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건식의 무예보고서] 남미태권도를 아시나요
브라질 현지조사를 다녀왔습니다. 태권도의 남미진출사에 대한 부족한 사료와 사실들이 많아 최소경비로 브라질행을 강행했습니다. 브라질을 선택한 것은 남미태권도의 구심점이기때문입니다. 7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인줄 알았지만, 막상 가보니 너무 짧은 일정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항공을 이용해 카타르 도하에 도착,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상파울루로 갔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13시간 전체 24시간 비행이라는 긴 여행이었지만 새로운 대륙으로의 비행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브라질에 한인은 6만여명. 대부분 한인들은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그곳에서 정착해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한인들은 상파울루에 90%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봉헤치로는 한인밀집거주지역으로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미 남미태권도는 4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그동안 수많은 사범들의 노력과 성과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상파울루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김요준 상파울루태권도협회장의 안내로 100여km 떨어진 타우바테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도민체전과 같은 종합대회가 개최되고 있었고, 태권도는 이 대회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태권도 관계자들을 만나고 1박후 버스로 500여km 떨어진 리오(현지인들은 '히오'라고 함)로 이동했습니다. 리오 브라질육군체육학교에서 개최된 태권도지도자 강습회를 견학하고, 그곳에서 브라질태권도협회장인 김경렬회장과 22년간 회장이었던 김용민 전회장을 만나 2박3일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리오공항에서 비행기로 상파울루로 이동해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했습니다. 한인회, 각종 단체관계자, 브라질대한체육회, 무술산업관계자들을 3일간 만나면서 태권도와 태권도사범들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7월 29일부터 8월2일까지 브라질 태권도진출 4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10여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브라질 전역에서 모인 태권도 한인사범들을 만나 브라질과 남미의 태권도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태권도는 한인사회의 꿈을 준 매개체
브라질 유단자강습회 장면
브라질에 태권도는 60년대 후반에 유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태권도유입이라기 보다는 개인이 이민을 통해 학교에서 보급되었습니다. 브라질내에서 태권도의 정식 유입시기는 1970년 조상민사범이 진출하면서 시작됐다고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조상민 사범진출을 계기로 70년대 국내의 많은 사범들이 브라질에 진출해 상파울루와 리오를 중심으로 보급에 나섰습니다. 그 분위기는 80년대에도 이어졌지만 브라질의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잠시 태권도진출의 탄력을 잃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지 사범들에게도 다가왔습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태권도로 생업에 종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대부분의 사범들은 아내가 하는 사업 등의 힘으로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브라질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태권도사범만이 인정받는 묘한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고 합니다. 80년대 중반부터 많은 사범들이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고, 태권도가 아닌 다른 생업을 찾게 됩니다. 이런 브라질 태권도의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70년대 진출해 아직도 남아 있는 사범들은 태권도에 대한 열정을 쉽게 식히지 않았습니다. 각 주에서, 각도시에서 최고의 '마스트레'로 인정받으며 사회교육자로서 사범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브라질 국민 대다수가 축구에 열광하고, 일부가 배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브라질리안 주짓수와 카뽀에이라와 견주어야 하는 처지에서도 태권도는 꿋꿋하게 성장해 왔습니다. 지금은 거꾸로 까뽀에이라가 태권도의 시스템이나 기술을 모방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많은 나라,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 그리고 마약과 총기범죄가 극성을 부리는 브라질에서 한인들과 태권도사범들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4인가족 월 700여만원(한화)이 소요될 정도로 물가가 뉴욕보다 비싸 웬만한 수입으로는 살기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 한인들은 그 곳에서 더욱 끈끈한 정으로 더 큰 꿈과 '대한민국민'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 가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의 태권도 40년역사는 브라질에서 한인들의 꿈을 펼 칠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었습니다. 태권도사범들역시 한인사회에서 그 역할이 컸으며, 태권도는 브라질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소중한 문화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 일부 태권도인들의 갈등이 생겨나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한인사범들간의 갈등과 현지인 사범들간에도 갈등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보며 세계태권도본부인 국기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새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학교태권도로 제2의 도약기 맞아
학교태권도 지도자강습중인 김용민 전회장
태권도 사범들의 갈등을 뒤로 하고, 지금 브라질에는 제2의 태권도붐이 한인사범들에 의해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사범이 감독을 맡으며 지난 북경올림픽에서 최초의 동메달을 획득한 성과를 비롯해 최근 브라질 교육정부가 태권도를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있습니다. 장관이 직접 태권도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어서 이미 브라질 초,중,고 학교에 신청하도록 하고 있으며, 지금 5천여개교가 신청한 상태라고 합니다. 브라질 교육정부는 올말까지 1만여개의 학교가 신청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정책이 반영되기전부터 현지 태권도사범들의 노력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372개교가 시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만여개의 학교에서 태권도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지도하는 태권도사범들에게 정부에서 인건비도 지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이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기획한 사람은 김용민 전 브라질협회장과 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브라질태권도협회(CBTKD)를 22년간 이끌어 온 그는 지금 학교에 파견될 사범교육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또, 각 주에서 최고의 '마스트레'로 불리는 임창선, 강홍순, 김요준 등의 한인사범들도 적극적으로 이 사업에 동참하고 있어 브라질 태권도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풍부한 자원과 일년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후, 그리고 넓은 땅을 두고 하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적인 안정이나 경제적인 안정이 되어 있지 않아 불안합니다. 교육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환경에 태권도는 브라질인들의 정신교육이자 몸철학을 전해주는 교육소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브라질 현지인 사범들이 브라질태권도의 많은 영역을 점령해 가고 있는 시점에 한인 태권도사범들은 학교태권도라는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종주국 태권도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무카스원정대>가 미국 곳곳을 누비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남미에 혼자 조사를 간 것에 대해 남미의 수많은 사범들에게 미안함마저 들었습니다. 많은 한인사범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모습으로 브라질 사회를 이끌고 있는지 현지모습을 담아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사회에서 미국태권도가 거대시장이라는 인식이 앞서 자칫 남미에 대해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무카스원정대>가 제2의 원정은 남미태권도의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접근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번 브라질 조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지조사에 협조해 주신 여러 사범님들과 한인사회, 그리고 브라질 현지인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더욱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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