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태권도, 전자호구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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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전자호구가 사용되면 태권도는 끝이다. 필자는 이번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전자호구 문제점이 파악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대회에 참가하면서 전자호구 탓에 큰 피해를 목격했다.번번이 일어나는 전자호구의 문제점을 바라보면서 분통이 터지는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정작 기사화는 단 한 번도 안 됐다. 현장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전자호구의 심각한 문제점을 모든 태권도 인에게 알리고자 한다.
그래서 일선 지도자들에게 “태권도 경기에 전자호구가 왜 필요한가”라고 물으면 “심판의 편파판정이 우려되어 이것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래서 몇 가지 사례를 조목조목 짚어볼까 한다.
첫째, 전자호구가 도입되어 과연 심판의 공정성이 개선되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얼마만큼’ 나아졌는지 물어보고 싶다. 본인의 답은 “NO” “아니오”라고 본다.
오히려 모든 잘못은 심판이 아닌, 전자호구를 도입한 자체에 있다. 마치 심판들의 잘못을 전자호구에 몫인 양 떠넘기려는 책임회피의 명분만 보태주는 인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태권도의 기술이 기계에 맞추다 보니 엉뚱하게 변질하고 있는 실정은 씁쓸하게 만든다.
한 예로, 미국에서는 8세부터 전자호구의 사용이 가능하다. 일반 호구도 버거운 아이들의 몸에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키는 이 장치는 기존 호구보다 무겁다. 또 아무리 차도 점수가 나오지 않아 엉뚱한 점수가 표출되고 있다. 경기력 향상은커녕 저하에 일조하고 있다.
비용은 가볍나? 몇천불을 들여 세트를 사야 한다. 전자 양말(45불)에 심지어 대회 참가비도 따로 내야 하고, 본인의 전자호구는 사용하지도 못한다. 대회 주최 측에서 20불을 내고 대여하는 게 현 미국 태권도의 실정이다. 당연히 참가선수 인원이 저조하다.
둘째, 전자호구가 도입되어 정확한 판정 점수가 나왔는지 되묻고 싶다. 이 장비는 오직 몸통 발차기만을 우직하게 감지할 뿐 뒤로 차기, 회전 차기, 얼굴 차기, 주먹 지르기, 감점 경고 등 80%를 차지는 심판의 몫이다. 그럼 나머지 20%가 전자호구의 몫인데 그것마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지금껏 지켜본 결과로는 50%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본다. 겨우 10%도 못 미치는 감지능력으로 그동안 발전시켜온 우수한 태권도의 기량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상한 발차기를 양산시키고, 심지어 운에 의해 챔피언이 결정되니, 참으로 기이한 물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태권도를 발 펜싱이라고 웃겠다. 태권도와 펜싱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펜싱은 순간적인 동작이 워낙 빨라서 포인트의 획득 여부를 육안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그래서 전자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무선 수신 장치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직 유선을 사용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디오 판독제까지 도입해 편파판정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보완하고 새로운 장치를 도입해도 100% 신뢰할 수 있는 판정 시비는 여전히 속출되고 있다.
그러나 태권도는 다르다. 16세 검은띠 정도면, 득점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만 16세 이상이 되면, 심판교육을 통과하는 사람은 심판을 볼 수 있는 자격증이 수여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사람의 눈으로 식별하지 못해 전자호구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판정의 공정성을 위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심판기술 교육과 양심을 속이지 않는 자질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전자호구를 도입해도 경기의 80%는 심판 몫이다.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고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해결책은 또다시 불공정한 판정을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 태권도의 현주소이다.
모든 심판이 편파판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심판은 공정한 심판을 좌우명으로 삼고 그 직책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매 경기에 임해서는 예리한 판단과 열정을 쏟아 붙고 있다. 하지만, 학연, 지연, 선심에 이끌려 부당한 편파판정을 내리는 심판들이 간혹 있다. 소수에 의해 다수가 몰매 맞는 풍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문제 삼아 부당한 징계가 가해졌다는 소식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가판대의 스타 가십거리가 아닌 이상 대회만 끝나면 그만이라는 잘못되는 인식이 마침내 태권도의 불신판정이라는 암울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모든 태권도 지도자는 이점을 관철해야 한다. 뜻밖에 간단한 방법으로 미리 방지할 수 있다. 단순히 선수들의 승패만 가리기보다 경기 후에 심판들에 대한 평가와 점수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경기 내용을 근거로 공정한 판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말이다.
일전에 전자호구의 모 사장과 대화 중 이것의 불필요성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에 모 사장은 “연구개발이 진척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럼 태권도가 이 사람들의 돈벌이로 이용되고, 실험도구로 쓰여야 하나 싶다. 만약 그 회사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태권도에 치명적인 문제를 계속 입힌다면, 과연 누가 “내 탓이다”라고 말하겠는가.

전영인 사범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결국 피해는 태권도에 가해진다. 왜? 복싱, 야구, 축구 등 다른 스포츠 경기도 전자 센서를 사용해 판정할 수 있는데, 인간의 판정을 고수할까.심판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이기 때문에 오심으로 부당한 판정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경기 일부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이해가 어우러지기 때문에 매 순간 흥분과 좌절을 같이 절감하고 고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용이 많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 전영인 / 2000 시드니올림픽 미국팀 수석코치, 현 캘리포니아 태권도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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