나 갈아타야 했습니다. 120번과 1번 이었죠. 그렇다고 집 앞에까지 가느냐?, 천만에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집 근처의 도로인 ‘Stirling road’까지 와야했죠. 집에서는 약 10분 거리였습니다. 그래야 강 관장이 저를 마중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죠. 총 소요시간이 2시간 30분 이었습니다. 사우스비치에서 에벤츄라까지 1시간 10분 에벤츄라에서 스털링 로드까지는 40분 정도였죠. 중간에 버스를 행여 놓치기라도 하면 시간은 끝도 없이 지연되고 했습니다. 정말 “Terrible situation(최악의 상황)”이죠. 서글픈 생각도 들었지만, 강 관장에게 처음 도착해서 당당히 "고생도 해봐야죠. 버스 한 번 타보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했던 저였습니다. 할 말 없는 것이죠(웃음). 여기까지가 정대길의 미국판 뚜벅이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보약(TKD 타임즈 정우진 회장의 지론)”이라고요, 지금의 이 자신감과 미국 생활의 적응력은 다 그 때의 고난에서 키워진 것 같습니다. 하하. 너무 길었네요. 다음 편에는 좀 더 재밌는 경험담을 중심으로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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