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 칼럼] 황기의 무도철학, 그가 남긴 것은?
8·15 광복 후 최초의 무예 관련 책은 황기(1914~2002)의 ‘화수도교본’(1949)이다. 화수도의 ‘화(花)’자는 화랑도의 첫 자를 채택한 것이고, ‘꽃’은 모든 자연계의 가장 원만하고 화려하고, 모든 행복의 자연적인 발로이다. ‘수(手)’자는 당수도의 ‘수’자를 인용함도 되지마는, 손을 의미하는 동시에 또 사람을 표현함이다. ‘도(道)’ 세 글자를 합하여 화수도(花手道)라 하였다.‘화수도교본’이 나온 지 한 달쯤 되어 6·25가 발발하여 3천부 발행 중 6,7백부 정도밖에 사회로 나가지 못했다. 그 외는 흐지부지 되어 기대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다시 수정 증보한 것이 ‘당수도교본’(1958)이다.
이 같이 저자는 명칭 문제로 조금은 고민을 한 듯하다. 무덕관 창설자인 황기는 그 외 많은 책을 남겼다. 하지만 ‘수박도(唐手)대감’(1970)은 물론 ‘무도철학’(1993)에서 그는 ‘화수도교본’의 발간연도를 1950년 4월로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태권도용어정보사전’(2010)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화수도교본’의 발행연도(1950년 4월)로 해서 독자로부터 오기(誤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적잖은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연유로 해서 필자는 ‘화수도교본’의 발행연도(1949년 5월)를 근거하여 정오표를 첨부했다.
저자의 사정, 즉 책이 나온 기록과 책의 사실적 기록 간의 괴리는 역사적 문제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는 명칭 문제로 해서 ‘화수도’에서 다시 ‘당수도’로 그리고 1956년 서울대학교 나현성 교수 소개로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고 마침내 ‘수박도(手搏道)’로 개명하기에 이르렀다. 수박도의 근원을 수박기(手搏技)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 무예연병(鍊兵)은 고대로부터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 방법과 형태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무예에서의 특징은 기술면에 있어서 특히, 족기(足技:발기술)에 있어서 다대한 교훈을 받았고 또 공로의 모체가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적고 있다(수박도대감,41쪽).
수박도는 기술에 치중하기보다 수도(修道)에 무게를 둔다. 수박기를 배운 사람은 누구나 기술면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정신 수양에 치중해야 한다. 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수도(修道)에 가치와 무게를 두고 있다. 도의 닦음이란 ‘인간됨의 길’을 말하는 것이리라. 수련의 목표를 진실한 심신(心身) 수련을 강조하며 인생의 근원적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고 한다.
황기의 무도 정신이 결국 무도철학을 낳았다. 그 철학의 목적이란 “대자연의 원리원칙의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서 이에 대한 관심과 사상을 환기시켜서 모든 인류가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하여 인간다운 인간을 육성하는 습성을 양성하여 덕망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들의 행복·건강·평화·자유·평등을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무도철학,23쪽).
그가 말하는 3대 철학은 ‘무도철학’ ‘균형철학’ ‘인생철학’이다. 이 세 철학은 ‘도’ 철학에 근원을 두는 것은 동일하지만, 무도철학은 무도사상을 발현하여 인생철학과 결부한 철학이다. 무(武)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 특징이므로 무도의 표현은 동작이 자기방어나 상대방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을 이른다. 따라서 무도인은 ‘자기 생명의 보호는 생명의 존엄성과 귀중함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균형철학의 중심은 ‘무도 동작의 근원은 도(道)의 원리인 반사작용의 발현’에 둔다. 여기서 ‘도’란 균형 즉 중(中)을 말한다. 다시 말해, 대자연의 원리원칙에 의한 균형법칙에 의하여 마음과 신체를 수양·단련을 항상 실천하고 양심과 지적인 세련과 노력하여 덕망 있는 인격자가 되는 것, 즉 도의 덕이다.
인간은 완전무결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삼요소로 반성·판단·분별을 들고 있다. 그것의 기본조건은 도덕이고 윤리이고 양심이라 한다. 이는 오로지 균형철학에 의한 중용(中庸)에 의하여 이뤄 질 수 있는 것이다. 강조하건데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인간의 행복이나 건강·자유·평화도 대자연에 의한 균형법칙 즉, 무도철학에 의해서만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황기는 무도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1965년 3월 태권도협회 통합 실패로 독자적 길을 걷게 되고 무덕관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태권도와 수박도의 갈림이 그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역사가 된다’고 하듯 그는 우리나라 고대 무술 이름을 따서 수박도라 이름을 지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황기는 책을 만들었고 그 책은 많은 후학들에게 사람됨의 가르침을 일깨웠다. 그가 일찍이 인생철학을 논하고 무도철학, 나아가 그 방법으로서 균형철학을 완성했다는 것은 깊이 있는 사유의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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