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무예 경당
한국 전통무예 연재를 시작하며
2001년 2월 17일 개최되었던 제1회 한국 전통무예 세미나의 글들을 통해 한국 무예가 가지고 있는 우수성과 문화적 가치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우선 첫번째로 24반무예로 구성된 경당을 통해 민족무예의 길을 찾아보자.
인사말

◎ 인사말씀
친애하는 전통무예동호인 여러분, 서구문화의 원류는 기사도 정신이고, 일본문화의 원류는 사무라이 정신이며, 중국문화의 원류는 지배계급의 사상으로서 유교와 서민층의 협객정신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문화의 원류는 신선사상과 선비정신에 있었던 것입니다.
기사도 정신은 개인주의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봉건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사회를 성립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무라이 정신은 봉건영주에 대하여 맹목적 충성심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자본주의가 일국적 범위를 석권하는 독점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전후복구과정은 이의 단적인 반영인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가 농민(민중) 반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협객정신으로 표상되는 민중들의 저항정신과 이를 약화, 무마 하려 드는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도교, 불교의 지배이념의 갈등, 대립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역사의 원류는 선비사상, 신성사상인데 이야말로 오늘의 체계. 오늘의 인류가 당면한 모순, 대립.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사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비는 재물을 주어도, 호강에 담그어도, 이권을 보장하더라도 그 의리를 굽히지 않는다. 뭇 사람의 힘으로 겁을 주어도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더라도 맹조가 후려치더라도 그 용기를 헤아리지 않고 무거운 솥을 끌더라도 그 힘을 헤아리지 않는다.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고 장래의 일을 예측하지 않으며 잘못된 말을 되풀이하지 않고, 뜬소문을 끝까지 추적하지 않으며 그 위엄을 잃지 않고 그 책모를 연습하지 않았다. 그 홀로 서기를 이와 같이 한다.」또한 「선비에게는 현세에 살아도 옛 성인과 함께 생각하고 현세에 행하더라도 후세사람과 함께 한다.
때를 못 만나 위에서는 돕지 않고 우리들이 당을 지어 위해를 가할지라도 몸은 비록 위태로우나 그 뜻은 빼앗을 수 없다. 비록 위태로운 곳에 있더라도 끝내 그 뜻을 펴서 오히려 그 백성을 위하여 장래의 병폐를 잊지 않는다. 그 근심하는 사유가 이와 같다.」
이처럼 선비정신, 신선사상은 이해관계에 민감한 현대인과는 대조적으로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면서 사물에 대한 사려 깊은 인식능력을 바탕으로 거시적이고 역사적 안목을 갖는 것입니다. 이에 기초하여 새로운 형태의 바람직한 무인을 다음과 같이 그려봅니다.
첫째로 무예인은 남다른 감각구조와 인식능력을 갖게 마련이고, 변화하는 상황에의 적응능력 또한 뛰어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인식능력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여러 모순을 이해하는 사회과학적 인식능력까지 확대되어야 함을 암시합니다. 모든 사람은 결국 자기가 인식하는 수준 까지 밖에 실천할 수 없는 것이기에 제 1차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결국 인식능력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둘째로 바람직한 현대적 무인상은 강한 실천의지와 실천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학행일치, 언행일치 등은 유교적 덕목이기는 하지만 사물을 인식했으면 그 요구에 따라 실천하여야 하고 그 실천을 통해서 만이 진실여부가 검증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뜨거운 인간애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예를 수련하는 목적은 약자, 정의, 진실을 돕고 폭력을 억제하기 위함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정의를 수호하되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인식도 실천도 아무런 의미를 갖을 수 없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전통무예 동호인 여러분. 우리는 지금 민족적으로는 조국통일의 대업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보다 거시적으로는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 즉 선·후진 국가간, 노·사간 사회계층간. 도·농간. 산업간에 여러 현대의 모순 대립갈등이 있으며 이와 같은 갈등은 서구문명의 기반으로 되고 있는 개인주의 집단이기주의 방식으로 해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선사상. 선비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한국적 무인상의 정립이 절실히 필요하며 나아가 인류문제, 현재의 세계문제를 해결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민족도장 경당 연혁
1989.7.1 민족도장 경당 개관 (광주 월산동)
1992.5.1 본당 창설(경당개관 3주년) 및 제 1회 하늘맞이 큰 굿 1994.2..21~27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고부농민봉기 역사맞이 굿
1994.5.14~15 제3회 (경당개관 5주년)하늘맞이 큰 굿 개최
1995.5.19~20 제4회(경당개관 6주년)하늘 맞이 큰 굿 개최
1996.5.20 실연 완역 『무예도보통지』출판기념회 개최
1996.5.24~25 제5회(경당개관 7주년) 하늘맞이 큰 굿 개최
1997.5.24~25 제6회(경당개관 8주년) 하늘맞이 큰 굿 개최
1997.5.24~25 제2회 광주비엔날레 행사 참가, 무예시범
1998.5.23~24 제7회(경당개관 9주년)하늘맞이 큰 굿 개최
1999.5.22~23 제8회(경당개관 10주년)하늘맞이 큰 굿 개최
1999.10.9 화성문화제 『정조시대무예전』주연
2000.5.27~28 제 9회(경당개관 11주년)하늘맞이 큰 굿 개최
2000.10.12 화성문화제 『정조시대무예전』주연(2회째)
경당설립취지
나라마다 그 나라의 건국이념과 겨레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에 상응하는 교육 기관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근대적 교육기관은 대부분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식민지 하급관리」를 육성할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아직까지 그러한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심적인 교사들에 의해 참교육, 또는 민족교육을 제창하고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반영인 것입니다. 민족교육의 부재, 사대 매판 문화에 의한 민족자녀들의 정신적 오염, 전면적 교육 위기, 이것이 오늘의 교육현실인 것 입이다.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자주적이고 영광스러운 역사는 고구려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고구려의 역사는 경당이라는 서민, 지방교육기관에서 길러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당에서는 고구려 건국의 정신적, 도덕적 기반이 되는 건국이념과 함께 무예와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실로 고구려의 국력, 고구려의 영광은 경당이라는 요람에서 길러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당은 고구려에서 전형적으로 발전하였으며, 그 이전 우리의 먼 조상들은 말을 타고 양떼를 몰고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넘나들 때부터 한 지역을 점거하면 중심지역에 솟대를 세우고 종족의 장으로서 성역을 만들고 그 성역의 핵심지역에 경당을 만들어 겨레의 간부을 길러온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선례에 따라 우리는 통일조국을 염원하는 민족의 이상과 민족자녀들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도량으로서 민족도장 경당은 설립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염원은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통일 일꾼과 민족 간부를 육성해야 할 시대적 요구를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전사 임동규 선생께서는 조선왕조의 국방무예였던 「무예도보통지」수록의 24반 무예를 복원하였습니다. 그것은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옥고를 치르면서 이룩한 의미심장한 무예인 것입니다.
이 무예는 또한 빛나는 민족문화유산이며, 각종 심신질환을 예방하고, 고도의 정신집중을 통하여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민한 감각과 기민한 동작, 강인한 정신력의 배양을 통하여 영활성을 보장해 줍니다. 우리의 역사상 위대한 인물은 거의 문무를 겸한 사람이었습니다.
웅비의 민족장래를 설계하고, 평화적 통일사업을 추진할 민족간부의 육성기관으로서 민족도장 경당은 설립된 것입니다. 국제화된 뚜렷한 주체의식과, 민족적 긍지를 갖춘 재능있는 민족간부들이 세계무대에 나아가 눈부신 활약을 하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 진정으로 경당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민족무예의 길

1. 민족무예란?
민족무예란 한편으로는 자주적 민족사상의 근원이며 최초의 진보적 사상 그 자체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숙명론이 지배적이었던 원시, 고대사회에서 인간의 숙명을 늘릴 수 있으며 운명 또한 개척할 수 있다고 보는 진취적인 측면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을 외래 침략자로부터 지켜 온 직접적 전투수단이었다.
2. 민족무예의 형성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동방은 신선이 사는 나라라고 해서 존경하였고 東夷족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동이족이란 뜻은 특히 활을 잘 쏘고 무예에 강하다는 뜻이다.옛 부터 우리 나라에는 명궁, 명궁수가 많았다.
그리고 신선은 바로 선비라는 뜻이며 무예와 학문을 닦으면서 민족의 위난을 구하는 역할을 해 왔다.
3. 민족무예의 맥락
신선, 선비사상은 풍유도, 국선도, 낭가사상이라고도 하고, 민중들은 도술, 도사라고도 하였다. 이는 또한 衣仙人(조의선인)(고구려) 화랑도(신라)로 이어진다. 고려시대에는 仙郞(선랑)라는 제도로 정착되기도 하였고, 조선왕조에 이르러 선도(仙道)로서 실로 민족사 전개에 있어서 중심 축을 이루어 왔다. 신선, 선비는 평상시에 농사와 사냥을 하기로 하고 명산 대천을 유람하면서 심신을 단련하기도 하나 실제적으로 민중 속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해 왔다. 특히 국난을 당하여 이를 극복하는 중심축 노릇을 해 온 것이다. 유사이래 1천번의 외래침략을 번번히 격퇴한 잠재력의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 서양스포츠와 동양무예의 차이
서양스포츠나 동양무예가 다같이 심신의 조화와 균형적 발전이라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스포츠가 주로 키가 크다던지, 힘이 세다던지 하는 사람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동양무예는 원천적으로 기량을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신체적 조건과는 무관하다. 즉 서양스포츠가 외형적인 체력단련에 주안점이 있다면 동양무예는 전인격적인 인격도야라는 철학적, 도덕적 기반에 주력하고 있다. 형태상으로도 찌르기 위주의 서양무대보다 베기 위주의 동양무예가 위력적이었음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 동양무예에서 민족무예의 위상
동양무예의 원류는 결국 고구려로 귀결된다. 그것은 고구려 무용총벽화의 수박도가 명나라의 기효신서의 권법(안시측신세와 과호세)과 동일한 데서 입증된다. 즉 고구려의 무예가 당나라에 전해져 당수도가 되고, 당수도가 오키나와, 일본에 전해져서 가라테가 된 것이다. 가라테는 다시 식민지 조선에 전해져서 태권도가 된 것인데, 오늘의 태권도는 그 기법상에 있어서나 국제적 위상에 있어서 가라테를 능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기마 민족으로서 세계 어떤 중국보다 뛰어난 무예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검법에 있어서도 칼중심의 일본검도보다 사람중심의 조선검법이 보다 다양하고 위력적일 수 있다.
4. 무예도보통지란?
우리 나라 최고, 최대의 무예경전이 『무예도보통지』라는데 이의를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동양삼국의 정예가 격돌하는 임진조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전투마당을 배경으로 성립되기 시작하여 무예제보 → 무예신보의 과정을 거처 정조 대왕시에 24반무예로 집대성된 동양무예의 정화를 수록한 무예경전이다. 그것은 이 책이 집대성되기까지 시간적으로도 200년간이라는 장구한 시간 동안 국왕을 비롯한 당대의 일류재사, 명사들이 망라되어 집대성한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의 정화이다. 또한 이는 중국의 기효신서, 무비지, 일본의 삼세도해를 서술방법, 편제, 기법 등 모든 면에서 능가하고 있다.
5. 24반무예의 구성
무예도보통지 제1권에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좌, 낭선, 기창(騎槍) 창법이 수록되어 있고 제2권에 쌍수도, 예도, 왜검, 교전
제3권에 제독검, 본국검, 쌍검, 마상쌍검, 월도, 마상월도, 협도, 등패(요도, 표창부) 제4권에 권법, 곤방, 편곤,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형성과정에 보면 임진조국전쟁을 계기로 훈련도감이 만들어지면서 훈련무예로써 채택된 한교6기 곤방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쌍수도(무예제보에 수록)로 부터 시작하여 영조 35년(당시 사도세자께서 정사을 대청하면서 무예신보를 편찬케하면서 죽장창, 旗槍, 예도, 왜검, 교전, 월도, 협도, 쌍검, 제독검, 본국검, 권법, 편곤 등 12기를 추가하여 18반무예로 정착되었다.
이는 중국의 일몽, 이노, 삼창, 사도, 오검, 육모, 칠순, 팔부, 구용, 십기, 십일편, 십이간, 십삼괄, 십사구, 십오차, 파두, 면신, 투소, 십팔백타등 12기와는 완연히 편성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이어 정조가 즉위하여 그 원년에 선왕의 뜻을 추서하여 18반무예를 무과시취로 연마하도록 명하는 한편 기창, 마상월도, 마상쌍검, 마상편곤등 4기를 추가하고 동 14년(1790)에 무예도보통지의 편찬과 함께 또다시 격구, 마상재가 부가되어 24반 무예로 정립된 것이다.
6. 전통무예 수련의 현대적 의의.
현대인은 문명생활과정에서 여러 가지 본능적 감각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따라서 무예수련의 목적은 이처럼 상실한 본능적 감각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연의 적응력을 기르는데 있다 할 것이다. 예컨대 자연상태의 원시인은 무예수련이 필요 없고, 모든 야생조수는 용맹하기 그지없다. 이는 신체상으로는「반사적 경지」에 이르고 정신적으로는 동중정을 얻는 것으로 총체적으로 동적 균형상태에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이 임기응변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평상심(平常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예 수련자는 예민한 감각, 정확한 판단, 민첩한 동작, 비범한 안정성을 갖게 될 것이다.
7. 문무겸비는 가능한가?
우리 역사상 위대한 인물은 모두 문무를 겸비했다. 그리고 진리는 실천을 통해서 만이 검증되기 마련이다.
앞에서 말한 동적 균형 상태에서 만이 새로운 창조와 영활성을 얻을 수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요컨대 몸 전체로 움직이면서 얻는 산지식과 책만을 통해서 탁상에서 얻는 죽은 지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대사회에서도 정치학자와 정치가의 인식, 경험은 다르고 경제학자와 경제인의 인식, 경험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지도자는 반드시 양자를 겸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 올바른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8. 입문 및 특전
민족도장「경당」에서 맨 처음 수요자 중심의 교육, 수요자능력에 따르는 서당식 교육을 실시하여 왔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든 입문할 수 있도록 Cyber Dojang을 개설하여 전세계인에 문호를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 전국적,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신선사상,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고결한 인격과 인연을 맺는 것처럼 큰 자산이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 무예애호인들이여!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Cyber Dojang
제1강 : 칼을 잡는 기본적 마음가짐.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도 권법은 수족을 활동시키고 지체의 힘쓰는 법을 익히기 위한 무예의 초보이다.(초학입예지문)그리고 그 정신적 자세 역시 개체의 보호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곤방 등 연장을 들 때는 가족 이라던지 이러 저러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칼을 들 때는 국가민족의 위난을 구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따라서 검법을 배워서 사소한 폭력적 수단으로는 절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어떤 이도 칼을 잡는 마음가짐을 태를 가르는 마음가짐이라도 한다.
태라는 것은 어린아이가 어려서 뱃속에 있을 때의 생명줄 이었다. 그러나 이제 독립된 개체가 된 마당에 탯줄은 당연히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날의 역할에 연연하여 이를 제게 하지 않는다면 독립된 개체로서의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생명은 존립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지난날의 공로, 업적, 권위에 의지하여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은 탯줄을 가르는 마음으로 단호히 제거하여야만 이 새로운 생명과 그를 낳은 모체가 다함께 살아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임진조국전쟁시기에 국난을 구하는데 앞장선 서산대사께서는
「검법이 곧 불심(자비심)」이라 하셨다. 그것은 외적의 침탈로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구체적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전투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거의 소멸된 현대에 있어서 조차 사회와 역사 진보를 가로막는 각종의 사회악을 제거하는데 앞장서는 것이 칼을 잡는 기본적 마음가짐이라 하였다.
[인사법]
『무예도보통지』 소재 24반무예는 출발부터 훈련도감의 무예로 출범했기 때문에 인사법이 두 가지로 나뉘어질 수 밖에 없었다. 첫째는 어전의례로써 왼쪽허리에 칼을 늘여 뜨려 하고, 어때 칼날이 아래를 향하게 한다. 이점 일본 검도의 칼차기와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따라서 왼손으로 칼집을 잡고 오른팔을 『ㄱ』자로 주먹을 쥐고 읍하면서 인사한다. 이점 조선의 검법은 순천(순리에 따름)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고 임금에 뜻에 신명을 다할 것을 서약하는 것으로도 될 것이다.
다음 검법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과의 인사, 검법을 배우는 사람을 서로간의 인사법으로 왼쪽허리에 칼을 늘어뜨려 하는 것은 같으나 오른손바닥을 단전에 붙이고 서로 머리 숙여 인사한다. 이때 가르치는 사람은 북쪽에 남향으로 서고, 배우는 사람은 남쪽에 북향하여 선다.
이것은 전형적인 동양정신의 발원이기도 하다. 다만 배우는 사람 중 선임자가 동쪽에 서고 후배가 서쪽에 서는 것으로 된다. 이것은 좌선(左先)의 원칙 때문이다. 즉 가르치는 사람 편에서 보면 동쪽이 왼쪽이 되고 때문인데 우리의 언어 구조 자체에서까지 좌우라하지 우좌라하지 않는다.
제2강 검기본기(Basic ability(1))
1) 들어치기(권격 : Raise Strike)
2) 갈겨치기(전격 : Cut Strike)
3) 날개치기(익격 : Wingo Beat)
4) 허리치기(요격 : Waist Beat)
5) 걸쳐치기(과격 : @ beat)
6) 훑어치기(요략격 : Rob challenge attacle)
7) 찌 르 기(자 : thrust)
8) 안으로 훑어치기(내략격 : inside rob slide attack)
9) 밖으로(외략격 : outside Rob Slide attack)
10) 밖·안으로 훑어치기(외내략격 : out-inside Rob slide attack)
[칼을 잡는 법(the method of taking the sword with hand)]
1. 오른손은 칼 방패를 잡고 왼손으로 칼 머리를 받쳐 잡되 칼날이 아래를 향하도록 한다.
2. 칼질을 할 때 양손이 빨래를 쥐어짜듯이 반대방향으로(예컨대 들어 칠대 오른손은 왼쪽으로, 왼손은 오른쪽으로)비튼다.
제3강 검기본기(2) 응용 ( Basic Abillty exercise )
1) 금계독립세 ( 金鷄獨立勢 Keumkgedocklibse : The posture ofindependent golden Rooster )진전격적세(進煎擊賊勢 Jin Jeon Kguck Jeock Se: The posture of Advance Front to Strike Opponent. )
2) 금계독립세 좌우요격세 (左右腰擊勢Jwa Woo Yeo Kguck Se: The posture of Waist Beat Left and Right )
3) 백원출동세( 白猿出洞勢 Baeck Won Chooc Dong Se : The posture of white ape leaves the cave )
4) 맹호은림세( 猛虎隱林勢 Maeng Ho Eun Lim Se : The posture of Wild Tigers hide in the Forest. )
5) 발초심사세( 發草尋蛇勢 Bal Cho Shim Sa Se: The posture of part the Grass Search for the Snake )
6) 시우상전세( 牛相戰勢 Shi Woo Sang Jeon Se: The posture of Rhinceros and Ox Fight )
7) 들어두번치기( 拳劍連打 Geo Keom Lyum Ta: Two Strike with raise the Sword )
8) 한번 뛰어 한번 찌르고 한번 치기 ( 一跳一刺一打 IL Do IL Ja IL Ta: one thrust one strike with one jumping )
9) 막기(下剪打戴劒 : Ha Jeon Ta Dae Keom : one cut one defence with one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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