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문화를 이끌어야 하는 곳은 바로 도장
학생시위가 도장발전 저해한다는 건 어불성설
대저 문명의 발달에는 그 정점에 스스로의 위기가 있다. 수 많은 인류의 문화들이 그 정점에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영멸하고 말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끝없는 로마의 영광도 연기가 피지 않던 통일 신라의 부흥도 스스로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영욕의 끝을 맞이한 것이다.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정신문화들은 언제나 위기의 상황에서 그 위기를 극복하는 철저한 원리가 숨어 있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 넘어 위대하게 남는 것이다.
나는 태권도를 우리민족의 위대한 몸의 문화라고 본다.
정신과 신체의 살아있음을 태권도로 통해 느끼고, 태권도를 통한 느낌으로 스스로의 실체를 찾아가게 하는 위대한 정신의 문화요, 위대한 신체의 문화로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모순된 엄청난 충돌들도 태권도가 우리 문화로써 영원히 빛날 수 있게 되는 기반을 마련하는 시험의 장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들이 있다.
우리들 스스로 위기로 몰아가게 만드는 그런 사악한 기운들을 바른 정기로 되 돌려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인류를 꽃 피운 문화들은 모두 그 위기를 극복한 것들이다. 태권도의 위기는 바로 지금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태권도가 영원히 민족 문화로써 전세계에 찬란한 기틀을 마련할 수 기회도 바로 지금인 것이다.
그것은 단 한사람의 정치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단 한사람의 영광으로 가려질 일은 더더욱 아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의 역할이요 우리 모두의 힘이다. 그것은 태권도의 힘으로 극복되어야 하고 태권도인의 이름으로 만들어 져야 한다.
학생시위의 결과는 도장발전과 연결되어 있어
진정 태권도 문화를 이끌어야 하는 곳은 바로 도장이다.
학생들이 시위를 했고 그 시위가 일련의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찬반론이 있다는 자체가 나는 솔직히 태권도가 이제서야 살아나기 위한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청신호로 보고 싶다.
더 큰 격론과 그리고 사상적 통합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그 동안의 오랜 침묵, 일일지배의 독재치하에서 숨을 쉬지 못하던 세상에서 그 막혔던 숨 구멍이 벌어지고 터지는 소리로 그렇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순수한 학생들의 양심의 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데에서 또 다른 희망의 서곡을 보는 듯하다는 것이 태권도인의 한사람으로서의 심정이다.
권력의 그늘에서 완장을 차고 하늘을 찔러대던 사람들과 그들의 곁에 기생하여 빌 붙었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던 긴 터널과도 같은 어둠속에서 이제는 벗어날 방향이나마 잡은 것 같은 심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런 음해를 해도 사실 그것조차가 반가웠다. 왜냐면 그 만큼 반향이 있었다는 증거였기 때문에...
솔직히 가장 겁나는 것은 무감각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저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떡하나, 학생들이 저렇게 해도 저들이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그런 마음들이 더욱 겁나는 것이다.
그것은 도저히 변화를 이끌 수 없는 암연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태권도는 아직은 살아있는, 그래서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다시 한번 멋지게 불을 붙여볼 수 있는 그런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 주었다고 믿는다.
오랫동안 권력의 밑에서 누리기만 하던 사람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우리 태권도라는 문화를 갉아 먹고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었지만 고맙게도 그들 스스로가 그 도려내야 할 환부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고마운 일들을 해 줬다.
그들은 학생들의 시위가 도장에 손해를 끼친다고 부르짖고 외쳐댔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런 권력에서 빌 붙어 문화를 갉아 먹고 있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작은 헌신이 되고만 것은 아이러니다.
어차피 문화의 완성은 명분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 얼마나 허무하고 이기적이며 부정한 것인가를 모두가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권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명리와 영리를 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태권도를 사랑하고 태권도를 지키려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많은 관장님들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생들에게 보내 주셨던 격려가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욱 절실한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그 동안 자신들이 노력한 만큼, 자신들이 땀 흘린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도장의 성쇄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태권도는 우리의 문화다. 음악이 그렇고 미술이 그렇고 모든 예술의 분야와 학문의 분야가 그렇듯이 태권도를 하는 우리의 어린 학생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살아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이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한다. 아니 세계에서 수 많은 학생들이 위대한 음악가가 되고 위대한 미술가가 되기 위해서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한다. 공부보다는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시키기도 하고 부모님의 기대만큼 공부를 못해서 시키기도 한다. 그곳에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시위의 순수함, 일선 지도자들이 이해하길
우리나라에는 수 천명의 초등연맹 소속의 선수들이 있고, 수천명의 중학생과 또 수천명의 고등학생들이 위대한 태권도 선수를 꿈꾸면서 태권도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도장에서 태권도를 시작을 한다.
그런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열심히 땀흘리며 노력해서 경기에서 이기려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선수들이 이겨야 하는 것은 자연의 원리요 무도의 도리이다.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도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해서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을 마다하는 관장님이 있을까? 과연 그런 지도자가 있을까?
우리 지도자들과 관장님들께서 이번 집행부에는 누가 실세이고 누가 심판을 좌지 우지 하니까 그들에게 아부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에게 부탁을 해야 자신의 제자들이 이길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그 도장의 위신을 세우고 그 도장을 살리는 길일까? 아니 나아가서 그것이 진정 태권도를 살리는 길일까?
공부와 태권도는 같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태권도를 통해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야 말로 오히려 더 많은 학생들이 태권도를 찾게 하는 길이 아닐까?
나는 선생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그 만큼의 결과는 꼭 얻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그들의 노력보다는 내가 권력있는 자들에게 아부하고 부탁해서 그들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들 자신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 들에게 그런 비굴한 능력이 없으면 결국 이길 수 없다면 과연 우리가 무엇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무엇으로 무도의 정신과 가치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부터는 모든 관장님들이 나서야 한다. 태권도도 열심히 하면 태권도를 통해서 인생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해야한다.
태권도도 당당한 하나의 문화요 전문 분야가 될 수 있다는 거을 모든 국민들에게 보여 주고 그것을 제대로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면 오히려 더욱 태권도를 사랑하고 태권도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모든 상품의 판매에는 어떤 홍보보다 그 제품의 질이 최우선"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태권도도 열심히 하면되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가장 태권도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모든 목표를 태권도에 걸고 열심히 하는 것을 곁에서 눈으로 몸으로 보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학교를 보내는 그의 어머니의 걱정과 기대를 언제나 뒤로 하고 한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햇지만 그래도 희망과 꿈을 안고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꿈에 그리던 결승의 문턱에서 그 학생은 경기에 이기고도 판정에 졌다.
내가 항의를 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잘하는 애도 아닌데 뭘 그렇게 화를 내나?"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도 아픔이었고 거대한 벽이었지만 그 날밤 그 학생은 울면서 다시는 태권도를 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다시 그학생이 운동을 하게 만드는데 많은 노력과 고민을 했다. 나는 그런 제자들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런 학생들이 어린시절 도장에서부터 열심히 해서 태권도가 희망이라고, 한 만큼은 얻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 학생은 분명 훌륭한 태권도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어렵지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그 동안의 모든 혜택을 누리고 모든 학생들의 노력을 비굴한 담합과 영리적 계산으로 짖밟으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는 서서히 정화가 되어 나가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이제는 일선의 모든 관장님들과 도장에서 나서서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째는 태권도가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우리 문화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여전히 태권도가 희망인 수 많은 어린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지금도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태권도에 그 무엇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도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 간다"며 학생들에게 몇 만원의 돈을 쥐어 주던 한 학부형의 비애에 찬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도장이 태권도발전 원동력으로 거듭 태어나야
그늘에 서 있으면 햇볕을 볼 수가 없다. 이제는 양지로 나와서 함께 지키고 함께 보아야 한다. 힘과 권력을 가진 몇 사람이 태권도를 좌지 우지할 것이 아니라 모든 태권도인의 건강하고 바로된 인식이 그런 부정이 더 이상 빌 붙지 못하게 해야 한다.
도장 심사비의 이십 몇 프로가 대한 태권도 협회로, 사십 프로 정도가 국기원으로 들어가는데 왜 그들이 그런 행정과 그런 부정을 하는데도 침묵만을 한단 말인가? 학생들이 그 엄청난 벽을 향해 몸으로 부딪하는데, 오히려 학생들 때문에 도장이 장사가 안된다고 말하는가? 이런 어불성설이 태권도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대다수의 모든 관장님들께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렇게 가르친 학생들이 열심히 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서 스승의 명예와 도장의 명예와 나아가서는 국가와 태권도에 몸 바친 자신의 명예를 정당하게 찾는 것을 원한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그런 소리를 하는 치졸한 사람들이 결국은 그 동안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권력의 떡을 놓고 싶지 않아서 하는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고 말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극명하게 부정과 비도덕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로 서울지역 오백명 관장님들의 항의 서한이 왔는데, 그것이 무슨 주소록을 복사해 붙여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기분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정당한 많은 생각들이 우리 태권도 사회에서 드러나고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치졸한 거짓이 통한다고 그들이 생각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학생들로 인해서, 그리고 나도 그 사태의 중앙에 서 있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학생들의 뜻을 이해 하지 못하는 열심히 수련생들을 가르치시는 관장님들의 이번 사태로 인한 우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우리 태권도를 바로 살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말없이 열심히 하시는 관장님들께서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태권도가 살아갈 길은 결국 태권도가 그 고유의 가치를 찾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서도 아닌 일선도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말하고 싶다. 수고하시고 애쓰시는 수많은 관장님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도장이 태권도 발전의 원동력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간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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