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은이의 태권도일기
연재 들어가기에 앞서 9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획득. 태권도 스타, 정재은의 경력은 22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화려하다. 주위에서는 타고 났기 때문에 노력을 안해도...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화려하기만 해 보이는 태권도 스타, 정재은(한체대 4년)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태권도 천재가 아니다. 현재의 위치에 오기까지 남 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다. 쓰러질 때까지 뛰고 또 뛰며 남들보다 몇 배의 땀을 흘렸다. 어린 시절 얼굴에는 항상 멍자국이 있었으며 태권도 수련 중 코피 터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 글은 태권도 스타, 정재은이 태권도를 처음으로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시리즈로 그릴 예정이다. 그냥 주저앉아 울어버린 좌절의 순간부터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영광의 순간까지.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정재은은 재은이의 태권도일기를 연재하는 동기에 대해 "지금 태권도를 하는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왈가닥 재은이 태권도계에 입문하다
부모님과 두 오빠가 있는 나는 어릴 적에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 아빠는 그 누구보다도 나를 제일 예뻐하셨고 막내고 딸이다보니 우리 집에선 내가 왕이었다. 7살, 5살 터울의 큰 오빠와 작은 오빠는 어디를 가던 나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 심지어 소풍이나 친구들과 놀러 가는 곳까지 오빠들은 나를 데리고 다녔다.
물론 태권도 도장에 갈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빠들은 태권도 도장에 갈 때도 항상 나를 대동(?)하였고 난 오빠들이 태권도 도장에 갈 때마다 항상 쪼로록하고 옆에 붙어 따라 나섰다. 그리고 오빠들이 태권도 도장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렇게 태권도를 하는 두 오빠들 틈에서 자라다 보니 내 성격은 활달하다 못해 왈가닥으로 변했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 친구들과 때로는 사고(?)를 치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피구나 달리기 시합이 있으면 나는 빠지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합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말싸움 끝에 친구 한 명을 때렸다. 그 때는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운동 신경이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발로 그 친구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친구가 다음날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새벽에 코피를 많이 흘려 나오질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날 바로 그 친구 집에 가서 사과를 하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그 때부터 나는 운동신경이 타고 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5학년 되던 지난 91년, 작은 오빠는 태권도 전국시합을 하러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아빠를 따라서 작은 오빠를 응원하러 부산으로 갔다. 내가 본 작은 오빠는 운동도 잘 하고 시합도 잘 하는 것 같았다. 작은 오빠는 돌개차기를 무려 3번이나 연속으로 차기도 했다. 그 장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우~와"하고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작은 오빠는 시합에서 억울하게 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때 오빠네 학교에 힘이 없어서 졌다고 했다. 오빠가 시합에서 지자 옆에서 응원하시던 아빠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아빠의 얼굴을 봤을 때 마음이 뭉클해졌고 또 슬퍼졌다. 그 때 나는 내가 태권도를 배워서 아빠의 목에 금메달을 꼭 걸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부산에서 돌아온 나는 태권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아빠한테 태권도 도장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아빠는 엄마의 반대가 있었지만 태권도 도장에 나를 보내 주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아빠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뭐든지 마다하시지 않고 다 들어주셨던 것이다. ^^
그러나 막상 아빠가 허락하셨지만 나는 워낙 끈기가 없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나는 과연 내가 태권도를 끝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태권도를 하고 싶었다.
난 용기를 내어 두 오빠가 운동하던 은천태권도 도장(관악구 봉천동)의 문을 빼꼼이 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91년, 나는 이렇게 태권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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