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원, 4월의 대란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400여명의 용인대, 경희대 태권도학과 학생들이 어제(20일) 밤 10시 농성을 벌이던 국기원을 빠져 나와 완전 해산했다. 16일 처음 농성을 시작한지 5일째만의 일이다.
학생들은 국기원 엄운규 부원장이 학생들의 요구사항인 대한태권도협회 김운용 회장과의 면담을 중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일단 농성을 거둬들였다.
용인대 윤승훈 태권도학과 학생회장과 경희대 이동찬 학생회장은 용인대 류병관, 양진방 교수와 경희대 전익기 교수 그리고 삼성에스원의 김세혁 감독과 함께 어제(20일) 오후 2시 반 경 엄 부원장과 두 시간여 동안의 면담을 갖고 이 같은 약속을 얻어 냈다.
엄 부원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이번 일에 대해서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며 "김운용 회장과의 면담을 중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학생 측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경희대 이동찬 태권도학과 학생회장은 "오는 23일(월요일)까지 이러한 면담 요청이 성사되지 않을 시에는 전국에 있는 태권도학과 학생들과 연계한 대규모 집회도 생각 중이다"고 말해 김운용 회장 면담 성사여부에 따라 이번 사태가 자칫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2001년도 국가대표선발 최종전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 용인대 학생과 경희대 학생들은 손을 맞잡고 두 차례에 걸쳐 대한태권도협회 현 집행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경기장을 점거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 날 오전 9시 10분까지 협회 측이 약속한 불공정 판정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협회 측의 공식 발표가 없자 용인대와 경희대 태권도학과 학생회장은 오후 1시 50분 경 송봉섭 대한태권도협회 행정담당 부회장과 면담을 가졌다.
그러나 학생회장 측은 송 부회장의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처벌하겠다"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신뢰하지 못했다. 이에 경희대 학생들은 오후 2시 반 경 경기장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협회 측은 한 발 앞서 경희대 학생들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통하는 출구를 모두 철문으로 막았다.
하지만 관중석으로 돌아간 약 130여명의 경희대 학생들은 관중석에서 직접 경기장으로 뛰어내려 경기장을 점거하였다. 이어 10분 뒤에는 약 250여명의 용인대 학생들이 경희대 학생들과 합세, 경기장을 완전 장악했다.
용인대와 경희대 학생회장은 "규정에 의한 공정한 심판 판정을 하라", "태권도 종주국 위상은 어디로 갔나? 우리는 깨끗한 태권도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직접 작성한 우리의 입장을 낭독했다.
경기장의 시위가 점점 과열되자 협회 측은 오후 2시 50분 경 "한 시간 내로 해산하지 않으면 모든 경기를 무기한 연기하고 내일까지 명단을 넘겨야 하는 동아시아대회에 출전할 선수들을 기술심의위원회와 이사회 회의를 거쳐 선정해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용인대와 경희대 학생들은 오후 3시 40분까지 약 50분 간 집행부 공개사과와 전무 이사 퇴진 그리고 기술 심의회 임원 전원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한 후 "우리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려주었다. (집행부로부터의) 답변을 다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농성을 풀고 관중석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강영선 경기 1분과 위원장은 "심판들의 명예가 실추되었다. 학생들의 사과가 없으면 심판도 경기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며 곧바로 경기장에 있던 심판들은 모두 퇴장해버렸다.
이어 경기는 오후 5시 15분까지 중단되었다가 방송석에서 "용인대와 경희대로부터 심판이 사과를 받았다"라는 발표와 함께 경기 재시작을 알렸으며 퇴장했던 심판진은 경기장으로 다시 들어와 경기가 속개되는 듯했다.
그러나 용인대의 류병관 교수와 경희대의 전익기 교수가 "우리는 사과한 적 없다. 우리를 어용교수로 만들 일 있나"며 거칠게 항의하자 심판진은 또 다시 오후 5시 18분 경 퇴장하는 촌극을 벌였다. 경기 운영부도 "우리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못하겠다"며 오후 5시 25분 경 퇴장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동아시아대회에 나가는 선수들은 선발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심판과 경기운영부는 오후 5시 50분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 경기를 속개했다. 방송석에서는 "용인대와 경희대에서부터 사과가 있지 않았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어 경기는 계속되어 오후 9시 경 동아시아대회에 나가는 대표선수들을 모두 선발하고 남자부 헤비급 결승전 등 총 4개 체급의 결승전을 남겨 놓았다.
그러나 체급별 결승전은 바로 속행되지 않았다. 심판진이 또 다시 학생들의 사과를 요구하며 퇴장한 것이다. 당장 그 다음날 오전까지 제출해야할 동아시아대회 출전선수들을 모두 선발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학생들의 사과 없이 경기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기장에 있던 선수는 또 다시 언제 있을지 모르는 경기를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이 때 삼성에스원의 김세혁 감독은 국기원 중앙에 위치한 로얄석으로 올라 가 "이런 엉터리 시합은 처음이다. 맨 정신으로 이런 대회를 지켜 볼 수가 없어 소주 한잔 했다"며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이다. 우리가 못한 일을 해줘서 고맙다"고 외치며 관중석에 있던 학생들에게 큰 절을 했다. 이 때 김 감독의 볼에는 눈물까지 흘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학생들은 "김세혁, 김세혁"을 외치며 열광했으며 용인대와 경희대 학생회장은 경기장으로 내려와 김세혁 감독에게 "진정한 용기를 보여줘서 고맙다. 진정한 태권도인이다"라며 답례를 했다.
이렇게 경기장의 분위기가 학생들 쪽으로 흐르자 퇴장한지 45분만인 오후 9시 45분 경 심판진들은 다시 경기장으로 입장해 경기를 속행, 결승전을 치렀다. 오후 10시 40분 경 모든 일정은 끝났으며 이는 경기가 시작한지 꼭 13시간 40분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시상식이 막 시작되던 오후 10시 45분 경 용인대와 경희대 학생들은 협회 측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경기장으로 난입, 경기장 주위를 에워쌌다.
이어 학생들은 시상식이 끝난 후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는 심판진과 협회 관계자들의 앞을 막아 섰고 약 5분 후에 길을 터 주었다. 이 때 윤승훈 용인대 학생회장은 "태권도 연극 잘 봤다", "이런 연극은 다시는 못 만들 것"이라고 말하며 심판진과 협회 관계자들에게 조소와 야유를 보냈다.
이어 윤승훈 학생회장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이번 대회와 관련된 협회 측 인사는 모두 퇴진해야 할 것"이라며 "김운용 회장이 만나 줄 때까지 농성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01년도 국가대표선발 최종전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 약 380여명의 용인대와 경희대 학생들은 이렇게 심판진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가 빠져 나간 국기원을 지키며 밤새 농성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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