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천기도인(天氣道人)
지난 글에서 필자는 한얼의 ‘얼(□안의 土)’자와 국선도의 ‘선(亻天) ’자가 자전에는 없는 글자이며, 국선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글자이며, 그 글자들이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과 조선시대 <격암유록>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두 글자와 마찬가지로 국선도에는 또 예로부터 스승과 제자 간에 대대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구전도화(口傳道話)들이 있다.
한사상 연구소장과 건국대학교 학장을 지낸 김 건(1900~1995) 선생께서는 1970년대 초에 국선도를 조사하러 나왔다가 ‘구전도화(口傳道話)’를 들으시고는 비로소 국선도가 우리민족 고유의 정통 선도(正統仙道)가 맞다고 인정을 해주었다. 그리고 96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국선도를 수련하셨다. 96세로 돌아가실 때도 ‘밥 차려주는 손자며느리에게 미안해서 그만 가야겠다’며, 건강하신 상태에서 능동적으로 육체를 벗으셨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불후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신화(도화)는 보편적 진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직관적 형식이며,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불가피한 형식이며, 결코 경험주의적 방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국선도 스승님들로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천기도인(天氣道人)은 상고시대 한얼(환얼=한인=환인)나라 백성으로서 백두산 아래 마을의 우두머리셨으며, 정월 대보름에는 이웃 마을과 돌 던지고 싸우는 ‘석전놀이’를 하였다.

석전놀이는 평소에는 신체단련과 풍년을 위한 희(戱)로서 기능하다가, 나라에 위급이 닥쳐오면 곧바로 국토를 지키는 ‘싸움’의 기능을 하였다.
석전놀이에서 천하장사 천기도인의 마을이 해마다 이겨왔는데, 한 해는 그만 패하게 되었다. 늘 이기기만 하던 천하장사 천기도인은 패배의 치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막강한 힘을 얻고자 집을 나와 백두산으로 향했다.
밤은 깊어 맹수들이 울부짖어도 두려움도 모르는 듯 자꾸만 오를 뿐이었다. 다시 먼동이 트고 날이 밝아오니 대나무 지팡이를 옆에 놓고 반듯한 바위에 앉아 산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상당히 올라와 있음을 알고 긴 한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천기도인의 나이 반백이라, 머리에서는 반백발이 아침 새바람에 흔들리고, 세상의 삶에 대한 의욕도 다소 가시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그러다 천천히 일어나 졸졸 흐르는 개울물로 가서 몸을 씻고 고요히 다시 바위에 와서 앉아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숨소리도 없는 듯 얼마를 앉아 있다.
그리고는 고요히 일어나 천천히, 그리고 엄숙하게 절을 수삼차 하고는 다시 고요히 앉아 있다가 때로는 몸이 저려옴인지 여러 가지로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용히 몸을 돌려보는 듯 하다가는 다시 조용히 앉아 있다.
그 뒤부터 자고 먹는 것도 다 잊은 듯 밤이 되고 날이 밝아도 움직이지 않으니, 굶어죽을 것만 같다. 그러다 한 날은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으니, 떨어진 채 한참을 있다가 천천히 기어서 개울로 가 개울물을 마시고는, 다시 손을 뻗치어 잡히는 대로 풀을 뜯어 입에 넣어 씹고 나서 다시 바위로 천천히 와서 몸을 얼마간 돌려보고는 절을 하고 다시 눈을 지그시 감고 숨소리도 내지 않으며 고요히 앉아 있으니, 사람도 지나가지 않고 또는 노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이 세월은 물결처럼 흘러가고 노인은 반복되는 일만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노인이 그 고생을 하며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하여 봄이 가고 찌는 듯 한 여름이 지나고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몸에 스며들고 산과일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가을도 지나고 살점을 에이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이 와도, 노인은 추위도 피할 생각 없이 앉아 있으니, 어느 때는 산짐승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며, 어느 때는 눈앞에 커다란 구렁이가 입을 벌리고 몸을 감는 듯도 하고, 맹수가 입을 벌리고 으르렁대며 곧 잡아먹으러 달려들어도 노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더위도 추위도, 슬픔도 기쁨도, 두려움도 죽음도 다 잊은 듯이 마치 돌로 만든 사람, 아니 굳어버린 사람같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 겨울이 가고 다시 봄여름 가을 겨울 사철이 바뀌어도 노인은 개울에 가 물을 마시고 풀을 뜯어서 입에 넣어 씹고, 다시 바위로 와서 천천히 몸을 고루고루 움직여 주고는 다시 절을 하고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니,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았다.
이렇게 숱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노인의 눈에는 물방울이 생겼다가는 사라지고, 또 다시 한참 만에 생겼다가는 사라지니, 이는 기쁨의 눈물인가, 슬픔의 눈물인가?
이 세상 아무도 알 수 없는 무거운 순간의 눈물이다.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깊은 산중에서 홀로 외로이 늙어가는 자신의 한탄일까? 마지막 죽어가는 삶의 애착일까? 그야말로 눈뜨고 볼 수 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옆에 가족이 있었다면, 아니 아무라도 있었다면 노인을 살려내려고 여러 가지로 권유를 했으련만, 그러나 노인 혼자니 누가 구할 것인가?
이렇게 숱한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날 노인의 눈앞에 오색구름이 영롱한 빛을 받으며 눈앞이 훤히 밝아오니 마침내 ‘밝’이 들어온 것이다.

몸속에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단(힘)이 용솟음치고, 삼(마음)은 맑고 고요하고, 갓(영감)은 세상 만물의 이치를 밝게 훤히 알아지니, 한 방울의 뜨거운 고마움의 눈물이 흐르면서 천천히 일어나 ‘밝’에 무수한 절을 하니, 이 기쁨을 어찌 말로서 다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노인은 절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꿇어앉더니
“하늘의 밝이시여. 감사하옵니다. 하오나 저 수많은 사람과 모든 삼라만상이 ‘밝음’을 모두 듬뿍 받아 밝은 세상에서 함께 살게 하옵소서.(홍익인간 이화세계)”
노인은 이같이 빌고나서 다시 하늘과 ‘밝’에 무수히 절을 하니, 산짐승과 풀과 나무도 기뻐하였다. 노인은 얼마간 절을 하다가는 고요히 일어나 천천히 산 아래를 향하여 내려오고 있으니, 백두산의 모두가 작별을 슬퍼하는 듯 다시 고요만이 감돌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흰 구름이 노인의 머리 위로 지나갈 뿐이었다.
때는 늦은 여름이라 더위는 마지막 기승을 부리느라 내려쪼이는데, 노인은 더위도 잊은 지 오래고 땀도 날 것이 없는지 땀도 흘리지 않고 몸은 나는 듯이 가볍다.(육체적인 체득)
마음은 항상 기쁘고 고요할 뿐이다. 노인은 얼마를 내려오다가 개울가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면서 지난 일을 생각할 때 참으로 자기가 어리석었음도 이제야 깨달았다.(정신적인 체득)
그것은 다름 아닌 이웃 동네와의 석전놀이에서 매년 이겼으나 한번 패배를 맛보고는, 그 치욕을 참을 수가 없어 막강한 힘을 얻고자 백두산에 오르게 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모두가 우스운 일임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혼자 웃었다. 그 웃음은 티 없이 맑고 고운 스스로의 웃음이었다.
이다음 이야기는, 이때 천기도인이 백척간두 진일보로 선동(仙童)의 안내를 받아 선경(仙境)에서 더 큰 깨달음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니, 세월은 그동안 100년이 지나 있었고, 2세대가 바뀌어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동안 흉년이 거듭되어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었고, 민심은 사납고, 나라의 정사는 어지러워져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리석어졌으며, 각종 미신들이 판을 치고, 오랑캐 외적은 날마다 침범하여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천기도인은 증손이 되는 소선도사를 천자(天子)로 올려놓아 다시 올바른(正) 정사를 펴게 하고, 자기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다시 산으로 향하였다. 백두산에 돌아오니 모든 산천초목과 짐승들이 천기도인을 반겨주었다.
조선시대 중기에 지은 조여적의 《청학집》에는 한국 선맥(仙脈)의 시조가 한얼(환얼=한인=환인) 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채옹(蔡邕)이라는 학자는 《독단(獨斷)》이라는 저서에서 우리민족의 ‘천손사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 ‘천자’의 호칭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천자(天子)라고 한 것이다. -天子之號稱 始於東夷 父天母地 故曰天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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