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선발전 그리고 그 뒤안길

숨 가쁘게 달려온 5월의 하루 어느 날.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찢길 대로 찢겨 버린 우리 태권도의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처참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암울하기만 했던 것이 어제였던가.
2001년 최악의 대표선발전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 도저히 눈뜨고는 볼 수 없었던 기억들이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선다. 이것이 태권도의 현실이었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한쪽에서는 선수들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퍽 퍽 가지가 쳐서 잘려 나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모와 코치들의 아우성들... 무엇을 위한 몸부림들인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로비를 해야 했고, 그것이 당연한 듯 정당화시키고 받아들여지는데 익숙해진 우리들의 추한 모습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지도자들의 능력과 실력이 아닌 약삭빠른 처세와 로비로 평가되고, 언제부터인가 심판들은 특정인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이 현실이 당혹스럽기만 했던 그 날들이었다.
2월초 대한태권도 협회 집행부가 새롭게 구성되고 그 속에 집행부 이사로서 내 이름이 등재되던 날, 나는 심한 혼란함을 겪어야 했다.
내게 주어진 이사라는 직함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분은 축하의 말과 함께 내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기대감을 표시했고 어떤 분은 형식을 맞추기 위한 전시적 인사 선임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여자가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 하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언제나 그렇듯이 내 자리에 충실할 뿐. 그 후 다가올대표선발전을 앞두고 수많은 루머가 꼬리를 물고 만연해 있을 때 한 중진임원이 나에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임 이사, 요즘에 모든 팀들이 다 로비를 한다며? 그게 맞는 말이야?"
나는 순간 의아스러웠다. 이분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묻는 것인가? 이미 우리 태권도계에 만연되고 고질화 되어가고 있는 부정한 판정들을 이분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분의 묻는 질문이 순간 나에게는 신선하고 순진하게 다가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 그거요 제가 알기에는 저희 인천시청 팀만 빼고 다 한다고 하던데요?"
순간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후 나는 그것으로 대화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분 왈, "그러면 왜 시청팀은 안하지?"
맞는 말씀이다.
나는 왜 안 하지? 불교에서 고승들이 선문답 중 일갈을 통해서 도를 깨치게 하듯이 그 질문은 순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정말 난 왜 안 할까? 혹시 안한 것이 아니고 못하는 건은 아닐까?
경기 때 마다 나돌고 있는 여러 가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들(Behind stroies).
모두들 로비들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자금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다른 팀 코치 감독들이 태권도의 세계가 그렇고 그러니 선수들을 위해 사재까지 털어가면서 로비 할 리는 없고, 그리고 그런 말 또한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그 일들이 가능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주고 의존하는 것이겠지,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부분 부모들에 의해 자금이 조성된다고 봐야한다.
중.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커넥션이 이루어지고 대학과 실업은 국가대표로 선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커넥션이 이루어진다.

특히 몇몇 대학이나 실업팀인 경우는 부모에게 의존할 뿐 아니라 공식적으로 선수들을 전국체전 때 각 지방 시.도로 파견되고 장학금 지원명목으로 지원된 돈들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어 많게는 수천만 원대의비자금이 있다는 얘기들이 심심치않게 들려온다.
이렇듯 꼬리의 꼬리를 무는 악순환은 이미 그 수위가 넘어서서 로비를 하는 쪽이나 로비를 받는 쪽이나 어떠한 죄의식을 갖지 못 하는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대표선발전 때 벌어졌던 일들을 상기해 보자. 쪽 팀 선수 몫을 잘라다가 저쪽 팀 선수에게 주고 저쪽 팀 선수 몫을 잘라다가 이쪽에다 주고 결국은 한국 태권도 대표선수단이란 멋진 옷을 제단 해야 할 책임 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역사상 유래 없는 누더기 옷을 만든 것이다.
왜 그랬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많은 이들은 돈에 의한 로비 때문이라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단순히 집행부와 몇몇 심판에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판정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도덕적 불감증이 이미 팽배해져 있었고 "지금까지 그래 왔는데 무엇이 특별히 다르냐"하는 식의 도덕적 불감증 말기적 현상이 이미 우리주변에 나타나고 있었다는데 우리 모두가 공범이며 가해자이고 피해자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이번 사태의 책임은 먼저 독선과 부정으로 판정의 불신감을 유발하고 선발전 당시 학생들의 농성에 적절하게 대응치 못한 집행부의 무능함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협회 운영이란 어느 개인이 단독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사안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혼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려고 한 개인도 문제가 있었고, 그것을 제지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하고 자기위치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던 집행이사들이나 위원장들의 무능함과 기회주의적 발상들 또한 그 못지 않게 심각했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일들이 왜 그분들에게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보이는지, 누구나 공감하는 일들조차 쉽게 말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느 분 말대로 누구나 말 못하는 사정은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런 모습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이런 자신 없는 행동들이 결국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태권도 체면이 바닥까지 추락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면 더 이상 그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되지 않는가.
태권도는 인간을 교육시키는 절대적 역할을 한다. 스승으로서 태권도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최고기관의 집행부 임원으로서 우리선수들이나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당당함이지 나약하고 비굴함은 아니었다.
그 다음은 코치 감독 그리고 학부모들이다. 경기장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우리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과연 선수들을 지도할 때 승부를 떠나 최선을 다하라 하는가 아니면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하는가 금메달을 위해 동료도 선배도 제자도 필요 없이 오로지 돌격 앞으로 만을 외치는 모습은 경기장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너와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또한 부모들 역시 지도자들의 인격과 자질은 두 번째고 지도능력의 기준을 인성교육에 두는 것이 아니라 어느 팀 감독 코치가 로비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또는 힘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따지느라 급급하지는 않았는가.
누가 스승과 부모들을 왜 이렇게 비굴하게 만들었는지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정의롭고 올바르고 불의와 싸우는 것을 교육하고 가르쳐야 한다.
땀의 대가가 얼마나 소중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인 연습에 충실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하며,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는 그런 미덕을 가르쳐야 한다.
로비를 통해서 부정하게 올림픽에서,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게 해준들 그것이 우리제자들과 당신 자녀들 일생에 얼마나 득이 되겠는가.
그것보다는 불의를 보고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그런 능력을 가르치고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2001년 대표선발전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끝났다. 파행과 독선으로 치달은 집행부를 성난 학생들의 올바른 용기와 외침으로 태권도 역사상 처음으로 사퇴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로 인해 태권도는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 와 있다.
정의가 승리를 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뒤안길에는 태권도가 이미 만신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며 희생인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태권도가 멍들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태권도가 어느 개인의 사조직이 되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우리는 이미 만신창이 되어진 태권도를 하루빨리 치료 해야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모두가 정신 차리고 힘을 모을 때이다. 경기의 주체인 선수들은 용기를 내자 그리고 또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자. 코치와 부모들은 올바르고 당당함을 가르치자 내 자식 소중하듯 다른 팀 선수도 소중하게 생각하자.
심판들도 꺾여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 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협회의 역할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최고의 수장들이 눈을 부릅뜨고 올바르게 하는데 누가 감히 거역하겠는가. 핑계와 변명은 이제 그만하자.
아랫사람들의 잘못을 결국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노력해야한다. 그래야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에 우리의 희망과 미래를 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협력하고 지켜보자.
결국 우리는 태권도라는 한 울타리 속에 살아가야 할 크나큰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속에서 또다시 집행부의 이사로서 스승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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