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다이어리] 자존심 버리고 바닥부터, 걸레 장전!
청소로 미국 사범들의 마음을 연 계기 만들어
한국에서 또 무카스에서 정대길은 잠시 잊어야 했습니다. 한국적 정서와 각박한 사회 문화에 찌들어 있던 지친 몸을 하루 빨리 미국 시계에 맞추어야 했으니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미국 현지 사범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상구 관장의 러브콜을 받고 온 미국 마이애미 행이었지만, 살아남는 문제는 철저히 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제가 빠르게 적응하고 미국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군대 이등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앞도 뒤도 보지 않았습니다. 첫 날 개망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다음날 아침, 강 관장을 따라 나섰습니다. 시차로 인한 어지러움은 이곳 미국 생활에서는 가려움 정도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말이죠. 강 관장이 준 ‘SANGS MARTIAL ARTS TNT’가 선명하게 박힌 도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강 관장이 주문을 하나 하더군요. “조금 있으면 개인레슨 수련생이 오니, 잘 지켜봐.” 드디어 문이 열렸고, 한 눈에 보기에도 부유하게 생긴 한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TNT 유니폼을 입고 들어왔습니다. 40여 분 간의 'one by one' 훈련이 끝이 났고, “이래서 돈을 많이 내고 개인레슨을 하는구나”라는 확인 과정만을 거친 채 도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살기 위해 제 주변의 현지 미국인 사범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워낙에 사람 만나는 것이 일이었던 지라, 피부색만 달랐지 별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거 하나는 있더군요. “아, 나이 서른이 넘어서 또 다시 걸레를 들어야 하는 구나.” 다소 건방져 보일지 모르지만, 저의 이런 걱정에는 이유가 있답니다. 잠시만 과거로 돌아가겠습니다.
쓩! 대학교 2년간 한 성격 하시는 92, 93, 94 학번 선배들(지금은 모두 교수 혹은 미국에서 큰 성공을 이뤘음)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빨래 청소 다림질 했고, 이제 조금 편해질까 하고 간 군대에서는 전역 6개월 전까지 중대의 막내 생활을 하고, 복학해서는 지도교수 모시느라 정신없었고, 회사에 취직해서는 생전 써보지도 않던 글 쓰느라 수년 간 매일 밤을 꼬박 새우고, 이 정도면 왜 그런지 아시겠죠. 자신하건데요. 남들 다하는 평균치 정도 이상의 고생은 해본 것 같습니다.
잠깐 주제를 벗어났죠?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 잡았습니다. “그래 걸레질부터 다시 하자.” 쟈니라는 흑인 동생 친구가 걸레를 들면 저도 걸레를 들었죠. 그들이 창고에서 물건이라도 꺼낼라치면, 얼른 뒤따라가 짐을 가로채는 완전 동, 서에 번쩍이면서 청소맨으로 변신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마스터라고 목에 힘주다가 왕따 당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많이 봐왔던 터라, ‘Humble’ 'Modest'를 항시 염두에 두었습니다. 강 관장도 매일 하는 말이 “더 열심히 하나라도 더 하려는 노력을 보여줘라”였기에 죽을힘을 다해 청소했습니다. 간혹 저에게 뭐라도 부탁하려고 하면 먼저 눈치껏 일을 처리했죠. 그렇게 그들과의 밑바닥 온정을 나누었습니다.
과정은 이랬습니다. 거울을 빛이 나게 닦고 나면 화장실로 가서 휴지통을 수거하고, 밀대를 가져와 바닥을 청소하는 순서였죠. 막 20살 19살이 된 보조 사범들과 청소를 하고 있으면, 저만치에서 각 도장 메인 사범으로 있는 그들이 지시를 하는 모양새인 것이죠. 저 역시도 아주 간단하게 그들의 지시에 따라 청소를 하고, 간혹 칭찬을 듣기도 했답니다. 바로 그때부터 그들도 저를 달리 보기 시작한 겁니다. 저의 작전이 먹힌 것이죠. 다 버리고 마음으로 다가선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따뜻하게 저는 다소곳이 안고 안겼답니다. 완전 좋죠 뭐.
자존심이요? 하하, 4개월 전에 버렸습니다. 먼지 구덩이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고, 화장실 X 뭍은 휴지를 손으로 건지면서 바닥에서 올라와야만 했는데 겨를이 없었죠. 70, 80, 90년대의 한국 마스터는 지금 미국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가지, 겸손한 한국인 사범은 존재합니다. 그들도 인정합니다. 아니 압니다.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청소에 참여해서 일익을 담당한다니까요. 풋. 여하튼 초반에 걸레질 하다가 주부습진 걸릴 뻔 했습니다.
청소 얘기는 여기서 그만해야겠습니다. 가끔 스토리 하나만 보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어서요. 제발 연재 글이니까요. 이어서 읽어주세요. 그리고 지난해 10월, 11월, 12월에 있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하루는 이 글을 보신 저희 부모님이 전화가 와서 “대길아, 너 괜찮냐. 힘든 건 지난거니? 아직도 그러니”하며 걱정하시는 통에 이거 눈치 보여서 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하하. 그럼 다음 편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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