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태권도 '그 위기의 본질'

지식인은 사회의 온도계(溫度計)로도 비유된다. 그는 누구보다도 앞서 사회의 열도(熱度)가 드러내는 아픔을 감지한다. 물론 지식인의 소임이 그 감지만으로 다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얼마만큼 아프며, 왜 아픈가를 기탄없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픔을 다스리는 처방까지도 거침없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무거운 지식인의 길은 당연히 자유의 산소를 요구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면 지식인의 고뇌는 갈등을 넘어 소외와 좌절로 떨어지고 만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하는 부구(不具)의 지성을 낳게 된다. 그러나 참다운 지성, 참다운 지식인은 희박한 자유의 산소 속에서도 곧은 목소리로 외치고자 한다.
스스로 자유의 영역을 넓히려 안간힘한다. 그것이야말로 정치적 권력의 통제를 거부하는 양심과 진실의 힘인 지식인의 치열한 정신이다. (동아일보, 1986, 4월10일 사설)
태권도계에 지금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태권도계에 지금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아니 이미 그 위기가 우리 앞에 바로 서있다. 다만 많은 태권도인들이 그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위기를 실감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특히 진실과 양심을 직업적 의무로 해야 하는 대학교수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의식은 존재의 무력감을 넘어 존재의 모욕감까지 주고 있다.
지난 4월에 있은 국가대표선발전에 대한 용인, 경희, 경원대등 대학생들의 시위와 농성사태는 태권도계에 그 위기의식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일부 기득권자들은 이 사태를 승부욕에 기인한 제 밥그릇 찾아먹기 정도로 인식하거나 태권도계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과 학생들의 문제 인식의 시각은 그렇게 저차원의 현실적 욕심에 있지 않다. 대학과 대학생들의 근본적 관심은 태권도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서 결과될지 모를 심각한 위기에 있다.
왜 대학생들이 경기의 판정시비에 대하여 심판들의 처벌이나 판정의 번복이 아니라 그렇게 집요하게 전무이사의 퇴진을 요구하였을까? 그리고 전부터 수없이 있어 왔던 경기의 판정 조작시비에 대하여 이전에는 눈도 까딱하지 않던 집행부가 이번에는 심지어 김운용 회장까지 나서서 전무이사와 부회장 등 집행부 핵심인사들을 퇴진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판정시비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태권도계에 축적된 비리와 부정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사실을 드러내 주었던 사건이다.
이번 사태의 피해자들(?)은 이번 사건을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예고된 사건이었다. 대회에 앞서 이미 집행부의 도덕성과 신뢰성이 심각하게 의심되고 있었다. 왜 불과 출범한지 백일도 채 안된 집행부가 도덕성에 의심을 받고 있을까?
그것은 이 집행부 구성의 인사과정에 대한 무성한 의혹과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문이 흔이 있을 법한 낙점을 위한 노력 정도의 로비였다면 그렇게까지 신 집행부에 대하여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소문과 의혹들이 태권도인들의 자존심의 마지막 선을 무너뜨리는 정도로 심각하였기 때문에 경기에서 나타나는 부정과 문제들은 단순히 경기 그 자체의 문제 이상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소문과 의혹들에 나타나는 거액의 액수와 측근인사, 그리고 고위층(?)의 아들, 그리고 이들간에 있었을 거래와 모사 등에 관한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러한 소문의 등장 그 자체만으로도 태권도인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모욕감과 상처는 곧 바로 김운용 총재의 도덕성과 태권도에 대한 인식을 의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이 일련의 심리적 과정의 최종적 귀착점은 어디일까? 대학생들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의 한 부분을 이미 하였다.
이 소문은 단지 한 사건이 아니다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많은 부정과 비리, 그리고 무리의 연결고리 속에 있는 한 부분이기 때문에, 태권도 조직이 그동안 축척해온 모순의 적폐의 한 단면이기 때문에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운용체제와 태권도의 폐해
우리는 태권도의 오늘을 이해하는데 김운용이라는 한 인간을 배제하고는 제대로 그 이해의 고리를 풀 수 없다. 지난 과거 30년의 태권도는 김운용이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고, 이 가운데서 소위 김운용체제라는 인적 시스템이 태권도의 운명을 결정해왔고, 지금도 그 틀 속에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처음부터 현재의 김운용체제가 안정적이거나 지금처럼 강력하지는 않았다. 몇 차례의 위기도 있었고, 그 주변의 인적 구성도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지속되어온 김운용 체제의 구조는 김운용과 그 아래에 이종우-엄운규라는 두 원로의 받침이라는 골격이었다.
그동안 한 두차례의 도전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김운용 총재는 이종우-엄윤규 두 원로들을 상호 경쟁, 견제, 그리고 갈등케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왔다. 1970년대 말까지는 원로들과 중진 지도자들에 대한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았으나,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들 태권도 내부 지도자들에 대한 지배력을 확실히 하면서 점차 그 권력이 절대화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IOC위원이 되고, 태권도 올림픽 종목 채택의 구체적인 실현과정으로 가면서 김운용 총재의 권력은 전체 태권도계에 무소불위의 것으로 되어버렸다. 물론 이 체제가 지금까지 태권도가 이뤄 온 모든 성취의 공로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 공로에 대한 역사적 인정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나 지도체제가 역사적 공로를 이유로 잘못과 부정을 면책받을 수는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싶다. 특히 역사적 공로를 근거로 절대화한 권력이 그 도덕적 책임과 역사적 역할을 무시하고 권력의 부패와 남용을 할 때는 그 비판과 반발은 평범한 권력보다 더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국 현대사를 통하여 뼈아프게 경험하였다.
김운용의 부패한 절대권력
지금 김운용 총재의 권력은 절대화하였으며, 부패하였다. 특히 이번 사태를 통하여 그 절대화와 절대화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이번 사태의 원인인 부정인사에서 우리는 누구도 김총재의 결정에 직언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태의 와중에서 이전에는 작동하던 원로시스템마저도 김 총재의 의중의 표현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태권도계는 철저하게 김운용 총재 개인의 결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김운용이 없는 태권도는 이미 생존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독재권력의 특성이다. 또 이번 사태의 와중에서 드러난 많은 단편적인 사실들 속에서 김운용 권력이 태권도를 개인화, 사유화하고 있다는 증거를 드러내었다.
전체 태권도인들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나 정책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 전체 이익에 앞선다는 증거이다. 지난번 전무이사 선임, 최근에 이루어진 태권도 중심조직들의 인터넷 사업권 계약, 그리고 측근들의 사조직화 등은 공권력이 사(私)권력화되어가는 분명한 징후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김 총재의 장기집권과 권력의 절대화와 사권력화는 태권도계를 심각한 수준으로 해치고 있다.그 폐해는 인사권이나 계약권, 예산문제 등의 직접적인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태권도인들의 정신을 왜곡, 타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태권도 문화 자체를 타락시키고 있다는 점이 더 더욱 심각한 것이다.
첫째로 김 총재의 권력의 절대화는 태권도인들을 권력 의존적, 종속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모든 태권도 지도자들이 조직의 권력에 굴종하는데 길들여 지게 하고 있다. 김 총재는 인사권으로 원로와 중진 지도자들을 굴종시키고, 협회는 판정권으로 감독과 코치들을, 그리고 지방협회는 심사권으로 관장, 사범들을 굴종시키고 있다.
존재의 당당함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태권도인들을 비굴한 생존방식에 물들 수 밖에 없게 만들어 가는 태권도 문화는 태권도의 미래를 죽이는 것이다. 권력의 지배에 익숙해진 태권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줄서기, 로비, 잘보이기, 눈치보기같은 일들에 익숙해진 태권도인들은 갈수록 점점 더 권력에 종속되어 자신들의 본연의 존재성 마저도 점차 잊어가고 있는 실정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김운용체제의 장기집권과 절대 권력화가 태권도에 미치고 있는 가장 중대한 폐해다.
그리고 권력자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그 아들, 비서에게도 줄을 서려고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무감각한 세계로 만들어 버린 것이 이미 나타난 기막힌 현실이다.
정(正)과 의(義)가 없는 힘은 이미 폭력이다.
바른 것과 옮음이 없는 태권도는 그냥 유희거나 폭력배의 놀음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리 내에서 바름과 옮음을 찾지 못하는 태권도가 사회의 바름과 옮음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존재의 당당함을 찾지 못하는 태권도 지도자가 태권도 교육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태권도의 사조직화
두 번째로는 권력의 사유화가 낳고 있는 폐혜로서 조직의 정체성이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과 관심보다는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이익과 관심을 우선할 때는 조직의 일꾼을 뽑고 관리함에 조직 기여도를 가장 중시하여야 한다.
지금 태권도 각 조직의 구성원이 이러한 기준에 의하여 선발 관리되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 총재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적으로 구성되고 관리되어진 조직이 태권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역량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태권도 조직 내에서의 푸념은 그 심각성의 정도를 드러내는 한 단편이다.
협회, 국기원, 세계연맹의 삼대 조직 어느 곳도 장기 발전계획이나 장기적 안목에서 수행되는 프로젝트가 하나도 없다는 현실은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이다. 이 속에서 능력이나 비젼등과 같은 단어는 인사정책에서 잊혀진지 오래며, 충성도나 계파, 그리고 로비만이 인사정책의 전부가 된 것이 태권도의 오늘을 답답하게 만든 사권력화의 귀결인 것이다.
세 번째로는 김 총재의 사(私)권력화가 태권도를 우리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는 한국 사회의 전체와 건강한 소통관계에 있어야 만이 더 많은 발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권력화를 추구하는 김운용 총재로서는 태권도가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와 왕성한 교류, 소통, 그리고 협력 관계에 있게 되는 것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정부를 포함한 사회 여러 분야가 태권도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때는 자신이 하고 있는 태권도계 내에서의 여러 가지 무리, 부정, 부패, 그리고 사회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절대권력의 행사가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며, 또 사회로부터의 비판과 견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운용 총재는 태권도를 우리 주류 사회로부터 일정거리 밖에 두려는 노력을 항상 해왔다. 언론은 태권도가 아닌 자신의 개인에게만 집중되게 해왔고, 조직에 대한 정부 지원금도 고사하는 용기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가장 극단적인 일로는 우리 태권도인들 전체 뿐만 아니라 온 사회가 관심을 가졌던 태권도 공원 조성사업도 끝까지 냉소로 일관하였다는 사실이다.
넷째로, 김 총재의 권력의 절대화와 이에 수반된 비민주적 지배행위의 결과로 태권도계 전체가 원칙이나 규정이 무시되는 비민주적 사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태권도계는 원칙도 규정도 소용없는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 미래는 있는가?
경기에서 득점이 채점되지 않았다고 소리치면 득점이 추가되고, 이미 채점된 점수가 부당하다고 항의하면 그것을 다시 빼는, 이미 경기나 스포츠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짓을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행위인지를 아무도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규칙을 생명으로 하는 스포츠가 규칙을 제멋대로 적용하는 짓을 거리낌없이 하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죄의식도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모 지방 협회는 대의원의 자격 요건을 임의로 변경하고, 어떤 협회에서는 공식회의에서 반대 발언을 하는 대의원을 힘으로 들어내 버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협회의 임원 가운데는 태권도에 관련된 비리로 실형을 확정 판결받은 사람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사람이 버젓이 선임되고, 바로 이번 대표 선발전에서 물의를 빚었던 사람들도 한 자리씩 영전되어 재기용되고 있다.
이런 모든 일에 대해 규정이나 규약에 어긋났다는 지적을 하면, 상식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들은 어디 나라 사람들인가? 이렇게 해도 우리는 정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최상부 권력의 견제없는 절대화는 이처럼 한 조직을 비민주적으로 그리고 부도덕하게 타락시킨다.
우리는 정말 누구인가?
우리에게 진정 미래는 있는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태권도의 장래를 위하여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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