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 칼럼] 최홍희와 태권도, 이승만 국부(國父)의 비운(1)

故 최홍희 총재
최홍희(1918~2002)의 첫 번째 ‘跆拳道敎本’(1949, 태권도교본)에 ‘태권도 우남(跆拳道 雩南)’ 휘호가 실려 있다. 휘호 아래에 李大統領閣下揮毫(이대통령각하휘호)라고 밝히고 있다(6쪽). ‘우남’(雩南)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1875~1965)의 호며, 태권도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태권도’라는 개명(改名)의 동기가 그로부터 나왔다.최홍희는 1954년 9월 보병 제29사단 창립 1주년기념식전에 이 대통령 임석아래 연무를 보였다. 시범을 본 대통령은 ‘태껸이구먼’ 그 한마디에 남태희(84, 청도관 3기생/미국거주)는 최 장군의 지시에 의해 옥편(玉篇)에서 ‘跆拳(태권)’이라는 한자를 찾게 된다. 이에 대해 회고록에서 최홍희는 이름을 짓고 부관이던 남태희에게 물어보니 매우 좋다고 해서 태권도로 정했다고 한다.
태권도(跆拳道) 명칭은 이 대통령의 ‘태껸’에서 비롯된다. 계속해서 ‘형(지금의 품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태권도교본(1959)’에서 형의 명칭에서 ‘그리고 우리민족의 각력단련에 치중하여 역대명장의 실전상을 묘사하여 애국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화랑·충무·을지·삼일·우남 창헌류 등이 있다’(126쪽). 우남 형은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호에서 연유한 형인데, 이 형의 특징은 전진 후퇴가 극심하며 동작의 민속을 연마하는데 치중하였다’(129쪽)라고 한다.
자서(自序)에서 ‘특히 본 교본에는 필자가 창안한 화랑, 충무, 을지, 삼일, 우남의 5대형을 수록하였는바 이 새로운 형(型)들은 우리 국민의 체질에 알맞고 자연의 원리를 수용한 것으로서 태권도의 앞날의 발전에 기여되리라 믿어지는 바이다’
하지만 이 교본은 간행·배포된 지 오래가지 못했다. 정보기관에서 배포된 모든 책을 회수했다고 한다. 그 사연은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추청하건데, 우남의 ‘태권도 휘호’ 관계로 인해 빚어진 결과인 듯싶다. ‘태권도’ 휘호의 진위는 다음 편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이로부터 1년 뒤 1960년 10월 간행된 그 교본(태권도교본)의 재판에서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비운이 시작되는데, 태권도 ‘휘호’와 ‘우남’형이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졌다. 재판의 책 첫 쪽에는 대통령 휘호가 사라지고 저자의 휘호-태권도정신 예의·염치·인내·극기·백절불굴 창헌 최홍희-가 등장하고 서문(윤보선 대통령) 등 순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태권도교본(1967)’에서는 결정적 실수를 범한다. 제3절 ‘창헌류’(129쪽, 蒼軒流) 제5항 ‘우남형(雩南型)’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형 도해(圖解)에서는 정작 ‘우남’형이 빠지고 ‘충장’형으로 되어 있다. 1959년 최초의 태권도교본의 ‘창헌류’ 편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또한 자서(自序)도 1960년도 판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1969년에 간행된 ‘태권도지침’에 따르면 창헌류의 형은 모두 20개로 구성됐다. 문제의 ‘충장’ 형은 14번째 순이다. 20번째 형 이름은 ‘통일’이다. 형이 뒤에 틀로 바뀌고 틀은 모두 24개로 구성된다.

故 최홍희 총재, 세미나 지도 장면
1980년대에 북한에 가서는 24개의 틀(품새)에 ‘주체’가 포함된다. ‘고당’을 빼고 대신 ‘주체’가 등장한다. 주체(24틀 중 15번째)란 북한의 주체사상을 이른다. 마지막 24번 째 틀 이름은 ‘통일’이다. 이것은 남북으로 갈라진 조선을 통일할 때 대한 결의를 표시한 것이며 연무선(l)은 단일민족을 뜻한 것이다(‘태권도백과사전’ 1, 평양, 1983:159).24개의 틀을 만든 이유로 “여기에 나는 20세기에 잠깐 지나가는 한 나그네로서 인류와 평화를 위해 나의 발자취를 남기고저 태권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24개 틀은 하루인 24시간 즉 나의 전 생애를 의미하는 것이다”(같은 책 155쪽).
그가 남긴 태권도 관련 의혹 내지 왜곡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큰 것만 따져 4대 의혹으로, 하나는 ‘국부의 비운’이고 하나는 ‘국부의 휘호’ 진정성이고 하나는 자칭 ‘명칭제정위원회 1955. 4. 11’이다. 그리고 하나는 ‘태권도 창시자’ 주창(主唱) 등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듯 최홍희는 가고, 그가 남긴 많은 저술에서 사실적이 아닌 표현이 서서히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최홍희는 인생의 말기에 자신이 태어난 북한 땅 고향으로 귀의, 태권도적 삶을 마감하게 된다. 묘비에는 인물사진과 함께 이렇게 새겨져 있다.
‘최홍희 선생,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1918년 11월 9일생 2002년 6월 15일 서거’(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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