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아이오와 정우진
![[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아이오와 정우진](https://mookas.com/webzine_img0/con_img/news_image/hhsdfa1.jpg)
‘39살’ 아이오와 최초의 태권도장, 정우진의 태권도, 피트니스센터

빈민가 한 가운데 위치한 정스태권도장의 외부
시큼한 땀내음이 코를 찌른다. 인조매트 대신 회색 카펫이 깔려 있고, 도장 사방 벽에는 역대 사범들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있다. 오후 5시 30분이 되자 하얀 도복을 입은 수련생들이 하나둘 도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도장 인근 지역 주민들 중 흑인 거주 비율 3분의 2, 월레스 쿠퍼(54,미국) 수석사범 역시 흑인으로, 이곳 정스태권도장은 여전히 흑인 빈민가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이민 21개월 만인 1972년 9월 1일, 이곳 아이오와 시더래피드에 처음 도장을 개관했으니, 올해로 도장 나이 ‘39살’, 한국으로 치면 불혹의 나이다. 뉴 라이프 피트니스 월드(미 8개 주 3만여 회원 보유) 사장, 마운틴 탑 백화점 대표, 태권도타임즈(150여개국 배포) 회장의 명함을 가진 정우진(68) 사범이 바로 이 허름한 도장의 주인이다.
전형적인 1세대 이민자이자, 이제는 종주국 태권도인들의 미국 코리언드림의 롤 모델이 되어버린 정우진. 도복을 입은 채 14일 취재진을 맞은 그는 “나태해지려는 나를 채찍질하는 곳”이자, “미국생활 39년의 뿌리”라며 아이오와 최초의 태권도장을 소개했다. 무카스 미국 특별취재팀이 300에이커 대지의 아이오와 옥수수밭에서 시작된 정우진의 꿈을 추적해봤다.
-태권도인들이 당신을 ‘작은 거인’ 정우진이라 부른다. 이를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태권도 때문이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라면 태권도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초심을 잃을 때면 도복을 입고 도장을 찾는다. 38년전 미국에 건너와 주유소에서 일을 하며 기름때를 묻히며 꿈을 키우던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을 준 건 태권도였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세 명의 직원을 상대로 처음 벌인 생애 첫 태권도 벽돌격파 시범은 태권도장 개관의 불씨가 되어주었고, 오늘날 대규모 비즈니스를 가능케 한 초석이 되어 주었다. 살기위해 태권도를 했다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태권도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너무 깊다.”
정우진의 저서, ‘가난과 고약은 인생의 보약이다’를 읽었다는 메리(여,38)는 4일 오후 도장에서 그를 보자마자 부둥켜안았다.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언을 듣고 남은 내 삶의 새 항로를 설계하고 싶다”며 메리는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때마침 수업이 시작되었고, “Look at your heal!(발특을 보라)” "Louder, Louder(크게) 기합!"을 외치는 그랜드마스터(정우진)의 함성이 들려왔다.

정우진 사범(왼쪽)
-정스태권도장은 정우진에게 어떤 의미인가“38년은 꽤 긴 시간이다. 정스태권도장을 이처럼 오랫동안 지켜온 것은 나에게 인생의 중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꿈을 시작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을 이루는 장소가 바로 이 정스태권도장이다.”
-아이오와 빈민가 한 가운데에 위치한 태권도장이다.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은데
“초창기 열악한 환경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흑인들이 사는 이곳에서의 태권도장이 명맥을 이어오기까지는 인내와 지도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푼 꿈을 안고 정스태권도장을 그랜드오픈하던 날, 수련생은 단 '한명'이었다고한다. 덴 부스(남)라는 회사원으로 그것도 3개월에 85달러를 내는 ‘약정 수련생’이었다. 추후에 세 명의 수련생이 들어왔지만, 이 역시도 이민 초기 주유소 아르바이트 시절의 동료들이었고, 또 무료회원이었다. 힘 꽤나 쓴다는 불량한 흑인 청소년들이 BB탄으로 창문을 쏘고 도장에 난입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사건도 있었다.
-정우진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 8개주의 피트니스센터 건립이다
“70년대 후반부터 태권도장의 호황이 시작됐고, 좀 더 넓고 큰 그릇에 태권도를 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태권도와 헬스크럽을 연계하고 싶은 무도 사업 확장의 꿈도 꾸게 되었다. 하지만 꿈을 펼칠 장소 즉, 부지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며 끙끙대고 있었다. 그래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소망은 내게 현실로 찾아왔다. 마음을 다해 가르친 제자 한 명이 개발예정인 부지의 구석에 작은 평수의 땅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믿기지 않았다. 그곳이 바로 현재 아이오와에 있는 태권도와 피트네스센터가 혼합된 미국 내 첫 번째 '복합도장의 탄생'이었다. 목조 도장(정스마샬아츠)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들어 어려움을 겪던 나에게 최상의 기회였다 ”
부동산 개발업자인 제자 크래머쉬의 가족은 구성원 모두가 정스태권도장의 블랙벨트 소유자이다. 정우진 회장이 오늘날 ‘피트니스월드’라는 대규모 헬스크럽을 운영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을 제공해준 제자가 바로 크래머쉬이다. 이후 12년간 함께하며 헬스크럽의 모든 마케팅과 사업 확장을 함께한 마이크 오키프와 18년간이나 회사의 살림살이를 맡아온 랜디 스눅은 정우진의 좌우 날개가 되어 주었다. 지금도 정 회장은 은퇴한 이 두명에게 회사의 컨설턴트 직책을 주고 급여를 주고 있다.

정우진 사범이 제자들과 품새 수련을 하고 있다.
-태권도장 보다는 피트니스 사업에 비중을 두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계산하면 헬스크럽은 95%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반면 태권도는 5%의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헬스크럽에 오는 99%의 사람들이 태권도를 알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 미국 내 각 피트니스센터 내에 태권도장을 마련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도장을 지키고 태권도를 감싸고 싶었으니까”
정 회장은 아이오와시티(1986), 사우스캐롤라이나(1988, 1991), 플로리다(1990) 등지에 총 8개의 피트니스센터를 건립했다. 피트니스센터와 태권도장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하며 20년 넘게 피트니스센터 내 태권도장을 필수적으로 설치해왔다. 현재는 인력 부족에 따라 많은 도장을 철수해야했지만, 이 두 가지의 '섞임'과 '조화'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은 후배들에게 귀감으로 또 자극제로 전달됐다.
-한 기업의 회장인 정우진에게 묻고 싶다. 사업가로서 성공 비결을 말해 달라?
“미국에서 피트니스센터 건립은 백인들만의 사업이었다. 은행에서도 코웃음치며 대출을 잘 해주지도 않았다. 방법은 있었다. 여기에 미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했다. 한국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공을 위해서는 멀리 내다보는 지혜와 겸손의 미덕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직원들을 섬긴다는 자세로 지금까지 일을 해 왔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돈이 없어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주유소 옆 가까운 곳에 있는 KFC 가게가 있었는데, 배가고파질때면, 그 가게 앞에 있는 나무를 부둥켜안고 그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 금요일은 조금씩 모은 돈으로 KFC에서 치킨 하나를 사 먹었다. 아까워서 뼈까지 혀로 살살 돌려 가면서 먹었는데,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나무는 지금 일명 ‘정우진 트리’라는 이름으로 기념물이 되어 있다. 지금도 내가 교만한 마음이 들면, 이 나무에 와서 가만히 껴안고 마음을 다 잡는다.”
-마지막으로 태권도 원로 정우진에게 묻고 싶다. 당신을 보는 수십만의 젊은 태권도인들에게 허심탄회 문장 한수 부탁한다
“초기 정착 과정에서 나는 이 한 가지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미국을 알고 미국인을 알고 태권도를 알기까지는 돈에 집착하지 않았다. 다소 투박하지만, 진실되려고 노력했으며, 기교보다는 태권도를 배우는 각자의 환경에 맞게 정성을 다해 가르쳤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다. 지역사회에의 일원으로서도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그 점을 사람들이 알아주었다고 본다. 만약 돈만을 목적으로 미국에 와서 태권도를 가르치려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