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아칸소 이행웅(이선)
![[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아칸소 이행웅(이선)](https://mookas.com/webzine_img0/con_img/news_image/hssd.gif)
대한민국에서 태권도인의 성지가 첫 삽을 뜨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그랜드마스터 故 이행웅(李幸雄) 미국태권도협회(ATA,America Taekwondo Association) 회장. 아칸소 리틀록 포레스트힐에 위치한 ATA본부의 곳곳에는 아직도 그의 손길과 정취가 묻어있다. ATA는 태권도 역사상 민간 최대의 독립 조직. 이행웅 회장이 남긴 이 희대의 걸작은 10년이 지난 오늘, 세계로의 비상을 준비 중이다. 생전에 강원도 속초 설악산의 울산바위를 중심으로 태권도공원을 만들어 조국에 선물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던 이행웅. 지금 ATA 발전의 토양은 이행웅의 신조 “Today not possible, Tomorrow possible"에서 시작됐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를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는 없지만, 특별취재팀은 아직도 이행웅이 살아 숨쉬고 있는 흔적을 쫓아 ATA 본부를 찾았다. 이곳에서 취재진은 못다 이룬 이행웅의 '절반의 꿈'을 채워가는 아내 이선 ATA 회장(이사장)을 만났다.

이선 회장
- 아내 이선으로 바라보는 고 이행웅 회장의 태권도와이 인연이 궁금합니다“회장님은 14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어요. 6.25 전쟁 이후 한국에는 불량스러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이는 그때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서 태권도를 배웠어요. 특수부대 태권도 교관으로 복무를 했구요. 마땅히 운동할 곳이 없어 군에 가기 전까지는 길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여러 무술을 수련했다고 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청도관에서 운동을 배웠구요. 군 제대 이후에는 도장을 차리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너무 가난했지요. 동생의 약혼반지를 빌려 오산 판자촌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비행장이 있던 도장의 근처에는 미국 군인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아주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요. 바로 리차드 리프라는 군인이었습니다. 그의 초청으로 1960년대 초, 방문 비자로 처음 미국 땅을 밟게 되었어요. 현지에서 도장 개관을 하는 데도 성공했구요.
하지만 신분이라는 벽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에서 추방을 당하게 되었어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무척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회장님은 당시 상황을 ‘여보,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저 수많은 불빛 가운데 내 몸 하나 의지할 곳 없는 게 너무 서러웠어’라고 회상하곤 했어요. 한국에 돌아간 회장님에게 태권도인들은 격려와 칭찬 대신 실패자의 낙인을 찍었답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구하죠. 미국 현지에서 이 회장의 가르침을 받은 저명한 상원의원이 그의 취업 비자 발급을 도왔습니다. 다시 미국에 돌아갈 확률이 0%에 가까웠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죠. ”
150살까지 살겠다며 건강을 자신하던 이행웅은 2010년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평소 잔기침을 자주했지만, ‘이상 없다’는 진단만 받았을 뿐이다. 1년에 두번 받는 건강검진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만큼 어둠은 급작스레 그를 덮쳤다. 2000년 3월 갑작스런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수술조차 필요 없다는 주치의 매클린의 진단에 ATA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가족들의 권유와 절규속에 한 줄기 불빛을 보며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7개월여 지난 그해 10월, 끝내 절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만했다.
- ATA 회장 이선으로 바라보는 고 이행웅의 태권도에 대한 열정은 무엇입니까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태권도를 생각했던 분이었죠. 새벽 두, 세시에도 태권도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답니다. 태권도가 인생의 전부였어요. 아이들이 주말에는 아버지와 함께 하고 싶어 했지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그에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많이 부족했죠. 그의 생을 표현하기에 세상 어디에도 ‘태권도’만한 단어는 없습니다”
- 고 이행웅 회장의 태권도 철학은 무엇이었습니까?
“‘무도 태권도가 세계를 지배한다’, ‘사범들이 잘살아야한다’였습니다. 무도 태권도와 이를 가르치는 사범을 가장 소중히 하셨죠. 여기에 인간 완성을 위한 인성 교육이 조화를 이루는 구도였죠. 이 삼박자를 가장 중시 했어요.”

아칸소 리틀락에 있는 ATA 본부
- 1977년 이행웅 회장은 초기 창설 때부터 함께한 동반자와 결별했다. 이행웅 회장은 ATA 본연의 무도정신을 이어가자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태권도를 사업적으로 접근해야한다며 첨예하게 맞섰다. 당시 이행웅 회장이 한 말이 아주 명언이다. “저는 당신보다 부자입니다. 나에겐 제자들이 있습니다. 제자가 돈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이후 동반자였던 그가 개별 조직을 만들어 이탈하고 난 뒤, 1986년까지 이행웅 회장은 한국인들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 ATA의 현재진행형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ATA를 말하는데 있어 1980년대부터 시작한 송암태권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송암이란 소나무와 바위를 말합니다. 일상의 모든 생활을 의미하기도 하죠. 품새 역시 인간의 삶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녹여 내었습니다. 저희만의 독창적인 품새를 만들고 교육체계를 정립한 것이죠.”
- 이행웅의 본격적인 미국 태권도 정착 과정은 어떠했나?
“처음 미국에 와, 차비가 없어 큰 트럭들이 동네 사거리에서 커브를 돌때 올라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한참을 가다가 운전수에 내려달라고 하면 기절할 듯 놀라서 내려주곤 했데요. 처음에는 시애틀에 왔었죠. 그렇게 힘들게 시작된 미국생활을 통해 도장을 개관하게 된 것입니다. 1977년에 아칸소에 정착을 했고, 1978년에는 700여 명이 참가하는 첫 세계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너무 긴 이야기인지라 결과적으로만 보면 ATA는 이후 해마다 2만 여명이 모이는 ATA세계대회를 개최했고, 또 미국 내 1,500개의 회원 도장을 이끌어 갈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현재 ATA는 세계 20개국, 총 30만 명의 유단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 이행웅 회장에게는 상당히 많은 수식어가 따릅니다.
“세계 태권도인들은 이행웅을 ‘대통령의 사부’라고도 부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에 태권도를 지도하셨죠. 이후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으로 당선 된 뒤에, 103명의 백악관 축하연 명단으로 선정되어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아주 잊을 수 없는 추억인데요, 이날 클린턴 대통령이 이 회장을 소개하면서 ‘이 작은 체구의 사람이 저의 마스터입니다. 아마 제가 송판을 여러장깼다면 많은 의원들이 저를 더 따랐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주 재밌는 일화죠. 아칸소에서는 매해 6월 9일이 ‘이행웅의 날’이기도 합니다.”

생전 모습 그대로의 이행웅 집무실
- 못다 이룬 이행웅 사범의 꿈은 무엇입니까“한국에 꼭 다시 가고 싶어하셨죠. 조국에 태권도공원을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속초의 설악산 울산 바위를 중심으로 태권도공원을 꿈꾸셨죠. 직접 당신이 조감도를 제작했습니다. 수차례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 설득에 나섰지만, 모두들 ATA와 이행웅 회장을 경계했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죠.”
현 아칸소 리틀락의 ATA 본부에는 고 이행웅 회장이 만들어 놓은 태권도공원 조감도가 걸려있다. 99개의 계단을 오르고, 세계 여러 무술이 한데 호흡할 수 있고, 세계의 종교 역시도 하나 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져 있는 진정한 태권도 성전의 청사진이 걸려있다.
- ATA의 미래, 듣고 싶습니다.
“많은 태권도 단체들의 실패한 선례가 있습니다. 바로 세습이죠. ATA의 미래를 위해서는 각 분야의 실력 있는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TA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무도와 사업이죠. 무도는 ATA의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그랜드마스터가 해야 합니다. 반면 ATA의 사업과 운영 전반은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경영가와 전략가 있어야겠죠.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ATA의 안정적 성장을 꿈꾸어 봅니다.”
이선 회장은 대한민국을 뿌리로 ATA의 세계화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출발보다는 조금 더디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뻗어 나가겠다는 의지다. 남은 ATA의 미래를 이 한마디로 요악해 본다. ‘종주국에서 세계로'.
댓글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