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이야기] 무예는 궁술 뿐이다?

헤럴드경제선정 전통무예진흥대상 송창렬 옹
항간에 수박을 두고 “무술이냐?” “놀이냐?” 이런 얘기들이 ‘설왕설래’ 했다.현재 전승 되고 있는 수박은 무술적인 요소와 함께 무용적, 유희적인 부분들도 버리기 아까울 만큼 남아 있다. TV 출연을 할 때 필자의 생각은 이러했다. “웃기자. 내가 망가져야 수박이 산다!” 손으로 벽돌 깨고 이단 옆차기 해 봐야 사람들은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는다. 차라리 쇼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문화적변용이 수박(무술)-수박춤(무용)-3수박치기(유희, 놀이)라면 지금의 보존회에서 홍보하고, 교육하는 것은 그것과 정반대다. 웃기고-춤추고-때려 부수는 순서다. 웃겨야 기억을 하지 않겠는가? 대중은 많이 웃기면, 웃길수록 더 오래 기억한다. 물론, 웃긴다와 재미있다는 다르고 슬쩍 무술 쪽으로 ‘물타기’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 한 권으로 조선에는 무술(무기를 사용치 않는)이 존재하지 않았었나? 하는 의문이 생겨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허인욱의 무인이야기> 18기의 달인 원봉석편에 나오듯 전에 ‘격도’라는게 있었다.
두 팔을 땅에 짚고 몸으로 치는 것인데 황소도 맞으면 넘어간다. 목을 치면 목이 부러지고, 허리를 치면 허리가 부러진다. 근전에는 김정의라는 사람이 제일 잘했다. 조선의 유희도 들려면 많다. 좌담회 주제가 ‘조선의 무예와 경기’인데 논자는 유희 타령을 하고 있다. 우선 무예의 개념부터 짚어봐야 할 것이고, 유희와의 상관성 등을 논해야 할 터인데, 이러 자면 논문 한 편을 써야하지 않겠나. 앞으로의 숙제이며 일부분은 수박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선시대 무관들의 활쏘기
구한말 조선침략의 첨병 역할을 한 정보원 중에 혼마 규스케(本間九介)라는 자가 있었다. 이 작자가 19세기 조선의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내한하여 경성과 중부지방, 황해도와 경기, 충청지역을 정탐했다. 그 내용을 1894년 4월 17일부터 6월 16일 자까지 ‘이륙신보’에 조선잡기(朝鮮雜記)라 하여 연재하고 간행했다. 그는 조선잡기에서 조선의 무예는 궁술만 남아 있고 조선인의 기백이 죽었다고 단언하였는데.(중략)
무관들은 단지 그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손자와 오자의 병법서를 음독도 할 수 없었다. 무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양반이 정부에 돈을 내고 임용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단지 모질게 구는 호랑이와 승냥이 무리에 불과할 뿐이다. 무관이라고 하는 것은 문관에 대한 하나의 명칭에 지나지 않아, 감히 병졸들을 이끌고 나라를 지키지도 못한다.
조선의 무예 중에 현재 존재하는 것은 다만 궁술뿐이다. 칼과 창이 없지는 않지만, 평일 그것을 연습하는 자는 없다. 활은 반궁으로서 화살의 길이는 우리나라의 것과 다르지 않고 표적은 한 칸 사방 정도의 판자에 백보의 거리를 재고 그것을 쏜다. 매년 시험이 있어서 잘 명중시키는 자는 선달의 칭호를 얻게 된다. 또 철포의 표적도 있지만 활과 같이 유행하지는 않는다. 활의 유행은 대개 패배와 승리를 결정하는 하나의 도박이기 때문에 조선 사람의 기호에 맞는 것이다. 또 검무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매우 취미에 맞지 않았다(朝鮮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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