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들의 이야기] 합기도와 나 - 지한재 편(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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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사와 태기 수련
(정리자 주 : 이 글은 2010년 1월 25일 지한재(池漢載) 선생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지한재 선생은 한국 합기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1953년 최용술 도주에게 입문해, 성무관을 창설했다. 현재는 신무합기도라는 명칭으로 합기도 보급에 힘을 쓰고 있다. 지한재 선생의 구술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옮기려고 했으며, 정리자가 이해 못하거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큰 지장이 없는 것은 삭제했으며, 어투도 약간의 수위 조절을 했다. 아울러 기존의 견해와 다른 부분 또는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리자 주’로 처리했다.)
최용술 선생에게 야와라를 배우는 한편 안동에서 이 도사님에게로부터 태기를 배웠습니다. 그 당시 이도사님이 “니가 배우는 것이 삼랑도 태기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죠. 태기는 백제 삼랑도 안의 체술을 말하는데, ‘태기를 칠까보다’ 하는 용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 삼랑도인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일부는 일본으로 가서 사무라이가 된 걸로 추정됩니다(정리자 주 : 지한재는 삼랑도는 화랑도나 선비도 등과 같은 것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 다양한 무예에 영향을 주었다고 구술 하였다. 아울러 삼일신고나 회심경 천도교 관련 서적을 많이 인용해서 설명하였다. 하지만, 정리자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였다).

최용술의 시연장면(김이수, 합기탐구에서 참조)
그리고 태기를 수련한다는 ‘태기련(鍊)’이 와전되어 ‘택견’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태기를 배운다는 말은 최용술 선생에게는 절대 비밀이었습니다. 그분 성격에 그것을 알면 어떻게 될지 뻔하기 때문입니다(정리자 주 : 정리자가 태기가 택견과 같은 기법이었는지를 묻자, 동일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택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품밟기가 현재 한국 합기도 기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스텝 밟는 것은 없애버렸으며, 택견 발길질과 같은 것이 단식 발길질에 많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기법인지의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내 기술의 90%는 삼랑도 ‘태기’의 기술이고 10% 정도가 ‘야와라’라고 보면 됩니다.
태기를 가르쳐 주신 이 도사님은 우리 집안의 은인인 이명연 의원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명연 의원은 내 어머니의 목숨을 구해준 분이었죠. 내가 태어난 날이 추석이었는데, 늦가을 장마에 안동 둑이 무너졌습니다.날 어머니가 핏덩이인 저를 안고 강물을 건너느라 병을 얻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때 이명연이라는 의원 분이 상처 부위를 칼로 째고 약을 바르고 해서 어머니를 치료해줬습니다.
그 후 집안에서는 항상 은인으로 생각하고 명절에 찾아뵙고 인사를 했죠. 그러던 어느 추석에 아버지를 따라 방문했다가 아버지가 당신 아들이 야와라를 배운다고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말을 들은 이명연 의원이 자신 아들을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이 도사님을 뵈었을 때 야와라 기술을 시험했습니다. 내가 이 도사님의 팔을 있는 힘껏 흔들자 약간 흔들리는 정도였습니다. 이 도사님이 이것을 보고 “제법이다”라고 생각을 하시고 태기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때는 스승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고 여쭤보지도 못해서 그냥 ‘도사님’ 혹은 ‘이도사님’이라는 호칭을 칭했습니다. 이명연 의원은 아버지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함자를 알고 있었지만, 이 도사님의 이름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정신적인 부분은 이 도사님의 선생이신 경기도 이천의 할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안동에는 역사들이 많았습니다. 선친은 독립운동을 하신 초대 자유당 국회의원인 김익기 씨 선친은 힘이 얼마나 셌는지 안동 서악사라는 절에 있는 참나무 목침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자국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어렸을 때 그게 남아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초대 국회의원인 유시열 선생이라는 분도 독립운동가였는데, 대단한 역사였습니다. 안동 사범학교 미술 선생이자 최초의 안동 복싱 사범으로 김기환을 키워냈던 권장(權獎) 씨도 삼랑도 태기를 한 사람입니다(정리자 주 : 태기와 이 도사에 관해서는 마르스 2002년 9,10월호와의 인터뷰가 첫 대외적인 언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인터뷰에서는 서악사의 목침에 손가락 자국을 낸 것은 이도사였다고 한다.. 관심 있는 분은 마르스의 인터뷰를 참조하기 바란다.)
10개월의 안동연무관

마르스 잡지에 실린 지한재 선생의 기사
안동에 가서 연무관을 차렸습니다. 당시 명칭은 ‘대한합기유권술안동연무관’이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최초의 분관을 만든 것이죠. 범이 우리를 벗어난 격으로 이때부터는 최용술 선생으로 배운 야와라와 이 도사님에게서 배운 태기를 섞어서 내 마음대로 가르쳤습니다.안동에서는 10개월 정도 도장을 했습니다. 이때는 발길질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이 도사님 한테 배운 것도 있고 제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있습니다. 현재 합기도의 발길질은 거의 90%가 제가 안동에서부터 가르친 것입니다. 두발모아차기, 벌려차기 기술은 나부터 시작했습니다. 뒤돌려차기는 제가 서울 올라오기 직전인 1956년부터 안동에서부터 시작한 기술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뒤돌려차기는 없었습니다. 유영우 씨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만들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제가 먼저 시작한 기술이 맞습니다.
뒤돌려차기의 이론은 이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원주교도소에 있으면서 성경을 읽고 도움을 받아 완성을 했습니다. 안동에서는 발길질을 무척 강하게 가르쳤습니다. 현재는 160가지 발길질을 가르칩니다. 25가지를 기본 발질로 해서 8가지 형태를 바꾸면 200가지가 되는데, 그 중 40가지는 이론적으로는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되지 않죠. 또 단전호흡을 위해 손등을 뒤집어 모으거나, 올리거나 하는 ‘기압짜기’는 제가 창안해냈습니다. 무기술의 경우에도 지팡이술은 59년도에, 단봉술은 옛날 사람들이 부채를 접어서 때리는 것에 착안해서 창안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을 위해서 손수건을 응용한 기법을 창안했는데, 뒤에 포박술로 발전시켰습니다(정리자 주 : 기법 창안과 관련해서는 인터뷰 사이사이에 언급한 것들이어서 시기를 정확히 물어보지 못했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별도로 항목을 만들기가 어려워, 편의상 이 항목에 정리한 것이므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이 때 배운 제자들이 유영우,오세림,송영기 씨 등이다. 1956년에 10개월 정도 도장을 운영하다 중학교 동창인 유영우 씨에게 맡기고 서울로 올라왔다. 장가를 갔으니 마누라에게 화장품 같은 것을 사줘야 하는데, 아버지에게 용돈 받아서 사주는 것이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무작정 안동을 떠나게 된 것이다.
[편집 =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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