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굴욕적 참패 겪은 종주국, 세계 흐름에 적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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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WTF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태권도 종주국 대한민국 경주에서 지난 5월 1일부터 6일까지 엿새간 열렸다. 149개국에서 참가한 이번 대회는 사상 최대의 태권도 축제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개막식과 더불어 시작된 대회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는 기대감과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한국 선수들의 좋은 결과를 내심 기대하게 했다. 그것은 지난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호되게 언론의 질타를 받고 반성한 뒤라, 만반에 준비를 했을 거라는 기대감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첫날부터 들려오는 ‘노 골드’ 소식이 4일째까지 이어지고, 우승 기대주들이 줄줄이 예선탈락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말 큰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 어느새 경주로 내달려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경기현장을 떠난 지 10여 년이 되어가건만, 여전히 내 가슴 속에는 태권도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경주로 향하는 내내 한국 태권도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 태권도 대표팀은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최악의 성적을 냈다. 당시만 해도 “그럴 수도 있지”, “매번 잘 할 수 있나” 라는 위로의 말들이 그런대로 용인될 수 있다 싶었다. 하지만, 연일 들려오는 세계선수권 참패 소식은 내가 당사자인 양 안절부절, 절치부심하게 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1973년 제1회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 이후 20회를 맞이하면서 약 38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적지 않은 세월 속에 한국 태권도는 전 세계인의 맹주로서 매 대회 때마다 우승 신기록을 경신하였고, 화려한 발기술을 선보였으며, 다양한 전술을 창출하였다.
이런 우수한 경기력 덕분에 세계는 한국 태권도를 배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유능한 지도자를 초청하여 태권도를 익히기 위한 노력이 얼마 전까지 이어져 왔다.
이런 태권도가 최근, 급속하게 약화하는 경기력 저하 현상은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한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총 16체급 가운데 금메달 수가 남녀 합쳐 3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던 과거를 기억하는 대다수 태권도인들 에게는 참으로 낯선 광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임신자 교수
태권도의 몇몇 중진 인사는 한국 태권도가 그동안 변화한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초창기 태권도는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한과 권력을 가지고 태권도계를 이끌었던 김운용 총재에 의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지금의 태권도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경기장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심판판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한국 태권도는 외국으로부터 받는 견제와 불신으로 신뢰감이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 이후, 뒤를 이은 조정원 총재는 불공정한 판정 탓에 올림픽 퇴출이라는 위기감에 직면하게 되면서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차등점수제와 전자호구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태권도는 차등점수제를 통한 전자호구의 도입을 천명하면서 태권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변화된 환경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종전에는 모든 득점이 1점으로 규정된 반면, 차등점수제는 몸통과 얼굴을 차등 구분하여 몸통부위는 1점, 얼굴부위는 3점, 회전에 의한 몸통은 2점 등으로 차별화된 규정이라고 할 수 있고, 전자호구는 사람의 채점에서 기계의 직접채점으로 변화된 판정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최근 몇 년 사이에 변화된 태권도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기술과 전술체계의 변화를 예고했다. 이에 따른 적극적인 대응전략들이 필요함은 당연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WTF 경기규칙 흐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한 대표적인 나라가 있었다. 이번 세계대회 때 괄목할만한 실력을 보여주었던 이란과 터키다. 이란은 이미 전자호구가 세계적 흐름의 대세임을 인지하고, 전국에 총판을 구축하고 모든 지역 대회에 반드시 공인된 전자호구를 사용하도록 독려했다. 터키도 2008년 이전부터 유럽에서 이미 사용되어온 전자호구를 통해서 철저한 분석과 전략을 수립하여 선수를 양성하고 있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전략 역시 이미 마련했음을 코치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종주국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한국 태권도는 특정 전자호구의 단점만을 지적하고 비판 일색의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자체 경기규정과 전자호구를 개발하는 등 지나친 국수주의적 한국 우월주의에 빠져 변화를 거부했다.
그런 결과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열린 대회는 WTF 규정과 다른 국내 규정을 만들어 시행했다. 또한 자동이니, 반자동이니 하는 불필요한 시시비비로 많은 시간적 에너지 소모를 가져왔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 대회 현장은 극도의 혼란이 가중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불안한 환경은 “매 대회 때 마다 바뀌는 규정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어느 지도자의 푸념처럼 한국 태권도는 혼란함과 불안감에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선수들의 경기력은 단시일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백 번, 수천만 번의 반복된 오랜 훈련을 거쳐 성취된다. 이런 기술력을 단 한 달여 만에 적응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우리의 실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오만과 자만’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는 태권도의 주인은 한국이고 그래서 모든 것을 한국이 주도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세계대회를 통해서 우리는 태권도가 더는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 태권도의 경기력은 이미 우리를 앞서 가고 있었다. 지금 한국의 경기력은 항간에 떠도는 하향 평준화된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하락하였음을 이번 세계대회를 통해서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제 한국 태권도는 변화하는 세계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적응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만과 자만이 계속된다면,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은 사라진 채 점차 낙후되거나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만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글. 임신자 교수 ㅣ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ㅣimsj01@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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