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다이어리] 돌아올 수 없는 비행기에 오르다
![[USA 다이어리] 돌아올 수 없는 비행기에 오르다](https://mookas.com/webzine_img0/con_img/news_image/h.gif)
무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대길 입니다. 미국에 온지 3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빠릅니다. 왜 그곳에 무얼하러 갔느냐구요?(웃음)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수년간 글로벌 무술 커뮤니티 무카스에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체득한 소중한 경험을 이곳 미국 마이애미에서 펼쳐 내기 위해서죠.
젊은 나이에 가슴에만 담고 있기에는 너무나 큰 꿈이었고, 또 저와 같은 이상을 품고 있는 든든한 우군을 만나기란 더더욱 힘들었기 때문이랄까요. 해서 3억 870만명(4월 1일 기준)이 사는 미국 땅으로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무카스의 특파원으로, 태권도 사범으로, 또 도장 비즈니스맨이 되기 위한 도전이라고 정리하겠습니다. 아직도 이 세 가지의 포지셔닝을 100% 소화해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를 보고 미국 현지에서 이렇게들 평가합니다, “빠르다”라고요. 이 문장에 저의 미국 현지 상황이 단번에 설명되는 것 같네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직접 와서보니 여러분들께 정말 많은 것을 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생한 미국에서의 삶을 ‘가나다라...’ 있는 그대로 나열하려 합니다. 딱딱한 해외 무술계의 정치적 이야기나 유별나고 특별한 무술 도장의 프로그램 등이 어떻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잠시 접겠습니다.
뭐, 지금 1년 치 분량이 저의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아주 구체적으로 풀어내겠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저를 통해 미국을 맛보시면 되겠습니다. 자, START!
이제껏 수십 번의 해외 출장길에 나섰지만,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편도 비행기표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정말 올바른 선택인가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출국 1개월 전부터는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알면서도 할 수 없던 그 마음, 소주 한잔은 제 마음을 달래는 친구였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서 꿈틀거리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걸음을 이끌었습니다. 출국 전날 바리바리 가방에 옷을 집어넣었습니다. 챙길 것이 뭐 그리도 많던지.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 몇몇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 하려니, 2박 3일은 잡아야겠더군요. 지난 기간 동안 열심히 살긴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 인생에 정말 소중한 한 분과 저의 가족들이 배웅을 나왔습니다.
같이 인천공항 내에 들어섰습니다. 세 개의 가방을 나누어 붙이고 탑승 수속을 마친 뒤 떠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난 터라 부모님 손을 끌고 건너에 보이는 맥도널드에 갔습니다. 놀랐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말이죠. “아들, 나 이런 곳 처음이야.”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햄버거를 몇 개 챙겨든 저는 부모님과 누나, 매형, 그리고 소중한 한 분과 자리에 앉았습니다. 나에게는 일상인 것이 저들에게는 특별한 하루인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에게 맥도널드는 가기 힘든 외국 레스토랑이었던 것이죠.
불효자는 울지도 않은채 후회만 해야했죠.‘잠시만 안녕’임에도 이 두 시간 여 남짓의 기다림이 제게는 한 없이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출국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채 20여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가방을 들고 들어가기 전, 뒤를 돌아보며 한 명씩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전연 저를 쳐다보지 않으시더군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미국행을 결심한 그날부터 아버지는 이런 말을 누나에게 종종 했다고 하더군요.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제 부자지간에 조금 대화를 하기 시작했는데...” 20년간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아버지의 몸무게가 떠나기 직전, 39kg 이었으니, 그 마음 알겠더군요. 아버지와 포옹을 하고 짧게 인사를 했습니다.
가족 모두와도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절대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수백 번 고쳐 다짐했던 지라, 새 빨개진 눈 자이에 그렁그렁해진 눈을 하면서도 아무 말도 않은 채 그저 포옹만 했습니다.
생전 눈물 한번 보이지 않던 저의 소중한 그 분도 끝내는 저보다 먼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탑승장으로 향했습니다.
2010년 10월 23일 오후 5시. 미국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슬픔도 잊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NO PAIN, NO GAIN.”
<정대길의 USA 다이어리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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