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5%를 위해 95%의 ‘태권도’를 죽일 것인가?

전영인 사범
왜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회사인 아디다스가 전자호구 개발을 멈추었을까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회사보다 기술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디다스는 현재까지도 세계 첨단의 스포츠용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최첨단의 전자호구를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태권도 경기에 꼭 필요한 용품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세계적인 스포츠 회사인 것입니다.태권도단체를 이끄는 수장이라는 분들은 정신 차리십시오! 그리고 여러 훌륭하신 태권도 박사님! 경기에 관련된 코치, 감독님들, 무엇하고 계십니까?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많은 돈 들여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문화유산인 태권도를 홍보하고 있으나, 한순간에 태권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어떤 분이 저에게 “제가 산 호구세트는 공인된 회사의 제품이며 미국협회와 4년이나 계약을 했다기에 많은 돈을 들여 샀습니다. 그러나 10개월도 안 되어 무려 4번씩이나 수리를 받아야 했으며 그때마다 몇백 불의 운송비를 내야 했습니다”라고 하소연을 해왔습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일리가 있었습니다. 전자호구를 팔아놓고도 협회 공인 대회에는 호구의 기능성을 믿지 못하니 쓰지 못하게 하고 20불씩 주고 다른 것을 빌려 쓰게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시합을 위해 몇 백 불하는 비행기표 값에 숙박을 위한 호텔비, 또 전자호구 대회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전자양말까지 웬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태권도 대회 출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태권도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세계 태권도 인구도 줄어가고 있겠지요. 앞으로 새로운 공인 전자호구가 나 올 때마다 많은 돈 들여서 교체해야겠지요? 그러다 보면 자연적인 도미노 현상이 생기면서 기존의 회사들은 문을 닫을 것입니다. 그러면 전자호구의 A/S는 어디서 받게 되나요? 지금 이것이 바로 암담한 태권도의 현 주소입니다.
본인이 미국 팀을 이끌고 러시아청소년오픈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태권도 대회 열기가 대단하더군요. 하지만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전자호구 양말을 한 켤레에 75달러에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나라의 공무원 월급은 300$가 채 안 됩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용품들로 하여금 태권도가 얼마나 저변확대 될 수 있을까요. 아시안게임 때 한 빈민 국가에서 참가한 코치들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나라 선수들은 중국에 와서야 전자호구를 처음 접했다고 하더군요. 워낙에 고액이라 구경조차 못했던 것입니다.
축구 월드컵 때 한국 선수들이 흰색 유니폼을 입고 뛰었습니다. 상대팀이 파란 유니폼을 입었으니 한국도 상징인 붉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으나, 입지 않았습니다. 왜 이었을까요? 아직도 저개발 국가에서는 흑백TV를 보고 있으니, 파란색과 빨간색의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니 축구가 세계적인 스포츠가 될 수 있겠지요.
코리아오픈 때 한국을 방문하여 일간지와 TV 스포츠 기자와 담소를 나누던 중 전자호구의 문제점을 역설했습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분명히 문제가 발생하리라고 안타까운 예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려대로 경기 중에 점수가 제대로 산출되는 건 고사하더라도 대만 선수의 전자양말 부정행위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선수의 잘잘못을 떠나 결국은 태권도의 위상 하락과 대만 국민들의 격한 감정이 국익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쳤습니까?
최근 2011년 US OPEN 때 영국의 아론 쿡과 아르제바이잔 선수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아론 쿡은 스티븐 로페스를 KO시키며, 세계적인 이목을 받는 선수로 급부상 했습니다. 그날도 많은 관중이 경기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유럽 대회에서 패했기 때문에 전력을 기울인 설욕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너무도 멋진 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론 쿡의 ‘회전 돌아 앞돌려 차기’는 상대방 몸통을 정확히 가격하여 다운되었습니다. 그랬는데도 2점의 점수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아론 쿡은 이기고 있었지만,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1점 감점이 되었고, 동시에 같이 찬 아론 쿡의 유효타인 것 같았으나 2번이나 상대방에게만 점수가 인정되었습니다. 결국, 아론 쿡은 어이없게 1점 차이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선수는 누구나 승패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그러나 만약 이 경기가 영국 선수인 아론 쿡의 영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서 그것도 결승에서 패했다고 가설해 봅시다. 그리고 전자호구의 문제점 때문에 방송이 중계되고 있는 상황에 문제로 이슈화된 발차기의 점수가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방송되고 있다면 말입니다. 충분히 현실화 될 수 있는 돌발 상황입니다. 게다가 온종일 같은 장면이 재방된다면, 과연 2013년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상상만으로도 악몽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전자호구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 해설자는 “심판들의 공정한 판정이 문제 되어서”라 말한다면 그들은 적어도 4, 5, 6단의 유단자일 텐데 과연 태권도가 어떻게 될까요?
세계 태권도의 5%도 되지 않는 ‘경기 태권도’ 때문에 95%의 ‘무도 태권도’가 같이 희생되어야 할까요?
오늘날 왜 미국의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태권도 도장에 보내는 줄 아십니까? 개인 보호나 방어 차원에서일까요?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태권도의 정신을 배우라는 속 깊은 뜻이 있어서입니다. 예의 바르고, 봉사할 줄 알며,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며, 리더가 되더라도 인내하며 염치가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태권도의 정신을 말입니다.
리더 격인 유단자들이 판정을 속이기 때문에 전자호구가 필요하다면, 무도 태권도는 살 길이 없습니다. 복싱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태권도 명분만 유지하며 치고받는 스포츠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느 부모가 자식을 태권도 도장에 보내려고 할까요.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의 본부로서 전자호구가 여태껏 힘들여 일구어 놓은 태권도를 저해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걱정해 보셨나요? 전자호구가 세계 태권도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태권도가 더 발전 할 수 있을지 후퇴의 기로에 놓일지에 대해 그저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으로 세계연맹과 심각하게 의견을 교환하신 적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기원에서 세계 태권도가 특히, 미국의 태권도 추세가 어떤지 동향 파악을 하시고 계신 분은 계시는지요?
우리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범들은 지난 몇 십 년간을 이역만리 이곳에서 미국인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종주국인 우리나라 모국어인 한국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하루를 열어가며, 태권도의 선교사적인 역할을 하는 일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저희들의 살아가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산업 현장에 현대와 삼성이 있다면 스포츠 현장엔 태권도가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게도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아기에게 뛰라고 강요하듯 태권도의 공용어인 한국말을 영어로 바꾸는 정말 어불성설 한 일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최첨단 트랜스포머 ‘전자호구’가 정말 ‘호구’가 되어 태권도를 죽이고 있습니다.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인 태권도라는 국보급 소나무가 낙락장송이 되기도 전에, 잔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벌레들에게 먹혀 구멍이 숭숭 나며, 종내는 뿌리까지 썩어 갈 때 어느 누가 진심으로 치료해주며 과연 그 나무에서 소출의 열매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지금 저는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퇴출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4체급에서 8체급이 참여하여 더 많은 금메달을 만들 수 있는 종목으로(복싱이나 유도처럼) 만들 수 있는 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진정으로 태권도를 사랑하고 말로만 나서기보단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실 그런 지도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
멕시코 세계 청소년 대회, US OPEN, KOREA OPEN, 미국 내셔널 등의 많은 대회에 전자도구를 사용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낱낱이 지켜본 본인은 그동안의 희비 곡선을 하나하나 설명까지 할 수 있었으나, 너무나 장문의 글이 되다 보니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태권도는 우리 태권도 인이 지켜야 합니다”
추신 : 참으로 두서없이 적은 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생각이 부족한 본인의 이야기가 진정 태권도를 사랑하기에 적을 수 있었음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글. 전영인 / 2000 시드니올림픽 미국팀 수석코치, 현 캘리포니아 태권도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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