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가 개혁의 첫 길이다
태권도 지도자들은 당당해야 한다. 태권도 지도자들은 당당해야 한다. 태권도 지도자들이 당당하지 못할 때는 지도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무도인으로서 존재의 가치가 없다. 우리 태권도 지도자의 당당함이 바로 태권도의 자존심이고 생명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당당한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지도자들이 경기장에서 억울한 판정을 당해도 당당하게 따지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선임되어도 자신의 노력과 역량에 의해서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풍토는 무엇 때문인가?
심사장에서 불공정과 불이익을 당해도 어찌해 볼 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협회의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다는 압박감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왜 무엇 때문에 명백하게 잘못된 일들을 보면서 나서서 그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없는가?누가 우리를 이렇게 비겁하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이 세계를 이토록 무법천지로 만들어 버렸는가?
그것은 김운용 회장도 원로들도, 협회 임원들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다. 권력에 굴복하고 굴종하는 민중에게 권력은 절대로 자애를 베풀지 않는다. 권력은 다만 철저하게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갈 뿐이다. 권력은 저항하는 민중에게만 아부한다. 동서 고금의 역사가 보여준 사실이다.
태권도 지도자들은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지도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국기원, 대태협, 지방협회가 운영되고, 지도자들이 고생하여 기른 선수들로서 그들의 명분과 사업실적을 만든다. 김운용 총재는 태권도의 조직과 자금, 그리고 인력으로 오늘의 위치에 올랐다.
수 많은 태권도 협회등 조직의 임원들은 심사비를 중심으로 하는 공금으로 오늘까지 잘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대가로서 태권도 발전을 위하여 특별히 기여한 것이 없다. 오히려 태권도의 명예를 먹칠하거나, 태권도 일선 지도자들을 권력의 남용으로 굴종시켜 왔을 뿐이다.
위기의 태권도가 살아 남기 위해선 태권도계 내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위기의 태권도가 살아 남기 위해선 먼저 태권도계 내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화는 태권도 개혁의 밑바탕이다. 대대적인 민주화의 노력없이 특정한 사람의 교체나 형식적인 제도의 변경 따위로서는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민주화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다. 태권도 지도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이 민주화다. 지도자들이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기 때문에 위에 있는 자들이 함부로 권한을 남용하거나 예산을 유용하거나 하지 못하는 것이 민주화이다. 회장이건 전무이건 잘못하면 무조건 퇴출시킬 수 있는 것이 민주화다. 위에 있는 자들이 아래에 있는 분들을 존중하고 오히려 눈치를 보는 것이 민주화다.
태권도 지도자 개개인들이 조직과 직위에 억눌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을 없게 하는 것이 민주화다. 태권도 조직의 인력과 예산이 태권도의 발전과 태권도 지도자의 복리증진을 위해서 기여하게 하는 것이 민주화다. 부정과 비리가 있을 때 그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고, 또 책임있는 자는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민주화다.이 당연한 일들이 우리 태권도계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머나먼 나라의 일이다.
민주화는 절대로 위에 있는 자들이 스스로 하지 않는다. 이것도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민주화는 오직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외침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지도자들은 소리쳐야 한다. 제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태권도의 주인은 지도자들이다. 자기 것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 눈치를 보면서 나의 이익만 잃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우리들이 정말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적에게 볼모 잡히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도자의 자존심, 태권도인의 자존심, 그리고 자신과 태권도의 미래를 도둑들에게 저당잡히고 있는 것이다.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태권도인다운 용기가 필요한 때
내가 일어나 외치면 나만 죽는다는 소극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당당한 목소리와 자존심들이 함께 일어나 연대하여야 한다. 비리와 부정을 모아 세상에 알리고, 잘못된 자들을 심판에 세우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내가 한 자리하기 위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안된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태권도의 미래와 자신의 자존을 위하여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태권도인다운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목소리들이 모이고 연대하면 태권도의 민주화는 어쩌면 생각보다도 쉽게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사심없는 비판세력은 큰 힘을 가진다.
비판의 힘이 존재하는 곳은 항상 건강한 긴장과 발전적 경쟁이 넘친다. 태권도인들은 안된다고 하는 자조의 소리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불안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장 원하는 소리다.
그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들은 항상 일선 지도자들을 이간시키고, 채찍과 당근으로 길들이고 있다. 그 악순환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태권도 문화에는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전통적 가치관이 있다. 바로 동양 전통의 종법질서(宗法秩序)를 바탕으로 한 존장(尊長)사상과 예의관념이다. 웃어른에게 그리고 스승이나 선배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 우리의 미덕이다. 그러나 윗사람, 선배, 그리고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올바르지 못할 때는 이미 존경과 예의의 대상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예의와 주장이 혼동되는 것은 그들이 주장을 무례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태권도를 좀 먹고 있는 사람을 존경해야 할 이유는 없다. 태권도의 녹을 먹는 자가 태권도를 위해서 일을 바로 하지 않을 때는 여지없이 비판해야 한다.
국내 태권도계 조직의 1년 총 예산이 100억을 넘고 있다. 1년 동안에 태권도를 위하여 이들 조직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책임과 능력을 물어야 한다. 태권도는 실업자 구제 단체가 아니다. 태권도는 범법자들의 대피소가 아니다.
태권도가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로서 영속적으로 자리하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실현해 가는 의미있는 문화이기 위해서는 태권도의 민주화가 가장 시급한 선결과제이다. 진심으로 태권도를 사랑하고 진정한 태권도인이기를 소망하는 당당한 태권도의 목소리가 민주화를 닦는 선구적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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