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댐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용인대 어느 학생이 말하는 우리는 왜 일어섰는가?
지난 16일부터 벌어지고 있는 2001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은 용인대 학생들의 시위와 농성으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 16일 국기원 코트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바 있는 용인대 태권도학과 학생들은 몇 가지 요구를 내세우며 코트를 점거하고 농성했다. 그들의 요구는 현 대한태권도협회 이사진과 기술심의회 임원 전원 퇴진.

기자는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보통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과연 이들은 왜 일어섰는가? 태권도경기에서 심판들이 심각한 오심을 범하고 단합해 판정 결과를 뒤바꿔 버린 일이 그 동안에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됐었는데 왜 이제야 문제삼고 일어섰는가를 묻고 싶었다.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해준 학생은 현재 4학년이고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생활을 경험했다. 본인의 요구에 따라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과정이나 절차가 옳지 않다면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들의 시위는 판정 자체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판정이 나오는 절차나 과정이 옳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판들이 눈에 띄게 오심을 하는 것은 자신들이 경기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서 두말할 것도 없고 선수들 사이에서는 경기가 열리기 전에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루머도 많이 들린다고 한다.
"어떻게 학생인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만도 못하게 심판을 보시는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라 할 수 있는 국가대표 최종선발전 심판을 맡길 수 있습니까?"
그는 또한 자신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무엇이 경고사항이고 감정사항인지 무엇이 득점이고 아닌지도 심판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 학생의 표현이 다소 지나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번 대회에서 심판들이 자주 오심을 한 건 분명해 보인다. 기자가 보기에도 들어간 득점이 인정이 안되거나 득점이 아닌 공격이 득점으로 표시되는 것을 여러번 봤다.
"끝까지 싸워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위나 농성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한두 해 쌓여 일어난 일이 아닌데 과연 해결이 가능할까? 이 의문에 대해 역시 학생다운 대답을 한 것이다. 학생들이 어디 끝까지 다 생각해보고 행동을 하나? 그것이 옳은 일이면 성패에 상관없이 행동하는 것이 학생다운 태도라고 세계사는 가르치고 있다. 그는 특히 태권도를 하는 사람은 불의를 보면 못 참아야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나 관중석에 앉아 있는 다른 팀 선수들도 우리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다른 학교 선수들과도 안면이 있는 그는 다른 학교 선수들도 자신들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선수들이 더 절실히 느끼고 있는 문제일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저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경희대나 한체대 학생들도 자신들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항의를 하고 대규모 응원을 하니까 심판들이 위축돼서 우리 용인대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해 경희대 선수가 억울하게 진 경기도 있다"고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에 가서 태권도를 하고 싶은 이유도 워낙 우리 사회와 태권도계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미국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사람마다 다들 이유가 있겠지만 그는 것우리 사회가 워낙 병들었기 때문겄이라고 말했다. 지나칠 정도로 봉건적인 위계질서에 후진들은 설 자리가 없고 학연과 지연, 돈과 배경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한국 사회의 관행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는 한국 태권도계도 그렇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태권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낙천적인 모습으로 말했다.
"그야 우리가 다 못 이루면 뜻이 있는 우리 후배들이 뒤를 이어줄 것이고 이렇게 계속 노력하다보면 결국 좋아지지 않겠어요? 반드시 공정한 판정이 보장되는 태권도 경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태권도 경기가 공정해 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적어도 가까운 시일 내에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학생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드디어 태권도계의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기존 질서에 작은 파열구가 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거대한 댐에 작은 구멍이라도 생기면 그 댐은 붕괴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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