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무도-무예-무술의 정의
무(武)는 목적에 따라 도(道)도 될 수 있고, 예(藝)도 될 수 있고, 술(術)도 될 수 있다.
무(武)가 체(體)라면 도(道)나 예(藝), 술(術)은 용(用)에 속한다.
자기 자신을 닦는 수행의 방편이나 정의(正義)를 수호하는 목적일 때는 무도(武道)요, 남에게 보이고 공연하는 것이 목적일 때는 무예(武藝)요, 짐승이나 적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고 상대를 해하는 것이 목적일 때는 무술(武術)이 된다.
이것은 또 무인(武人) 당사자의 수준에 따라 무도(武道)나 무예(武藝), 무술(武術)로 정해지기도 한다. 자기 명찰 자기가 달고, 자기 간판 자기가 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성냥 가게를 형광등 가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형광등 가게를 성냥 가게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형광등 가게는 형광등 가게, 성냥 가게는 성냥 가게라고 간판을 붙이는 것이 누가 봐도 합당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도(道)는 바로 자연스러운 것이니...
그리고 무카스에서 많이 거론되는 쟁점 중의 하나가 '무도다', ‘놀이다’로 옥신각신 논쟁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주로 내가 하는 것은 무도요, 남이 하는 것은 놀이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무도와 놀이는 둘이 아니다. 단지 쓰임(用)에 따라 무도도 될 수 있고, 놀이도 될 수 있는 것뿐이다. 전쟁시에는 무도와 무술로 쓰이는 것이요, 평화시에는 양생법이나 놀이 공연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다.
평화시에 자기 건강을 위하여 또는 시연을 위하여 평소 부드럽게 학이 춤추듯 하던 몸짓에 곧바로 스피드와 탄력만 주면 바로 필살무기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선도 도종사 도운 허경무 선사는 제자들에게 곧잘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도는 남을 공격하고 제압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를 통한 심신수련의 한 방편으로 정기신(精氣神)을 통일하여 하늘의 뜻을 받들고 이기적인 야망, 헛된 망상, 욕망의 어두운 그림자를 공격하는 것이고, 자신을 살펴 모나고 굴곡진 모습을 다듬어 올바른 몸과 마음을 지켜가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무도든 무예든 무술이든 인체의 한 부분만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 순간순간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 손을 쓰기도 하고, 발을 쓰기도 하고, 치기도, 받기도, 찌르기도, 쓰러뜨리기도 하고, 돌멩이가 옆에 있으면 던지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일반 서민들은 검이나 창, 활 등 무기를 마련하려면 아무래도 돈이 드니까, 주로 맨몸으로 하는 것이 발전되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돈에 구애를 받지 않는 궁중이나 양반들은 각종 무기도 마련하여 썼을 것이다.
그리고 무인(武人)마다 각자 잘하는 특기가 다를 것이다. 누구는 손 쓰는 것이 특기고, 누구는 발 쓰는 것이 특기고, 누구는 붙잡고 쓰러뜨리는 것이 특기고, 누구는 받는 것이 특기일 것이다.
아무튼 치고, 받고, 밀고, 당기고, 차고, 때리고, 던지고, 날리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대적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하다못해 부녀자들의 강강수월래도 전쟁터에서 적군을 물리치는 수단으로 한 몫을 당당히 한 바 있다.
겨루기는 바로 게임이며 스포츠며 싸움이다. 다만 판이 작냐, 크냐만 다를 뿐이다. 작은 판은 동네 뒷골목에서 둘이 겨루는 것이요, 큰 판은 세계올림픽이다. 세계올림픽은 바로 전쟁의 대용품으로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씨름은 붙잡고 쓰러뜨리는 것을 규칙으로 삼은 경기다. 택견은 발 쓰는 것이 주특기인 경기다. 그렇다면 국선도의 특기는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쓰지만 주특기는 바로 ‘기(氣)’다.
1970년 청산선사는 일본 오사카 박람회에 초청을 받아 NHK 방송국 생방송에서 여러 가지 시범을 보인바 있다.
사명당께서 철화방 속에서 견디셨던 것을 재연하여 불기둥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시범도 보이고, 볼로 대못 박기, 입으로 못 빼기, 손으로 바위 깨기, 발로 바위 깨기, 박치기로 바위 깨기 등등으로, 일본에서의 시범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방송됐던 필름을 되돌려 분석해 본 후 깜짝 놀랐다. 15cm의 자연석이 청산선사의 손이 닿기 이전에 먼저 깨지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놀라 물었다.
“도대체 어찌된 것입니까?”
“나는 손으로 바위를 깬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뭘로 깼습니까?”
“기(氣)로 깬 것입니다.”
“!!”
불기둥 속에 들어앉아 타지 않은 것 또한 마찬가지다. 기(氣)로서 불과 신체를 차단시켰던 것이다. 사명당 또한 철화방 속에서 나왔을 때 고드름이 수염에 매달려 있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기(氣)로서 열기를 냉각시킨 것이었다. 우리의 치우천왕께서도 황제 헌원과 싸우실 때 기무(氣武)에 능하셨다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청산선사는 1974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 근처에 있는 후버댐 속에 잠수하여 오랜시간 앉아있는 시범을 미군들에게 보인 바도 있다. 이때 ‘란 모덜’이라는 미국 하원의원이 그 자리에서 즉시 제자가 되었다.

국선도는 우리나라의 오랜 상고시대부터 소도무사, 조의선인, 화랑도, 민족 지킴이로 이어지면서 나라의 국난이 있을 때마다 조국을 지키고 적을 물리쳐 왔다.
그리고 화랑도는 찢어진 국토를 통일시키는 역사적 대거를 이룩하였다. 《무예도보통지》나 우리 고유의 무예론에 등장하는 중요한 단서마다 빠지지 않고 화랑도와 풍월도가 등장하는것은 바로 화랑도 속에 권법, 족술, 검술, 병기술 등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시대에는 또 어떤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극도로 치열해진 경쟁 구도 속에서 심신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심신건강을 위하여 국선도는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렇듯 고래(古來)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조국에 몸바쳐온 국선도를 전통무예진흥법 관계자들께서는 어찌하여 현대의 창시라고 분류하였는지 모르겠다.
예로부터 도인(道人)들은 스스로를 숨기고 이름을 없애는 것을 덕(德)으로 삼아 왔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것은 수준 낮은 행실로서, 그런 사람은 도인(道人) 축에도 낄 수가 없었다.
이러한 국선도의 전통으로 인하여 후학들이 열조님들의 호적등본을 기관에 제출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그리하였는가?
우리와 동시대인인 청산선사도 산에서 처음 내려오셨을 때,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간첩으로 오인 받아 심한 고초를 겪으신 일이 있다. 그러니 그 윗대 열조님들이야 오죽하랴. 그분들은 아예 주민등록증 없이 사시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열조님들의 호적만큼이나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바로 스승과 제자 간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한얼의 ‘얼(□안의 土)’자와 국선도의 ‘선(亻天) ’자다.
‘얼(□안의 土)’자와 ‘선(亻天) ’자는 자전에도 없는 글자가 국선도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그 글자들이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과 조선시대《격암유록》에서 발견되었다.
이 두 글자와 마찬가지로 또 예로부터 대대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국선도 도화(道話)들과 수련법들도 있다.
필자는 지난 호에서 한사상 연구소장과 건국대학교 학장을 지내신 김 건(1900~1995) 선생께서 1970년대 초에 국선도를 조사하러 나오셨다가 ‘구전도화(口傳道話)’를 들으시고는 비로소 국선도가 우리민족 고유의 정통 선도(正統仙道)가 맞다고 인정을 해주셨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국선도를 수련하시다가 96세로 돌아가실 때도 건강하신 상태에서 능동적으로 육체를 벗으셨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필자는 그분이 95세에 하신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매우 건장하신 상태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도 하루에 원고를 100매씩 쓰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원고만 마무리하면 그만 가려고 한다. 손자며느리가 끼니때마다 내 밥을 차려주느라고 나가지도 못한다. 살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손자며느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
이 시대 건강의 지표로서 국선도가 어떠한가? 또 세계 문화 상품으로서 어떠한가? 가히 안성맞춤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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