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우 칼럼] 한국 합기도 바로 알자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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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우 전무이사
생생한 당시의 상황은 내용이 다소 긴 까닭으로 4부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지난 3부에서 최용술을 중심으로 대동류의 한국유입설과 한국합기도의 역사는 1946년 최용술이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국내에 제자를 양성하고 이들이 한국합기도 재창출됐다는 것이다. 특히 지한재와 김무홍의 경우 기존의 유술적 성격이 강한 합기도에 족술(발차기)을 가미시켜 새롭게 한국형 합기도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후 한국 합기도는 일본의 아이키도(合氣道)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1968년 4월에 지한재를 총관장으로 하는 대한합기도협회가 결성되었으며, 합기도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당시 성무관의 지한재를 중심으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1973년 10월 3일에는 대한민국합기도협회(통합)가 문교부등록 51호로 등록됐다. 그리고 2년 후 1975년에는 지한재가 상임부회장에 올랐으며, 1980년에 다시 회장이 된다. 그 후 1984년 지한재가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다. 1985년 당시 5공화국, 전경환씨에 의해 합기도단체들이 통합을 이루는데 그 명칭은 ‘새마을중앙합기도협회’로 창립된다. 이러한 통합의 움직임은 잠시였으며, 1987년 ‘대한합기도협회’로 창립되어 1990년 1월 15일 ‘사단법인 대한합기도협회’로 창립된다.
대한합기도협회의 주축을 이루게 되는 성무관의 초창기에는 경북 안동의 유영우가 대표적이다. 그 이후 상경한 비룡관의 황덕규(현 신무합기도협회), 이태준, 김용진(을지관, 작고), 김명룡(진중관), 김영환, 한봉수(작고), 윤기철(캐나다거주, 검무관), 최세호, 명광식(미국거주), 명재남(작고), 권태만(미국거주), 김진팔(미국거주), 강정수, 김종택 등이다. 또한 김무홍을 중심으로 한 신무관계열은 김정수, 이민영, 김무정, 나인동, 신동기, 이주방, 이동우 등 이라 할 수 있다.
대한기도회의 경우에는 1963년 9월 2일 합기도 단체로서는 국내 최초로 문교부에서 사단법인 대한기도회가 인가를 받게 된다. 1975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세계국술협회를 조직 산하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1983년 법인감독기관을 문교부에서 체육부로 이관했다. 또한 1987년 11월 28일에는 대한기도회 산하에 무림회를 창설하게 된다.
국제연맹합기회(현, 재남무술원)의 경우에는 명재남에 의해 창설됐다. 국제연맹합기회는 1959년 5월 병영도장을 개설한 이후, 주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관세를 넓혀 왔으며 1962년 2월에 인천에 합기도 본부도장이 개설했다. 이후 1969년 11월 11일 ‘한국합기술회’가 창설되어 문교부 등록 32호가 됐다. 1972년에는 ‘한국합기회’로 단체명칭을 개칭하면서 서울시 중구 북창동에 사무국을 두게 된다. 이후 1973년 ‘대한민국합기회’로 통합했다(문교부등록 51호). 이 통합기구가 다시 분산되면서 1974년 ‘대한민국합기도(통합)협회’로 통합되었다가, 1981년 3월 ‘국제연맹합기회’(사회단체) 창설됐다.

2010 무카스배 합기도 대회 모습
이들 지한재의 성무관계열과 김무홍의 신무관계열, 그리고 명재남의 국제연맹 합기회는 한때 대한민국합기도(통합)협회로 통합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바 있었다. 그러나 국제연맹 합기회는 이후 통합이 결렬된다. 이후 1985년 제5공화국 시절 새마을합기도연합회에서 정치적으로 무조건적 동참을 요구해 이를 거부하자 3년에 걸쳐 단체가 와해될 지경까지 탄압을 받았다. 1990년에는 경기도 용인에 야외수련장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게 된다. 1993년 8월 3일 ‘국제연맹합기도’로 사회단체를 등록하였으며, 1993년 합기도세계본부를 이전(용인)하여 1995년 3월 16일 용인무술원 건물이 건립했다. 이후 2000년 9월 19일 재단법인 재남무술원으로 허가됐다.
한편 서인혁을 중심으로 하는 국술원 계열은 국술(國術)이라는 무도명칭에 많은 논란을 겪으면서 부산 지방을 중심으로 관세를 넓혀 왔다. 1961년 정식으로 대한국술원이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1974년 서인혁의 도미(渡美)에 따라 미국지역에서 큰 활약을 하여, 국내 무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국술원은 합기도의 관절기를 포함한 독특한 형(形)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지방을 중심으로 관세를 넓혀 왔으며 국내 합기도기구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국술원에는 서인선(현, 한민족합기도무술협회 총재), 김창수, 조자룡, 이한철 등이 있다.
이 외에 화랑도 협회의 이주방, 신무관 계열의 국술관 김우탁, 진종문(현, 흑추관협회 총재), 등 독자적인 계열임을 주장하고 있어 명확한 흐름이 요구된다. 앞으로 많은 발전이 기대되고 있으나 명칭과 관련된 문제와 합기도와의 관계설정에서 많은 의문을 제기되는 등 또 다른 국내무도의 문제점을 표출하는 소지가 있으므로 숙고해야만 한다.
한편 최용술은 대구에서 다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대표적으로 초기 제자인 서복섭, 서병돈, 장승호, 문종원, 한풀의 김정윤, 김윤상 등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술계 합기도는 최용술의 술기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통과 전통을 주장하며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특히 최용술을 도주라는 명칭과 직제자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국내 합기도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유술계열의 합기도는 나름대로 한국합기도 술기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인물과 단체들의 발전과정에서 54개의 단체가 파생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합기도단체들의 명칭과 법인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즉 세계, 국제, 한국, 대한, 협회, 연맹, 연합 등의 용어를 너무 쉽게 쓰고 있다. 대부분의 단체는 실제로 특정 지역을 대표하거나, 몇 개의 도장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으며, 단체명과 단체의 연합이 너무 급변하는 가운데 사회단체 또는 사단법인이 대부분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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