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애틀란타 최광조
![[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애틀란타 최광조](https://mookas.com/webzine_img0/con_img/news_image/hsdfaf.gif)
약골이었고, 몸도 왜소했다. 변화를 위해 선택한 무술 수련의 첫 과정이었던 태권도는 스무 살 청년이 되면서 생채기를 냈다. 100회 이상의 해외 태권도 시범을 마친 뒤에 남은 건 회복 불가능 판정을 받은 팔, 다리, 목 부위의 관절들이었다. 더 이상 당신이 좋아하는 태권도를 할 수 없어 태어나 처음 사랑에 빠진 이것(태권도)이 미워졌다. 몇 년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나를 위해 시작한 태권도가 나를 헤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성장통을 겪으며 ‘최광도(C.K.D)’ 라는 무술은 탄생했다. 이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시티의 최광조(69) 세계최광도연맹 총재가 살아온 길이다. 미국 무술계의 여러 군소 단체 중의 한 갈래 정도이겠거니 했던 취재진의 의구심은 논리, 실용, 대중성 등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광도를 직접 체험하게 되면서 사라졌다. 열두 살, 대구 강무관 권법도장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수련 일기는 단기 4290년(1957년)을 거쳐 군대에서의 오도관 생활, 1987년 최광도라는 건강 무술 탄생으로 이어졌다.

최광도 총재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선 무술, 태권도, 최광도로까지 이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들어보고 싶습니다.“12살 때였습니다. 당시 무술을 도장에서 배우기란 거의 불가능했죠. 워낙에 약골이었고, 몸도 왜소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종종 가라테라고 하면서 몇 가지 동작을 알려주시곤 했습니다. 이후 대구의 한 권법 수련도장에서 이동주 관장으로부터 무술을 배웠습니다. 단기라는 용어를 꼭 쓰고 싶은데요. 단기 4290년도에 창무관을 다녔습니다. 검은 띠까지 획득했습니다.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운동을 못하게 되었구요.
다음은 군대에서의 태권도일기입니다. 보병 20사단에 있으면서 두 명의 태권도 교관을 뽑는 시험에서 운이 좋게 선발되었습니다. 이때 최홍희 장군의 태권도를 접하게 되었죠. 그 이전까지는 권법을 수련했습니다. 당시 기억나는 사람으로 이동주 관장과 부산의 조증덕 관장이 있었습니다. 해외 사범으로의 활동 계기는 당시 최홍희 장군을 찾아가면서 시작되었죠. 당시 천지, 단군 등을 제가 직접 시연하며 실력을 검증받았죠. 이후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순회시범하며 태권도 보급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최 총재가 북한으로 넘어가면서부터 관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 이렇게까지 태권도 보급에 앞장선 당신이, 최광도라는 무술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무릎 관절 등 온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리한 격파와 품새 시연이 원인이었죠. 매일 허리와 다리가 퉁퉁 붓고 아팠습니다. 통증에 눈물이 나더군요. 유명한 중국 한의사들로부터 생약과 침 치료를 받으며 치유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 비자를 받고 몸을 치료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영주권을 받고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저의 주치의인 닥터 심 박사가 연골이 파괴되었다고 하더군요. 당시가 1970년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만하면 태권도 다시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웃겼죠. ‘젊은데, 다른 일 알아보세요’고 하더군요. 태권도 사범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죠.”
최 총재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시 최 총재의 머릿속은 온통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해결책 마련을 위한 전문 공부를 시작했다. ‘몸’에 관해서 말이다. 이와 함께 재활을 위해 단순하지만 걷기를 시작했다. 그냥 걸었다. 동시에 스트레칭과 복식 호흡을 매일 반복했다. 이후 최 총재는 1974년 일리노이주 락포드에 정착했고, 3년여의 시간이 지난 1975년에 잃었던 건강을 되찾았다. 바로 이때부터 최 총재에근 욕심이 하나 생겼다. “나는 건강을 찾았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건강을 위한 운동은 무엇이 있을까?”,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는 무술은 없는가?”

야외에서 수련 지도 중인 최광도 총재
- 최광도 무술의 탄생 배경은?
“무리하게 관절을 뻗는 저의 발차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련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태권도를 하면서 신체 모든 관절과 근육을 상하게 한 것이죠. 최대한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웰빙(well+living)무술이 필요했습니다. 관절을 무리하게 펴지 않는 운동이었죠. 최광도를 만들기까지 1977년부터 1986년까지 총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최광도라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무언가 검증이 필요했습니다. 조지아주립대학의 벤 존슨 바이오 미케닉 소장을 모시고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자기도 손을 탁 치면서 ‘바로 이겁니다’라고 손뼉을 치던 당시의 상황을요. 이후 1992년도에는 콜로라도주립대학에서도 최광도라는 무술이 인체에 어느 정도 유익한 운동인가를 실험했습니다. 결과는 합격점이었죠.”
최광도 총재는 태권도 수련 당시에도 그후에도 굉장한 신체적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격파는 반드시 다친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유도 당시의 '메모리' 때문이다. 태권도 동작 자체가 일본 가라테 형태였다고 하는 그는 매일 힘쓰는 동작을 반복하면 반드시 무리가 따른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옆차기를 예로 들며, “나는 그동안 나의 무릎을 찼다. 발차기를 하면서 나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 최광도의 핵심은?
“태권도와 최광도는 완전히 다른 무술입니다. 실전을 추구하면서 신체의 무리를 최소화하는 무술이죠. 되도록이면 부상을 배제하려는 운동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죠. 또 현대 과학을 기초로 합니다. 해부학, 생리학 운동학, 인체공학 심리학, 신경 생리학이 바탕입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죠. 바로 호신입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무술이기도 합니다. 모든 동작이 순차적입니다. 주먹을 내지를 때는 먼저 허리가 들어가고 가슴이 스트레칭 되면서 팔꿈치가 앞으로 나간 뒤, 목표물을 가격하는 수순입니다. 야구를 할때, 대퇴골이 먼저 들어가고 가슴, 어깨 팔이 차례대로 힘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죠. 최광도는 순차적인 운동입니다.”

최광도 총재가 직접 시연하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의 린 러셀(여, 미국) 아나운서는 잘 알려진 ‘최광도 마니아’이다. 그의 오른손에는 최광도의 신조인 ‘필승’이라는 한글 문신이 새겨져 있을 정도이다. 그의 수많은 제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또 한 명의 수련생은 바로 조지 포먼의 수석트레이너 릭벤(남, 미국)이다. 그가 1주일간 최광도를 접한 뒤 한 말은 명대사다. “30년간 찾아 헤매던 무술이 바로 여기 있다.”- 최광조라는 사람은 어떤 무술을 가르치는 무술계의 원로입니까?
“수련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 무술을 하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수련생이 무술을 하며 건강해지는 것, 또 건강을 유지,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지도하는 것이 최광도의 핵심이며 최광조의 중심입니다. 태권도 역시 마찬가지겠죠. 건강을 위한 무술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 만큼은 확실합니다. 태생은 태권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광도입니다.”
한국에서는 3년 전부터 최광도라는 간판을 건 도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 상암동의 배병환 관장이 운영하는 최광도 도장은 현재 성인만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는 10월 10일, 한국 체육대학에서 열리는 국제무도세미나에 강연자로 나서는 최광도 총재. 그는 '죽기전에 하고 싶은 일'을 묻는 기자의 당돌한 '물음표(?)'에 “태권도가 시합화 되면서 잊고 지낸 90%의 수련인구를 저는 ‘최광도’를 통해 잡아내고 싶습니다”라며 운을 뗀 뒤 이렇게 마무리했다. “대한민국의 무술을 세계에 보급하고 싶습니다. 최광도는 조국의 무술입니다.”
댓글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