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최홍희의 '이승만 대통령 [태권도] 휘호 하사'는 두 번째 날조


태권도 창시자라고 자처하고 있는 최홍희는 그의 태권도 관련 여러 문헌 중 태권도교본(성화문화사 1967), 태권도와 나 1(사람다움 1997) 등에서 1955년 4월 11일 명칭제정회의에서 태권으로 만장일치로 채택된 얼마 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내려진 태권도라는 친필 휘호로서 공식화되었다고 기술했다.

이는 태권도 역사의 두 번째 날조다.

이는 태권도 역사의 두 번째 날조다. 그는 개명(改名)의 의의에서 "사도의 개명문제는 왜 초미지사였던가. 그것은 사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의 고유무도라는 점과 지금까지의 각종 명칭들이 그 기술적면에 있어서도 전연 적합한 명칭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태권도교본 1967:32)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태권도라는 명칭은 새로운 기술체계의 창시가 아니라 적합한 명칭을 위한 개명에 불과하다는 논리이다. 태권, 태권도라는 새 명칭의 공론화를 위해 명칭제정위원회라는 미명이 그 첫 번째 날조이고, 그 두 번째 날조는 이승만 대통령의「태권도」휘호 하사로서 공식화하는 수순(手順)이다.

특히 태권도의 역사에서 이선근(당시 영남대학교 총장 사학박사)은 "마침내 태권도로 그 이름을 제정하고, 1955년 4월 11일 이를 중외에 선포함으로써 역사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전통무도임을 입증하기에 이르렀다"(태권도교서 1973:22)고 미화, 사학자로서 양심을 저버린 왜곡이다.

이승만의 태껸이라는 말은 최홍희에게 한국 고유의 무도에 대한 어릴 때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것은 한문 선생 한일동이 가르쳐 주고 들려주던 무술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무릎을 치며 우리 무술의 이름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남태희를 불러 옥편을 뒤지게 했다. 그들은 우리 고유의 무술인 태껸의 태(跆)자가 뛰고 차고 밟는다는 뜻을 담고 있어, 다리 운동에 적합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공수도나 당수도의 수(手)자 대신에 주먹 권(拳)자를 써서 태권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조경규 국회 부의장이 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경무대의 회신을 기다리게 되었다. 목마르게 기다리던 대통령의 회신은 태껸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라는 것이었다.

제2차 명칭위원회가 소집되었고, 거기서도 태권도가 채택되어, 경무대에 결과 보고가 올라갔다. 내려온 대통령의 회신은 여전히 태껸이었다. 최홍희는 경무대 비서실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 참가한 손덕성, 이형근, 조경규 등 3명이 대통령의 승인을 받기 위해 대표로 경무대를 방문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김창룡 특무대 대장이 암살되는 바람에 이 면담은 취소되었다.

몇 달 후, 이승만 대통령은 친필로 태권도라는 휘호를 내렸다. 1955년 4월 11일 이날이 바로 태권도의 탄생일로 태권도의 날이 되었다.(한국무술 미대륙 정복하다/TAEKWONDO American dream 이호성 스포츠조선1995:86∼87)

일명 태권도 아메리칸 드림의 저자인 이호성은 당시 조선일보 시카고 지사 취재부장을 거쳐 편집위원 재임 중 집필하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태권도 취재를 하는 동안 태권도는 쿵푸와 가라테를 따돌리고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는 낭보에 접했다. 지금부터가 한국 고유 무술로서 태권도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홍희의 자서전에서 관련 내용을 인용, 정황을 분석하는 단서로 삼는다.

"한편 이날 저녁 회의에서 형식적으로 결의한 3인 소위원회 구성에 관계없이 나는 다음날부터 오도관에다 태권도의 새 이름을 쓰라고 지시하고 직접 경무대 서장실에 연락하여 한자로 태권도라고 쓴 이 대통령의 휘호를 요청했다.

그런데 2, 3일 후 나의 기대와는 달리 경호 대장으로부터 대통령 각하께서 한글로 택견이라 쓰시겠답니다하는 전화가 왔다. 그러나 며칠 후 경무대에서 온 연락은 역시 한글로 써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이라 나로서는 마지막 수단으로 이 대통령의 손발 노릇을 하는 경무대의 실력자 서정학과 곽영주 그리고 심지어는 경무대 부서장까지도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정에다 초청했다.

나는 이 좌석을 이용하여 이 박사가 태권도를 한자로 휘호하도록 그들을 설득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결국 그들은 속담에 먹은 소 똥눈다고 내가 원하는 태권도(跆拳道) 세 글자를 받아 내는데 성공했다. 이 휘호가 발표됨으로써 태권도는 누구의 모략도 받을 수 없이 공식 명칭으로 떳떳이 사용되었다."(태권도와 나 1, 1997:346∼347)

결국 태권도 휘호 하사는 최홍희가 날조한 것

여기 두 인용문을 검토해 보면 진위를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 김창룡(육군특무대장, 소장) 저격사건은 1956년 1월 30일 발생했고 그 사건의 마무리는 1957년 9월 22일, 허태영을 비롯한 신초식, 송용고, 이유희 등 모두 형장의 이슬로 처형됨으로써 종결됐다. 이 중대한 사건의 와중에 이 대통령이 휘호를 내렸다는 것은 신빙성이 희박하다. 그리고 두 저자의 내용이 전혀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최홍희 말대로 이대통령의 휘호 하사가 있었다면 그 역사적인 중요한 휘호에 대한 사실자료, 사진, 휘호의 보관 및 행방, 휘호의 연월일 등에 관해 전혀 언급과증빙이 없다.

▲ 최홍희는 휘호를 받는데 일주일 정도, 이호성은 몇 달 후 등 시간적 격차를 보이고 있다.

▲ 이 대통령이 두 차례나 한글로 택견을 써 주겠다고 했는데, 요정에 초대 로비를 했다고 해서 서정학, 곽영주 등이 태권도를 건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 이호성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1955년 4월 11일과 1956년 1월 30일은 10개월간의 시차를 보이고 있어 더욱 신빙성이 희박하다. 그렇다면 최홍희 문헌에서 볼 수 있는 명칭제정위원회 사진의 1955년 12월 19일과 김창룡 암살사건일인 1956년 1월30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 이호성(1995)과 최홍희(1998)의 책 발간 연도에서, 이호성은 당시 최홍희, 손덕성 등 여러 증인들을 면담, 취재한 기록이다.

그리고 태권도 타임스(트라이마운트사, 2000. 1:49)의 인터뷰에서 최홍희는 "나는 이 대통령의 경호관 곽영주, 경무대 서장 서정학에게 접근, 그들에게 태권도는 새로운 무술이고 옛 무술인 택견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새로운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승인 받도록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나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라는 새로운 명칭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permission)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론으로 이 대통령의 친필 태권도 휘호 하사는 없었고, 결국 최홍희가 스스로 태권도 역사를 날조한 것에 불과하다.

댓글 10

정순천 2001.06.16
교수님! 날조란 말은 마지막이란 말입니다. 정순천올림-
박사범 2001.06.16
한사람의 큰 실수로 모든 역사가 날조 왜곡 되였으면 앞으로 태권도는 어떻게 되나요? 앞으로 태권도 이름을 바꿔야 하나요?
뉴욕 박사범 2001.06.18
3번째 날조를 가다립니다.
조용한무도가 2001.06.18
전 이글이 도데체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어려서 그런가요? ^^ 암튼 이런곳에서 만나서 참 좋습니다
태권인 2001.06.18
그럼 그동안국기원에서 태권도역사을 허위날조한것은가요 이교수님도 태권도협회소속이아닌가요 그게맞다면 이교수님도 역사날조에 가담한게아닌지요 그리고 용인대겸임교수님으로계신는거로 알고있는데.그동안 태권도역사를 가르치실때 어떻게가르쳐는지... 궁굼합니다
이pd 2001.06.19
안녕하세요? 저는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희가 지금 무술관련 휴먼 다큐 프로그램을 준비중인데요 태권도 발전을 위해 공헌하신 진정한 태권도 명인을 찾고 있습니다. 평생 태권도의 길만 걸어오신 명인이 계시다면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2~3인 추전바랍니다. 수고하십시요.
사랑하는자 2001.06.19
2,1, 최홍희- 1955-2001 1,2, 김운용- 1970-2001 이 두 X 독재자들이요. 그리고는 아무도 없오.
태사랑 2001.06.26
묵묵히 태권도 외길을 걸어오신... 김순배 관장님에 대하여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현 대태협 부회장 중에 한분 이십니다... 태권도 2세대라 할수 있는분이시며.. 오직 태권도 외길을 걸어 오신분입니다 사심없이..... 프로그램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화랑 2001.07.15
최홍희씨의 존재는 타 무술에서도 다 압니다. 그가 북한으로 맘을 돌렸다고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건 안된다고 봅니다 그는 itf의 창시자이고 넓게는 태권도를 체계화 시킨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태권도가 가라데를 기본으로 해서 당수도를 거쳐 만들어진걸 교과서를 통해 부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태견이 파생된것도 부정할수 없죠.
무도인 2003.12.24
90년 기네스북에 태권도의 창시자에 대해 서술 했다는데 볼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음 알 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